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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대중매체에 대한 교회의 시각: 인터넷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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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12 ㅣ No.503

[대중매체에 대한 교회의 시각] 인터넷과 소통

 

 

소통의 도구 - 인터넷

 

인터넷은 현대사회의 전자기술로 만들어낸 최첨단 ‘소통’의 도구이다.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그 미디어의 사용에 관심이 집중된다. 1971년 발표된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관한 사목 훈령 ‘일치와 발전’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1957년 회칙 ‘놀라운 혁명’을 발표하였는데, 그 훈령에 따르면 교회는 커뮤니케이션 매체들도 ‘하느님의 선물’로 간주했다.

 

원래 ‘소통(communication)’은 라틴어 ‘communicare’에서 온 말이다. 이는 “신이 자신의 덕(德)을 인간에게 나누어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직접 민주주의가 발전된 그리스의 ‘아고라’는 그 의미를 전할 것 같다. 쿨레(C. Coulet)는 아고라를 집회와 커뮤니케이션의 장소였으며, 그리스 도시국가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시민의 정치집회, 집회장, 시장, 광장 등으로 아고라를 사용했다. 그곳에서 ‘시민의 덕’이 실현되었고, 그 덕성을 나누는 장소가 바로 아고라였다. 그 장소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물론 아고라는 단순한 세속적인 의사 표현 장소가 아니라, 종교적 성소의 성격을 지녔다. 아고라는 반드시 성소를 두어, 신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다. 아고라에서는 제물 봉헌과 헌주, 기도, 제사 등 갖가지 행사가 이뤄졌다.

 

아고라로서 교회는 어원상 소통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상호간의 소통은 “그 최고의 이상과 으뜸가는 본보기를 인간의 형제가 되신 하느님 안에서 발견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곧, 교회는 “인간 발전과 정의와 평화를 도모하고, 지역과 국가와 공동체 차원에서 공동선을 비추어 연대의 정신을 갖고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라고 정의한다.

 

아고라는 대중의 의사 표현 장소였는데, 현대 미디어는 아고라의 기능을 발전시켜 세속화시켰다. 전자미디어로서 텔레비전 등은 소통을 원활하게 돕는 도구가 되었다. 최근 가장 첨단의 기술을 가진 인터넷은 또 다른 소통의 장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텔레비전은 매스미디어로 간주했으나, 인터넷은 개인 미디어로서 공론장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공론장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개인은 직접 민주주의에 참여하여,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교회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하느님의 선물’로까지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은 신의 선물인가?

 

그렇다면 1990년 이후 발전된 개인 미디어 인터넷을 규정하고, 신의 섭리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과연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신의 선물일까? 물론 인터넷 발전을 그전 미디어인 텔레비전과 연계시킨다면 그 기능이 명확해질 것 같다. 텔레비전은 ‘투사(scanning)’ 기능으로 가상의 세계를 만든다. 텔레비전은 신문보다 문자 메시지를 줄이는 대신, 상(像)을 모사하여, ‘가상세계’를 형성시킨다.

 

현실세계와 다른 모상의 세계이다. 사진은 실물을 그대로 복제하지만, 텔레비전의 상은 전자파가 만든 가상의 상이다. 전자파가 만든 것을 점이 모여 ‘상(image)’을 형성시킨다. 그리스와 로마인에게 상은 위험의 대상이다. 모세가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의 두 번째가 ‘우상을 두지 마라’는 계명이었다. 말씀이 종교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의 숭배는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을 수용하는 개인은 인쇄미디어를 수용하는 형태보다 더 많은 감각을 사용한다. 이 미디어를 수용하는 개인은 먼저 시각을 사용한다. 물론 시각 중에 문자를 사용하는 감각은 눈을 시신경과 직접 연결시킨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미지는 눈과 망막 사이를 연결하고, 그리고 그 상을 뇌로 전달한다. 그만큼 상은 인식체계가 복잡하다. 문자는 좌뇌로 인식하지만, 이미지는 우뇌에서 종합한다. 곧, 문자는 단일감각으로 인식되지만, 이미지는 복합감각으로 인식된다.  이미지는 통감각인 촉각이 동원된다.

