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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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오락 프로그램, 웃음의 영성인가 웃음의 조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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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300

오락 프로그램, 웃음의 영성인가 웃음의 조작인가?

 

 

옛날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은 너무나 비대해졌다. 군부 독재시절인 1985년에 정부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채널별로 한 개 씩만 남기고 모두 없애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코미디가 너무도 저질이라 국민의 정신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와 비교할 때 현재 우후죽순으로 편성되어 있는 오락 프로그램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갖게 된다. 오늘날 수적으로도 풍부하고 다양화된 오락 프로그램들은 우리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저질적, 폭력적, 엽기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가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락은 필수적인 삶의 요소로 정착되어 있다. 교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연예·오락 프로그램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교리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기도 하고 ‘웃음과 휴식의 영성’에 공감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의 문화에 일조하는 오락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비판과 정화의 예언자적 사명이 필요하다고 보겠다.

 

 

다양화된, 그러나 진부한 오락 프로그램

 

연예·오락 프로그램에는 ‘버라이어티쇼, 토크쇼, 코미디, 시트콤, 게임, 뮤직’ 등 다양한 하위 장르가 있다. 일요일 저녁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으로는 <일요일은 101%>(KBS 2TV), <일요일 일요일 밤에>(MBC), <일요일은 좋다>(SBS)가 있다. <코미디 하우스>(MBC), <폭소 클럽>(KBS 2TV), <개그 콘서트>(KBS 2TV)는 개그, 마술, 강의, 노래, 정치 풍자, 슬랩스틱 등 여러 종류의 코미디 형식을 담고 있다. 얼마 전에 1000회를 기록한 <가족 오락관>(KBS 1TV)이나 <전파 견문록>(MBC)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오락 프로그램이다. <논스톱 4>(MBC)나 <두근두근 체인지>(MBC)와 같은 청춘 시트콤과 <달레네 집>(KBS 2TV)이나 <압구정 종가집>(SBS)과 같은 가족 시트콤은 스토리 전개를 통해 유머를 선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연예가 정보, 게임, 노래를 위주로 편성된 프로그램들이 있다.

 

단순한 웃음과 재미를 주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연예·오락 프로그램은 정보를 제공해 교육적 효과를 내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소외된 이웃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봉사 프로그램’, ‘현장체험 프로그램’ 또는 ‘교훈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한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오락 프로그램들은 다른 장르보다 시대의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대응하는 특성이 있어 시청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새로운 사회 분위기를 선도하기도 한다.

 

물론 연예·오락 프로그램 역시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방송사마다 시청률 경쟁을 하느라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스타들을 등장시키며, 주 시청 시간대에 오락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편성하여 시청자의 다양한 취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내용 면에서도 획일적인 기획, 진부한 진행방식을 보이며, 채널 간 차별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봄과 가을을 맞아 프로그램 개편을 할 때마다 공익성을 주장하지만, 고질적인 상업주의 접근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

 

최근의 오락 프로그램들은 단순한 오락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기능에서 벗어나 다목적이며 전문적으로 변하고 있다. 오락, 여행, 또는 게임을 하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비타민>(KBS 2TV)은 스타들이 참여하여 시청자들에게 건강 정보를 전달해 준다. <생방송, 퀴즈가 좋다 II>(MBC) 역시 퀴즈 형식을 통해 정보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프로그램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MBC)의 최고 인기 코너인 “러브 하우스”는 이 프로그램의 간판 격으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다. “러브 하우스”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가족 가운데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살고 있는 집을 선택하여 새집으로 고쳐줌으로써 당사자나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요일이 좋다>(SBS)의 “사랑의 위탁모”에서는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를 연예인이 위탁모가 되어 사랑으로 키우는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국내 공개입양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재미와 감동뿐만 아니라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미 종영되었지만 우리 사회를 선도하고 공익적인 역할을 해온 (MBC)는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하자 하자”, “아시아 아시아” 등의 코너를 통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추천한 도서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독서 열기를 불러일으켰고, 전국을 돌며 도서벽지에 ‘기적의 도서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청소년 교육 코너인 “하자 하자”는 실제 교육현장에서 ‘0교시 폐지’나 ‘청소년증’ 도입에 커다란 촉매제 역할을 했다. 특히 “아시아 아시아” 코너는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을 초대해 인간적인 만남을 제공해 줌으로써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또한 국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이끌어내면서 인권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했다. 이러한 연유로 는 계도성을 띤 오락 프로그램으로 인정을 받아 ‘가톨릭 매스컴 상’(2003년)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심야시간에 성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인 <폭소 클럽>(KBS 2TV)에서는 다양한 형식으로 개인과 사회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블랑카의 뭡니까, 이게?”는 외국인 노동자 블랑카의 눈으로 본 한국의 폐단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블랑카는 어눌한 한국말로 우리나라에서 일하면서 겪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이 코너는 임금착취, 인격모독, 인종차별의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인권유린을 당하는 이주노동자 편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과 이중성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시사적인 유머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모든 오락 프로그램이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즐거움이 있으면서도 교훈적이며 선도적인 프로그램, 더 나아가서는 국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공익적 프로그램이 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각 채널 간 시청률 경쟁으로 연예·오락 프로그램들은 질적 저하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의식을 오염시키고 썩게 하는 죽음의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오락지상주의의 위험성

 

