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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정보 통신 혁명과 세속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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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249

정보 통신 혁명과 세속주의

 

 

1. 글을 시작하며

 

지난 200년 동안의 서구 역사는 세속주의의 역사라고 할 만큼 종교 권위의 해체와 약화로 이어져 왔다. 이런 경향은 현재도 계속되어 서구의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는 날로 약화되고 있다. 이에 반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이슬람교와 일부 종교들은 맹렬하게 부흥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세속화로 대변되는 탈성화(desacralization)와 종교의 부흥으로 대변되는 재성화(resacralization) 중 어느 하나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두 형태의 공존 또는 기존의 모델로 해석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등장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게다가 재성화가 일어나는 지역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세속화가 일어나고 있어, 현재 종교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일률적으로 세속주의의 확장이나 후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현재의 종교 현상에 관한 한 결정론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정보 통신 혁명을 체험하고 있는 세계의 일부 나라들에 국한시켜 세속주의와 관련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정보 통신 혁명이 우주적인 범위를 갖는 거대한 변동 양상이긴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나라들은 세계의 일부 국가들이고, 대다수 나라들의 일부 엘리트들만이 이 혁명의 대열에 서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다분히 종교와 세속주의의 관련성은 정보 통신 혁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교 지역의 일부 국가들과 우리와 같이 비서구, 비그리스도교 지역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들에 국한된다.

 

 

2. 정보 통신 혁명의 전개

 

정보 통신 혁명은 실생활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이미 대중화된 개인 통신 미디어들을 통하여 체험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세계적인 보급률을 자랑하는 무선 호출기, 호출기를 대체하면서 보급률과 보급 속도에서 세계 수준을 보이고 있는 이동 전화(cellular phone), 어느새 원고지를 밀어내고 책상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 지구적인 연결 범위를 갖는 인터넷 등이 이러한 변화를 실감 나게 하는 것들이다. 선진국의 경우는 1980년대 초반, 우리 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이와 같은 기본 통신 수단 외에 다양한 추가적인 소통 양식들이 등장하였고, 현재에도 이런 수단들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선 호출기, 이동 전화, PC 통신 등 고도화된 소통 양식의 비중이 늘어난 시기는 대략 1988년경이고, 1990년 이후 현재까지는 이용자들이 급격하게 늘어 개인 통신 매체에서 전화가 차지하던 비중을 급격하게 줄이고 있다. 특히 1992-1993년에 들어 고도화된 통신망이 급속하게 보급, 발전되면서, 이용자의 사회적 저변도 이에 상응하여 넓어져 왔다.1) 

 

그러면 왜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정보 통신 혁명이 진행되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통신 수단이 갖는 편의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편의성은 이미 체험하고 있는 것이고, 정보 통신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을 산업과 일상 생활에 응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놀라운 혁신과 이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도 서서히 위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른바 경제적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날로 지구적 경쟁이 격화되는 시기에 각 나라들이 이를 외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이러한 변화의 수용은 생존을 결정하는 문제가 되고 있다. 정보 통신 분야는 각국의 경제 성장 기여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날로 높이고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의 추세로 나아갈 경우 21세기 초반에 정보 통신 산업은 세계 경제에서 선도, 중심 분야가 되는 것은 물론, 이 영향으로 사회 전체적으로도 커다란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화의 2단계, 3단계가 완성되고, 4단계로의 이행이 2010년을 전후로 이루어지면 지구상의 많은 것이 바뀔 전망이다.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지구상의 70% 이상의 나라들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상을 체험할 것이다.

 

 

3. 정보 통신 혁명의 세속주의적 요소

 

정보 통신 혁명을 체험하는 나라들은 세계적으로 소수이지만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과거에서의 유추가 불가능할 정도로 급격하고 불연속적이다. 그러나 종교 영역에서는 이렇게 말하기가 곤란하다. 변화가 가장 느리게 진행되는 영역인데다, 변화가 나타나도 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그래서 세속주의와의 관련성에 대한 예측은 역사적 유추에 의존해야 한다. 필자 역시 이런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1) 과학 기술 결정론의 신화 -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다

 

정보 통신 혁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이 큰 세속주의적 요소는 과학 기술 결정론이라 하겠다. 이것은 기존 세속주의가 한층 더 세련된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우리 시대에 오히려 위력이 더 커지고 있는 현상인 까닭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이런 가능성은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표현된다. 무어의 법칙은 일 년 반마다 기존의 기술적 장애들을 돌파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한다는, 현재의 기술적 혁신을 대변하고 있는 말이다. 물론 이 법칙이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보 통신 분야의 급속한 변화로 말미암아 다른 분야도 거의 비슷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하나의 신화를 형성하고 있다. 

