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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깨어있는 관심을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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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512

[대중매체에 대한 교회의 시각] 영화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깨어있는 관심’을 촉구하며

 

 

‘시네마 천국’(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라스트. 영화감독이 된 토토는 고향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마지막 선물을 확인한다. 고향 마을의 신부가 검열차 잘라낸 필름들을 이어 붙여 만든 그것은 바로 각 영화에서의 키스 신 모음이다.

 

아름답고 열정적인 입맞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향수와 알프레도 아저씨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가 복합적으로 묻어나는 이 장면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과 함께 ‘시네마 천국’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명장면이다.

 

 

영화매체의 힘과 영향력

 

1895년 탄생 이래 영화는 대중문화의 중심이자 대표적인 대중매체로서 그 위상을 지키고 있다. 지식의 고하, 성별, 연령, 지역을 막론하고 영화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고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는 영화가 문자보다는 영상으로 전달하고 이미지와 사운드의 복합작용에 의해 감각을 자극하며 감성에 호소하는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는 3차원(입체)의 환영과 리얼리티에 의존하여 현실 재현성이 뛰어나고 나아가 현실을 뛰어넘어 가상현실과 미래의 비전까지도 소름끼치도록 정교하게, 인상적으로 제시하는 능력이 있다. 근자 ‘아바타’(제임스 카메론 감독)가 거둔 영화적 표현과 성과를 보면 영화매체의 힘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영화매체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대중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화와 스타를 향한 팬덤(fandom) 현상은 종교적 열정과 비견되거나 넘어설 만큼의 대단한 열광과 몰입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스타를 ‘반신(半神)’에 비유하면서, ‘영화 스펙터클에서 생겨난 꿈의 피조물’인 스타는 현대의 신화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영화가 현대의 신화가 되고 영화 스타에 대한 숭배는 일종의 ‘종교현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정작 종교가 영화매체에 기울이는 관심은 어떠했는가?

 

 

영화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우려와 경계

 

가톨릭교회의 영화매체에 대한 시각은 1936년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깨어있는 관심”(Vigilanti Cura)에서 엿볼 수 있다. 이 회칙은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에 대한 우려와 영화심의단(Legion  of  Decency)의 활동 독려 그리고 영화가 타락과 비도덕성을 부추겨서는 안 되므로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이 회칙은 영화매체의 힘을 인정하지만 “영화예술과 영화산업이 죄와 악을 묘사하는 일에서 안타까운 진보, 말하자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난 걸음(magni  passus  extra  viam)’을 내딛어 온 것을 날이 갈수록 깊이 걱정하고” 있었음을 표명한 것이다.

 

1920년대부터 회칙의 발표시기인 1930년대 중후반까지 할리우드는 스튜디오시스템과 스타시스템을 활용하여 세계 영화시장을 석권했고, 섹스와 매춘, 폭력과 범죄 등이 영화의 소재 또는 표현의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정도에서 크게 벗어난 걸음’에 대한 우려는 검열을 촉구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헤이즈 코드(Hays code)와 브린 코드(Brin code)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검열규준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더 이상 부패의 학교가 아니기’를 소망해 온 종교지도자들의 시도는 시대와 대중의식의 변화로 말미암아 종종 장애에 부딪힌다.

 

성 역할, 패션, 성적 표현 등 거의 모든 범위에서 전통적인 인습과 도덕률, 교회의 권고는 저항에 부딪히거나 무시되었다. ‘시네마 천국’의 예에서 검열 장면은 매우 순진하고 낭만적인 과거의 상기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사람들을 타락(?)시킬 수도 있다는 교회의 우려와 근심에 대한 방증인 셈이다.

 

그러나 교회는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를 추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와 영성”의 저자 로버트 존스톤의 지적처럼 영화에 대한 회피나 경계보다는 이해와 해석이 필요했고, 검열보다는 대화가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영화를 올바로 수용하고 그를 통해 ‘신적인 만남’을 찾는 좀 더 적극적인 변화로 이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체험은 훌륭한 영성체험이 될 수 있어

 

늘 그렇듯 영화 역시 좋은 (영향을 미치는) 영화와 나쁜 (영향을 미치는) 영화가 있고, 예술적 품위를 유지하는 영화와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데 주력하는 영화가 있다. 좋은 영화는 인간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경외감, 사랑과 희망, 선의를 고양시키는 영화이며, 나쁜 영화는 생명을 경시하고, 영혼을 파괴하고 황폐화시키며, 편협과 증오와 악을 전파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분하는 안목은 일정한 교육수준과 합리적 이성이 있다면 대체로 지니고 있으며, 그 영화가 어떠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좋은 영화인데 (또는 그렇게 보이는데), 디테일에서 동의하기 어렵다거나, 픽션을 전제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종교적 교리에 저촉되는 경우 등일 것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씨 인사이드(Sea  Inside)’ 같은 영화는 휴머니즘 차원에서 존엄사에 접근하고 있으며, ‘다빈치 코드’는 영지주의와 성배에 대한 음모론적 시각이 팽배하고, ‘아바타’는 범신론과 샤머니즘 요소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여러 경우들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종교적 접근이 아니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영화들이고, 오히려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씨 인사이드’는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이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는 자칫 혼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영화에 대한 이해와 해석, 대화는 이러한 영화들에 더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 신적인 만남, 바로 영성에 대한 고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이다.

 

그런데 한국 가톨릭교회는 영화에 대해 너무 무심하고 소홀한 것 같다. 개신교는 기독교영화제를 개최하거나 제작하고 목회활동에 영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신자들의 영화 감상이나 비평 활동을 지원하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가톨릭교회는 어떤가? 가톨릭영화제 준비 움직임이 있다 슬며시 사라지고, 평화방송의 영화 프로그램도 없어졌으며, 베네딕토 미디어의 활동도 예전 같지 않다. 영화(영상)의 시대에 가톨릭교회는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를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영화는 현실 재현성과 감각 및 감성적 호소력이 뛰어나 공감과 교감이 쉽게 형성되고 치유능력이 있으며, 인간과 세상 그리고 신에 대한 성찰을 제공함으로써 영성을 회복하고 고양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친숙하고 재미있게, 때로는 냉철하고 예리한 지성의 힘으로, 때로는 강력한 감성과 감동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좋은 길잡이만 있다면 영화(영상)체험은 훌륭한 영성체험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교회가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교회의 영화에 대한 ‘깨어있는 관심’일 것이다.

 

* 조혜정 가타리나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이자 영화평론가. 국제영화평론가협회(FIPRESCI) 회원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과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경향잡지, 2010년 3월호, 조혜정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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