최근 통계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오락 추구적 텔레비전 시청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과거 뉴스 프로그램을 선호하던 30-40대 남성층들이 대거 스포츠 프로그램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10-20대의 오락 프로그램 시청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큰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오락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심리를 즐겁게 만드는 활동이며 주로 여가시간에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가 여가·소비사회로 전환되면서 레저, 스포츠 또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쉽게 많이 즐기는 여가는 텔레비전 시청이다. 요즘은 인터넷 초고속망의 대중화로 온라인에서 게임이나 통신으로 상당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텔레비전 시청은 모든 계층에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시청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오락 프로그램의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은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비판적인 사회학자 닐 포스트먼은 자신의 저서 『죽도록 즐기기』(정탁영·정준영 공역, 1997년)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 바 있다. “대중들이 지엽적인 문제에 온통 정신이 팔리거나, 문화적인 삶이 끊임없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그 국가는 분명히 문화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뉴스조차도 대부분 연성 뉴스로 변하면서 새롭게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가 뜨고 있다. 모든 것이 즐기는 식으로 구조화될 때 우리는 어두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오락지상주의에 빠지게 되고, 결국 정신적 죽음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로마의 몰락은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라기보다 내부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텔레비전 방송사들도 모든 장르의 오락화를 조장하면서 시청률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이다. 시청률을 높이려고 주 시청 시간대에 드라마를 비롯한 각종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집중하여 편성하고 있다. 따라서 오락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이 획일적이고 진부한 진행방식을 낳게 되어 채널 간 차별성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에는 가수, 탤런트, 개그맨, 영화배우, 아나운서 등이 집단으로 출연하여 신변잡기적인 잡담과 엽기적인 행동으로 일관하기 십상이다. 또한 스타에 의존하는 제작 행태 때문에 겹치기 출연이 비일비재하고, 동시에 몇몇 연예기획사의 지상파 프로그램 독식을 부추기는 셈이 되고 있다. 특히 출연자들의 대부분은 그야말로 ‘쭉쭉빵빵한’ 몸매를 가진 여성 스타들이기 때문에 ‘몸짱’, ‘얼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외모지상주의를 은연중에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시청률 경쟁에 따른 오락 프로그램 편성은 궁극적으로 시청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코미디의 소재가 지나치게 남녀관계에만 치우쳐 부부나 청소년 갈등과 같은 소재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오락 프로그램은 10-20대를 대상으로 그 형식과 내용을 꾸미고 있어서 다른 계층을 소외시키는 꼴이 되었다. 

 

자극의 극대화를 위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나 행동에 의존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출연자들에게 물벼락이나 물대포를 쏘고, 머리에 쟁반을 떨어뜨리거나 엉덩이를 때리고, 목을 매는가 하면 지네 같은 혐오식품을 억지로 먹이는 가학적인 오락 프로그램을 양산하기도 한다. 방송위원회에서는 한때 “오락 프로그램의 ‘연예인 괴롭히기’는 주 시청층인 청소년들에게 가학이나 ‘왕따’를 당연시하도록 만들 우려가 높다.”라고 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심의하여 경종을 울리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연예·오락 프로그램들은 태생적 또는 후천적인 결함을 안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선도하기보다는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는 데 일조하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교회로서는 비복음적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갖기보다는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복음화하는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교리교육에 오락 프로그램을 활용하라

 

앞서 보았듯이, 연예·오락 프로그램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교회는 역기능을 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복음적 가치관으로 비판하고 정화해야겠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프로그램은 예비신자나 주일학교 교리교육 또는 성서공부나 강론 등의 교회교육에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들은 시대의 문화적 조류에 적합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도록 제작되고 있다. 교회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 발견하여 이를 교리교육에 이용한다면 더욱 재미있는 수업이 될 것이다. 예수님도 당시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실 때 주변에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청하셨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청하게 하셨다(요한 4, 1-42). 예수님은 평범한 물을, 영원한 생명의 물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활용하셨던 것이다. 교회에서도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들, 특히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활용한다면 신앙교육이나 전례를 더욱 활기있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해피 투게더>(KBS 2TV)에는 “쟁반 노래방” 코너가 있다. 학창시절에 즐겨 불렀던 노래(동요, 가곡 등)를 들은 다음, 가사를 틀리지 않고 외워 부르는 게임인데, 틀리면 머리 위에 매달려있는 쟁반이 모든 출연자들에게 떨어지는 벌칙이 주어진다. 이러한 “쟁반 노래방” 형식을 빌려 초등부 주일학교에서 교리시간에 응용하면 그냥 교리내용을 암기하게 하는 것보다는 더욱 재미있는 교리시간이 될 것이다. 그 밖에 <진실 게임> (SBS)이나 <전파 견문록>(MBC) 또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MBC)의 한 코너인 “브레인 서바이버”와 같은 프로그램들도 교리교육에 도입하여 활용한다면 피교육자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교리를 배울 수 있는 적극적인 교육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웃음의 영성

 

웃음은 이 세상에서 인간성 회복을 위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불안한 심리를 웃음으로 풀려는 경향이 짙다. 웃음은 긴장을 풀게 하고 휴식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여가를 즐기려 하는데, 누구나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웃음일 것이다. 

 

‘그리스도교’ 하면 흔히 십자가에 달리신 고통스러운 예수님을 기억하기 때문에 즐거움, 웃음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삶의 즐거움, 감사, 희망을 누리며 사는 존재이다. 예수님의 고통스런 십자가가 아니라 영광스런 부활이 우리 신앙의 마침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웃음과 즐거움이 없는 고통만의 신앙은 ‘반쪽’ 신앙이다. 웃음 속에서 나와 하느님의 참된 관계가 이루어지고, 서로의 미소를 통해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웃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웃음을 제공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남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적극적인 사랑을 베풀 수도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나눔은 참으로 아름다운 봉사가 될 것이다.

 

[사목, 2004년 9월호, 김민수(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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