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1일 (월)
(백)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강론자료

2014-0511.....부활4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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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5-10 ㅣ No.1522

  부활제4주일 (가해)

사도행전 2,14.36-41           베드로12,20-25         요한 10,1-10

2014. 5. 11. 등촌3.

 

주제 : 세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사람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오늘은 부활4주일이고, 1964년부터 제정되어 기억하고 있는 성소주일입니다. 성소(聖召)라는 말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가리키고 그에 응답하는 것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세상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성소라는 말은 넓은 의미이고, 좁은 의미로 말하면,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 성소주일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성소주일에 우리가 먼저 할 것은, 우리들 삶에 적용할 하느님의 부르심은 과연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현실에 묻혀 바쁘게 살더라도 그 현실을 향하여 질문해야합니다. 현재라는 것이 과거의 특정한 순간에 경험과 미래에 대한 계획을 포함해서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의 지식과 지혜가 늘어났고 현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안목(眼目,=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문과 학식)이 생겼기 때문에, 그 안목을 적용해서 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답을 하는 것이 질문과 대답이라고 할 것입니다.

 

올해 8월에 우리나라에 오시어, 광화문광장에서 시복식을 거행하실 266대 프란체스코교황님의 행동과 모습을 보고서, 파격적인 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교황님의 행동을 보고서 파격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시대의 상황에 따라 우리 신앙이 대답해야 할 말이나 행동을 그만큼 미루어왔다가 한꺼번에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성소주일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표현에는 양과 목자의 관계를 이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있습니다. 목축을 주업(主業)으로 삼지 않는 우리민족이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한 이야기겠지만, 그 관계를 설명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이야기입니다. 목자의 사명은 양이 좋을 풀을 안전한 장소에서 먹을 수 있도록 이끌고 그러한 장소를 확보해주는 것입니다.

 

목자가 이러한 사명을 다할 때, 보호를 받은 양은 목자에게 젖을 주고, 고기를 주고, 가죽을 줄 것입니다. 양을 얘기하고 목자를 말하는 세계에서는 양이 목자의 역할을 대신할 가능성은 없지만, 그 표상을 이용하여 세상의 삶을 설명할 때,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혹시라도 내가 양의 입장에서 산다고 하면서도 목자를 향해서 내가 받을 권리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달리 말하면, 내가 목자의 위치에 서 있는 존재이면서도 양으로부터 우유나 고기, 그리고 가죽만 얻으려고 하면서, 양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 어느 것도 베풀어줄 생각이 없는 목자는 아닐까요?

 

오늘 성소주일에 들은 복음말씀에, 예수님은 당신이 목자(!)’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은 없습니다. 또 당신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가리켜 너희는 내 인도를 받아야 하는 양(!)’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도 없습니다. 양과 목자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는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통해서 알아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담아 설명하시는 일을 그대로 알아듣든지, 아니면 우리가 세상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기준을 앞세워서 내가 하는 생각과 내 모습을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든지 우리가 가진 자세에 따라 우리들 삶에 나타난 모양은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것이 옳은 자세이고 갖추어야 할 자세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양 우리에 들어가는 자들의 문, 문 안쪽에 있는 양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것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살 수 있을까요? 그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려면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찾는 세상의 사람들을 향하여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도록 노력할 것이고, 나에게 넘치도록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양들에게 베풀어주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놀라운 은총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로서 세상의 위협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베드로사도는 삶의 변화를 위하여 회개를 말했고, 세례의 은총을 각자의 삶을 통해서 드러낼 것을 주문했습니다만,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무엇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산다고 해서, 세상에 있는 고통과 힘겨움, 삶을 위협하는 것들에게서 완벽한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두려움과 곤경들을 겪으면서도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신의 삶을 봉헌하면서 사는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그 길을 준비하는 신학생들과 성소에 응답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청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해주시라고 부탁하는 날입니다. 세상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도는 세상의 삶을 바꾸는데 아무런 힘도 없다고 말하면서 그 어떤 기도도 하지 않겠지만,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사람의 생각으로 세상을 향하여 뭔 일을 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사람으로 살 것입니다. 오늘 성소주일을 지내면서 이렇게 기도할 것을 초대받은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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