 

과학 기술 결정론은 생명 공학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하여 과학자들이나 이들의 생각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처럼 인간의 능력으로 이제 불가능할 것이 없으리라는 원망(願望)의 표현이다. 이로써 신비는 아직 인간이 발명 또는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일 뿐 더 이상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고 방식은 다른 영역으로 급속하게 확장되면서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아직 미지의 것은 인간의 손이 미쳐 닿지 않은 영역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언젠가는 인간의 손으로 그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적어도 인간에게 신비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신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롤랑 바르트(R. Barthes)는 신화를 이렇게 과거 이데올로기론자들이 말한 것과 비슷한 함의를 가진 말로 표현하였다. 이런 사고 방식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으며, 얼마 동안은 후퇴하지 않을 조짐이다. 적어도 과학 기술 결정론이 이런 신화로 발전하면 종교의 규범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세속주의의 촉진 요인이 될 것이다.

 

2) 정보 통신 혁명의 본질 - 편의성과 효율성 제일주의의 신화

 

정보 통신 혁명의 세속주의적 요소 가운데 과학 기술 결정론 다음으로 위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편의성과 효율성 제일주의이다. 정보 통신 혁명의 근원적 배경이 사회적 효율성의 추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와 함께 편의성도 추구되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사회적 효율성을 제고하고, 생활의 편의성을 도모하는 일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다만 사회적 형평성(equity)이 무시되고,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이 무시된다면 이것은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라던 바는 아니지만 현재의 정보 통신 혁명에서 사회적 형평성과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은 지나쳐지고 있다. 이 때문에 종교는 더욱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다. 편의성과 효율성만 보장되면 다른 주변적 요소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자연스럽게 인간 중심주의와 직결된다. 모든 기술은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유전자 변형도, 인간 복제도,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 봉사한다면 용납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있다. 무한정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하고, 지적인 능력도 무한히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사고 방식이 바르트가 뜻한 신화이다. 이런 신화가 유포될수록 종교는 약화될 것이다. 종교는 효율성과는 다른 반성적(reflective)인 것이고, 가치 지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3) 선형(linear)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종교적 권위의 약화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 가운데, 기존의 선형 패러다임이 비선형적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변화도 기존 종교에 해로운 영향을 줄 전망이다. 그 자체로는 그리 위험한 현상일 수 없지만 교회와 신학의 대응이 미약하고, 지체되면서 우려되는 것이다. 그러면 선형 방식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의 매스 미디어는 대부분의 정보를 수용자가 개입할 수 없는 생산자 중심의 배열과 구조(전자 미디어에서는 시간)를 가지고 있었다. 책의 경우에는 출판인이 순서대로 페이지를 매기고, 면의 구성도 그가 주도하였다. 그래서 독자들은 책을 읽을 때,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나가야 했다. 이처럼 앞에서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방식을 선형성(線形性)이라고 한다. 텔레비전 시청의 경우에도 시간의 순서대로 앞에서부터 제작자가 의도한 배열에 따라 시청해야 하기 때문에 선형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선형 미디어들은 하이퍼텍스트(Hypertext)를 기반으로 한 웹(Web)의 등장으로 의미 생산 과정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하이퍼텍스트는 순서 없이 필요한 부분만을 자유 자재로 불러들일 수 있어, 선형 모델을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수용자는 정보와 미디어에 대한 통제 능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2) 

 

이러한 선형성의 탈피는 기존 종교의 선포 방식이 선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스도교는 선포 방식뿐 아니라 교리 자체가 선형적이다. 특히 역사관은 유다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표적인 선형 사관이다. 그래서 비선형적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은 선형적 교리 체계와 이에 기초한 규범 체계를 가지고 있는 종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하나 비선형적인 소통 방식이 세속주의와 직결되는 다른 이유는 행동이 임의성에 기반을 둔 넓은 스펙트럼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임의성에 기반을 둔 넓은 행동 스펙트럼은 사고 구조가 유연해지면서, 행위 과정을 인과적으로 사고했던 과거의 방식이 이완되어, 행위자들이 기존 가치를 뒤집고 각종 위반 행위를 할 확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로써 각종 위반 행위가 인권 보호나 개성 존중을 이유로 관용될 가능성이 커진다.3) 종교의 도덕적 규범이나 윤리 체계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런 사고 방식은 미디어의 영향과 관계없이 확산되어 왔다. 그러니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이런 영향을 더 확산시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4) 시공간의 해체와 다원주의의 확대

 

정보 통신 혁명의 요체는 현상적으로 볼 때 시간과 공간의 극복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다. 통신은 애초에 공간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수단이었다. 당연히 통신을 통한 공간의 극복은 시간의 극복을 초래하였다. 전신이 전화로, 전화가 위성 통신과 인터넷으로 발전하면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조정해 온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 시간의 극복으로 치닫고 있다. 전기는 초기에 밤을 극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시간을 일 초의 억만 분의 일 단위 이하로 분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렇게 공간과 시간의 극복은 기존의 공간과 시간 관념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쪽으로 진전되고 있다. 

