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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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제93차 세계 이민의 날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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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4-06 ㅣ No.230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2007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제93차 세계 이민의 날을 맞이하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제93차 세계 이민의 날입니다.

 

최근 들어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광범위하고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이민 현상입니다. 이제 이민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명에 이르고 이 문제와 관련을 맺지 않은 나라가 없으며, 우리나라는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주민의 수는 약 100만 명에 이르고, 국제결혼 가정이 대략 16만을 헤아립니다.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서 이미 취학중인 어린이는 2006년 교육부 통계로 8천 명에 이릅니다. 지금 농촌 남자 10명 중 4명은 외국인과 결혼하고 있으며,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미 3분의 1정도의 어린이들이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나고 있고, 그 수는 앞으로 급속도로 늘어날 전망이어서, 2010년이면 10만 명, 2020년이면 17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현실은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새로운 사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준비는 정부나 국민 모두 너무나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적절한 대책이나 체계적인 준비 없이 우선 급한 대로 외국 노동력을 들여오거나 방치하다 보니, 그들이 단순한 노동력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며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니는 존엄성과 권리를 향유해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07년 2월 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였습니다. 외국인 10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을 당한 이번의 참사는 화재 특유의 긴박성과 감각에 바로 와 닿는 측면 때문에 유난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뿐,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당하는 인권 유린의 사례와 범위는 넓고도 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기업체와 감독관청이 당장의 경제적 득실만을 생각해서 짧은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에 옮긴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보유하게 된 것은 역사상 초유의 일이며, 그만큼 경험도 체계도 거대한 흐름에 걸맞는 대책도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 온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서양 여러 나라들은 이민과 관련한 역사가 길어서 그동안 경험이 축적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 노력해 온 시간도 길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과 가치관이 사회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을 대하는 자세에도 상당한 관용과 형제애의 정신이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즈음에 와서 서양 여러 나라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이나 외국 출신 거주자들과 관련한 어려움이 여러 형태의 사회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현실을 보며, 이들이 한 사회에서 처음부터 소외되지 않고 다른 모든 국민과 하나가 되어 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민과 관련한 모든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교회는 이민들과 난민들에 대해 특별하고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주로 이민 사목 수도회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하게 하였고, 1914년에 발표된 「이민 문제 연구」라는 교령을 위시해서 제2차 바타칸 공의회를 거쳐 2004년 5월 3일에 반포된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회에 이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절한 사목적 대응책을 제시해 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스칼라브리니 주교(1839-1905)가 이미 1887년에 이민들과 그에 따른 문제만을 전담하기 위한 수도회를 설립했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수백만 명의 인구가 주로 미국을 향해 떠났고, 그들의 신앙생활과 인간으로서의 삶에 따르는 온갖 문제들을 함께 풀어 나갈 사람들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근래에 이르러 이탈리아가 이민을 보내는 나라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로 그 위상이 바뀜에 따라, 과거에 고향을 떠나 이민으로서 겪었던 아픔들을 감안한 정책을 세워 실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외국에서 들어오면 그 가족도 함께 입국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그 좋은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바탕이 되어 국제 사회는 이민에 따른 인간적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 결과 2003년 7월 1일에는 <모든 이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 협약>이 발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협약은 당시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그 승인을 강력히 권고하신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여러 지역으로 강제 혹은 자의에 의해 정치적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고국을 떠난 동포가 많았습니다. 아직도 경제적 혹은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나라를 떠나는 이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더 이상 떠나는 나라라기보다 외국인이 들어오는 나라로 처지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우리가 외국에서 받은 설움과 고통을 이제는 자칫 우리가 남에게 줄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탈출 22,20)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이제 우리를 향해 들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속 깊이 듣는 우리는 우리 민족으로서 처음 맞는 대량 이민 현상을 앞두고, 외국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데 관해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마태 5,13-16 참조) 신앙인의 사명을 우리는 오늘날 어느 영역에서 보다도 대량 이민과 관련된 분야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마태 8,20) 나그네이셨던”(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5항)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언제나 잠시 머무는 사람이며, 어디에 있든지 나그네”(위 문헌 16항)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일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를 잘 가르쳐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점점 국경이 의미를 상실해가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우주라는 대양 속에서 지구라는 아주 작은 배를 탄 공동 운명체로서 하나의 가족을 이루어가고 있는 이 때,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물어 버리신”(에페 2,14) 주님의 뜻이 우리의 마음 씀과 노력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7년 4월 29일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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