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 주간 월요일
다니엘 13,1-9.15-17.19-30.33-62수산나이야기 요한 8,1-11
2014. 4. 7. 등촌3동
주제 : 죽어야 할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몰기
다른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죽이기가 훨씬 쉬운 것이 사람이 흔히 하는 소리중의 하나입니다. 힘들어서 죽겠다, 배고파서 죽겠다, 미워서 죽겠다.....하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삶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보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부터 이렇게 부정적인 것을 즐겨하게 되었을까요? 물론 제가 하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해도 별로 의미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한다면 그 시점을 말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 삶에서 그 부정적인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美辭麗句,=아름다운 말로 듣기 좋게 꾸민 글귀)로 표현한다고 해도, 삶에서 드러내는 부정적인 자세로는 좋은 것을 만들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오늘 짧게 줄여 읽은 다니엘예언서나 요한복음말씀에는 각각 한명씩, 두 명의 여인이 죽을 운명에 부딪친 얘기가 나옵니다.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등장하는 여자는 둘 다 희생양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잘못을 하지 않았거나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곡해한 판정관들이 일을 이상하게 몰고 갔고, 희생양으로 등장한 여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은, 자기들 맘대로 해석한 율법을 근거로 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란, 인간세상에서 그 인간들이 실천하기를 바랐던 하느님의 뜻과 명령을 가리키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본뜻이었는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을 빙자해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특정한 대상을 선택해서 그 대상을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없앨 수 있는 아주 못된 일을 합리화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사람이 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으로, 어떤 사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라는 아주 신기한 말이 있습니다. 헌데, 이 말은 세상에서 권력을 가졌다고 하는 자들이 자기 입맛대로 세상을 쥐고 흔들고 싶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고, 남들 밑에 눌린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이런 말이 통용되는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이 적용되는 불공평한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는 내가 그런 권리를 행사하는 세상에 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율배반(二律背反,=<논리>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명제가 동등한 권리로서 주장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통용될 진정한 세상은 이런 못된 논리가 사라져야 하는 세상인데, 언제나 가능하겠습니까?
다니엘이 등장하여, 원로로 활동했던 두 노인에게 올바른 심판을 내렸고, 간음이라는 죄악을 범한 여인이 있었지만, 그 죄를 심판하지 않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배울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어떻게 대하든지, 입장만 바꾸면 우리도 충분히 같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내리신 율법이 세상에는 어떻게 실현되기를 바라셨을까요?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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