 

정보 통신 혁명이 문명적 전환으로 말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넷으로 공간의 차이가 약화되면서 전지구적으로 동공간적 인식이 확장되었다. 위성 방송이나 지구적인 규모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국제 커뮤니케이션은 기존의 문화와 종교의 경계선을 약화시킨다. 물론 근본적으로 이 경계선이 붕괴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계선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계선이 강화될수록 한 종교나 이념이, 다른 종교나 이념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자민족 중심주의, 자기 종교 절대주의, 특정 이념의 절대화를 약화시킨다. 

 

종교를 기능주의적으로 분석하는 학자들은 종교가 세속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조차도 기능적 대체물로 전화되거나 다른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고 본다. 이 때 종교의 기능적 대체물이 관심의 대상인데, 이것은 종교 외적인 요소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것은 기존의 종교들이 다른 종교 외에 기능적 대체물과도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타종교는 물론 다른 이념들에 대해서도 자신을 상대화시켜야 한다. 그야말로 지구적인 규모의 시장에서 각 기업이 무한 경쟁을 벌이듯이, 종교들도 자신 이외의 종교와 세속적인 이념들과 대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바로 이 세속적인 이념들과의 대결 상황이 종교의 권위, 심지어 그 지위까지 약화시키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세속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외에도 세속주의를 부추길 만한 요소들을 정보 통신 혁명은 수없이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세속주의적 요소들이 정보 통신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 요소들은 이미 근대주의의 연장선에서 발전해 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정보 통신 혁명으로써 구현되는 세계가 정보 사회라고들 하는데, 정보 사회도 내용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기존 사회와의 연속성을 많이 갖고 있다. 따라서 현재 정보 통신 혁명으로 파생되고 있는 세속주의의 확장은 기존 사회와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하는 현상이다.

 

 

4. 정보 통신 혁명 시대의 교회의 대응 방향

 

인간 복제가 종교와 사회에서 동시에 문제가 되자, 이제 과학 기술 문명은 종말에 이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였다. 이렇게 계속되다가는 인류 자체의 존속을 위협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제 사회적 규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뜻하는 대로 지금 이 상태에 묶어 둘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난망한 일이다. 종교와는 달리 세속 사회에서는 진실을 모른 채 부분적인 성과에 열광하고 있는 까닭이다. 앞으로 종교적 가르침을 외면하면서 계속 자기 갈 길을 갈 것이라는 예상이 더 현실적이다. 그래서 마치 핵무기를 만들어 놓고 늘 불안에 떨면서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처럼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다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근대 세속주의에 대응해 왔던 방식을 돌이켜보면 적어도 앞으로 당분간은 성공적인 대응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게 된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종교는 세속주의를 거슬러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 제도임에는 틀림없어도, 기대와 실현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는 시도는 필요하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교회는 삶으로 과학 기술 결정론의 신화와 효율성­편의성 제일주의의 신화를 타파해야 한다. 이것은 그 동안 종교들이 현대 사회의 적응을 이유로 오히려 자신이 더 세속화되어 온 과거를 반성하자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종교가 세속주의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하여 세속주의가 선전하는 요소들을 내부에서 제거하고, 이에 대하여 신학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이데올로기다. 도구에 불과한 것이 주인 노릇하면서, 이를 속이려고 온갖 허위 사실로 포장된 것이 신화라는 말이다. 그래서 종교는 신화의 본질을 탈은폐하는 것이다. 이러한 탈은폐의 전략은 새로운 신학하기에서 시작된다. 