 

그리고 텔레비전은 시각, 청각, 촉각이 함께 아우러져야 한다. 빠른 전자파의 구성물인 텔레비전의 미디어는 마치 초음속 비행기 조종사가 산의 나무와 지형을 ‘투사하여’ 얻는 역할을 한다. 개인은 피사체를 직감으로 인식한다.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텔레비전

 

또한 개인은 먼 곳의 사람 음성을 텔레비전을 통해 들을 수 있다. 공간이 붕괴되고, 전자파의 속도로 시간의 개념을 상실하게 한다. 가상의 세계가 실현된 것이다. 기술의 위력으로 그리스의 아고라와 중세의 교회가 텔레비전 미디어로 이전한 것이다.

 

텔레비전의 세계는 인간이 여러 가지 감각을 사용함으로써, 그 속도성에 인간은 수동형으로 만들어진다. 기술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빼앗아간다. 피사체의 상을 순간적, 직감적으로 읽게 됨으로써 텔레비전 미디어 기술은 인간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인간은 허전함으로 텔레비전의 상에서 보상을 찾는다. 우상숭배는 ‘주신(酒神)의 욕망(Dionysian  lust)’을 일으킨다. 텔레비전은 욕망을 부추기는 매체이다. 기존의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극단적 욕망의 개인주의로 인도했다. 광고주는 어느 매체보다 텔레비전을 선호한다.

 

텔레비전의 문화는 그리스 로마의 ‘질서의 전통(apollonian  tradition)’의 금욕주의 문화와는 다르다. 이것은 능동성의 문자문화와는 차별성을 지닌 것이다. 수동성은 추론을 결하게 된다.

 

텔레비전으로 개인은 심적 아노미를 경험하고, 심리적 불안정을 경험한다. 참여가 결한 문화는 ‘대리 권위’에 집착하게 된다. 텔레비전은 ‘제2의 신’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상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상(象)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전자파의 투사로 소비적 가상현실을 순간적으로 창출한다. 고화질(HD) 텔레비전은 현장감, 임장감(presence)을 더욱 높임으로써 현실세계로 착각하게 만든다. 마셜 맥루언(M. McLuhan)은 미디어 자체가 ‘인간 확장’이라고 했다. 그만큼 시공간을 확장시키고, 감각세계를 확장시킨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그만큼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위력과 욕망의 세계로 점철된 사회를 개혁하고자 1967년 미국 의회는 ‘공공방송법’을 통과시켜, 공영방송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디지털 기술은 문자, 동영상, 음향, 복제 등을 가능케 했다. 매스미디어와는 달리, 개인의 참여를 극대화시키고, 쌍방향 참여와 소통을 가능케 했다. 디지털미디어는 넓은 세상 안에서 상호작용하도록 했다. 그리스의 아고라가 현대에 출현한 것이다.

 

인터넷 세상은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참여시켰다. 우리는 그들을 ‘디지털 세대’라고 부른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05년 하반기 정보화 실태조사 결과, “우리나라 만 3-5세 유아의 인터넷 이용률이 47.9%에 이르렀다.”라고 했다.

 

 

인터넷이 진정한 아고라가 되려면

 

우리는 ‘디지털 원주민’에게 인터넷미디어를 무방비로 맡겼다. 그들은 세계를 하나로 묶는 메가 망에 자신을 투신한다. 개인의 절제를 결한,  거대한 공론장이 진정한 아고라가 될까. 인터넷 미디어는 여전히 텔레비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참여와 상호작용성이 인터넷에서 가능해짐으로써 인류가 그 순기능만 살린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 같다. 그러나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2009년 홍보주일을 맞아 가톨릭교회는 악플, 자살 사이트, 인터넷 중독과 같은 부정적인 현상, 곧 죽음의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홍보주일에 “뉴미디어 콘텐츠의 생산과 보급에 종사하는 이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교황은 ‘디지털 대륙’의 새로운 복음 양식의 구상을 천명한 것이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사회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기술적 맥락에서 자리매김할 만큼 생각, 믿음, 신화를 결정할 힘을 지녔다. 개인은 인터넷에서 벗어난 생활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아고라와 교회는 “신 자신의 ‘덕’을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장소”로 간주했다. 성령의 세계인 교회가 인간의 존엄성과 휴먼의 가치를 복원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교회는 인터넷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지키고, 진리와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다.

 

[경향잡지, 2010년 1월호, 조맹기 가브리엘(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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