 

사실 “오늘날의 위기는 인간 스스로의 행위로부터 비롯한다. 근본적으로 자연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비의도적 행위로부터 비롯된 문제들이다.”4) 인간의 존재 근거 자체를 뒤흔든 생물 공학의 발전도 모두 그 근원은 인간의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 행위로써 이루어졌다. 인간의 위기, 인류의 위기가 일차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다가오는 것인 바, 이러한 현실을 가리는 기술 진보의 신화, 정보의 신화는 폭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정보 사회의 핵을 이루는 “기술 과학은 물질 생산의 문제이기에 앞서 정신의 문제다. 세계관, 인간관, 신관의 변화 문제다.”5) 또한 “기술 과학의 핵심은 대상화다. 대상화는 처음부터 소외 구조다. 주객 도식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나 누구를 ‘대상’으로 본다는 말은 그(그것)를 나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관계 단절이며,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다. 거기서 소외가 발생한다.”6) 이런 까닭에 정보 통신 혁명의 구현인 정보 사회도 기본적으로 소외 구조를 내재하고 있다. 정보 사회의 신화를 폭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로 과학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대화한다는 것은 신학이 과학을 배워야 함은 물론 과학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7) 브라운은 후자의 과학 정신에 대해 "어떤 신앙 체계, 어떤 종교도 자연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고정된 진리의 계시에 근거를 둘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신앙 체계나 종교는 반드시 경험과 과학적 탐구에 의한 진보적 계시에 기초해야 하며,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그것은 언제나 잠정적인 것으로 결코 확실성의 늪에 안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세속화된 사회에서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은 '종교적 직관력'과 '지식과 불화를 초래하지 않는 계몽된 신앙 체계'8)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정보 통신 혁명 시대에 사는 신학의 임무를 제시하였다. 

 

셋째로 앞서 제기된 사회적 쟁점들을 해결 또는 예방하는 데 신자 개인도 마땅히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신자 개인들은 주체적인 내적 지향성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 이 내적 지향성은 소용돌이처럼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서 대응할 수 있는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 신념 체계에 바탕을 둔 삶의 자세이다.9) 아울러 신자이기 이전에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힘도 길러야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만 정보 통신 혁명 시대의 정신적, 문화적 토대인 정보 문화의 구축이 가능하다. 그리고 신자들은 정보 사회에 대한 이해 능력, 정보 기기 이용 능력, 정보 활용 능력을 의미하는 사회적 수용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보 독점과 정보 사회의 역기능을 교회 안팎에서 막을 수 있다. 피어슨은 정보를 생산하는 것 못지않게 정보를 소비할 줄 아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고, 사생활의 상실에 대비하는 자세와 사람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10) 특히 사회적 거리의 단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윌리엄 포어가 말한 텔레비전 다이어트(TV diet)이다.11) 텔레비전 다이어트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인다는 의미로, 정보 사회에서 인터넷, 통신망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디어 사용이 절대 사회적 거리를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미디어 중독은 사회적 거리를 멀게 만드는 질병으로 보고 있다. 재화의 소비를 줄이듯이 미디어 소비도 줄이자는 것이다. 이것은 내적인 성숙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내적인 성숙은 다분히 종교적인 것이다. 정보 사회의 근본 문제가 인간의 분열적 자아에서 비롯된다고 하거니와, 정보 통신 혁명 시대의 난맥상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내적 성숙이다. 물론 이것은 모든 문제를 주관적인 것으로 돌려 현재의 억압 구조를 은폐하는 쪽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아무리 보아도 대책은 궁색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인데 어떡하랴. 그렇다고 여기에 머물 수는 없지 않은가? 대책은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교회 전체, 그리고 시민 사회가 함께 세워 나가야 한다. 그러나 세속주의의 도전에 대한 대응은 전적으로 우리 종교의 일이다. 교회 안의 자체 쇄신 노력이 성과를 이루고, 이것이 다시 사회적으로 공인될 때 교회는 세속주의의 위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방관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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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이종, [지식 정보사회학], 서울 대학교 출판부. 1998년, 162-163면 참조. 

2) M. Ethan Katsh, Law in a Digital World, London, Oxford Univ. Press, 1995년, 299-322면 참조. 

3) Douglas Rushkoff, [카오스의 아이들](Playing the Future:How Kid's Culture Can Teach Us to Thrive in an Age of Chaos), 김성기/김수정 옮김, 민음사, 1995년 

4) 임홍빈, [기술 문명과 철학], 문예 출판사, 1995년 참조. 

5) 양명수, [호모 테크니쿠스], 한국 신학 연구소. 1995년, 183면. 

6) 위의 책, 188면. 

7) Hanbury Brown, [과학의 지혜], 황설중 옮김, 이화여대 출판부. 1986년 참조. 

8) 위의 책, 220-232면 참조. 

9) 권기헌, [정보 사회의 논리], 나남, 1997년, 207면 참조. 

10) C. A. van Peurson, [급변하는 흐름 속의 문화], 강영안 옮김, 서광사, 1994년, 251면 참조. 

11) William F. Fore, [매스 미디어 시대의 복음과 문화](Mythmakers:Gospel, Culture, and the Media), 신경혜/홍경원 옮김, 대한 기독교서회, 1990년, 238면 참조.

 

[사목, 1999년 10월호, 박문수(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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