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2003년 사제 성화의 날 성직자성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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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99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다리오 카스트리욘 오요스 추기경은 2003년 5월 31일에 다음과 같은 '사제 성화의 날' 주제를 보내 왔다.

 

 

사제 성화의 날

(2003년 6월 27일, 예수 성심 대축일)


성체성사와 사제 : 하느님의 사랑으로 결합된 뗄 수 없는 관계

 

 

사제는 성체성사에 대한 책임이 있다

 

예수 성심 대축일에 우리 사제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임없이 흘러 나와 ‘탁월한 은총’인 성찬례를 통하여 온 인류에게로 퍼져 나가는 사랑을 관상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목요일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vivit)는 지극히 특별하고도 중요한 이 은총으로 우리의 관심을 이끌어 들입니다. 우리 사제들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은총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에 성체성사의 능력을 알릴 책임을 집니다.

 


신앙의 요구

 

미사 성제를 지낼 때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서 ‘신앙의 신비여.’ 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흠숭을 불러일으키는 기적과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성목요일 회칙에서 “이 위대한 신비, 자비의 신비 앞에서 우리 사제들과 함께 조배하기를”(「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11항) 바라시는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시며,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극진한’(요한 13,1 참조) 사랑,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11항).

 

미사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에 대한 기념제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희생 제사에서 끊임없이 생명을 얻습니다. 이 희생 제사는 성품 교역자의 손으로 그 제사를 바치는 모든 공동체 안에 언제나 새롭게 현존하며 성사적으로 영속하기 때문에, 교회는 신앙에 충만한 기억뿐만 아니라 현실의 만남을 통해서도 희생 제사에 다가갑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의 인류를 위하여 단 한번 영원히 이루신 화해를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제시합니다.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성찬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제사입니다”(12항).

 

성찬례는 고유한 의미에서 볼 때 희생 제사입니다. 먼저,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바치신 선물입니다. “그 희생 제사를 아버지께서는 받아 주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필립 2,8) 당신 아드님의 전적인 자기 증여에 대한 보답으로 당신의 자부적 선물을 주셨으니, 이것이 부활로 불사불멸하는 새 생명의 보장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당신의 희생 제사를 맡기심으로써,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결합하여 자신을 봉헌하도록 부름 받은 교회의 영적 희생 제사를 또한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13항).

 

또 특별히, 교황 성하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성찬의 희생 제사는 구세주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뿐만 아니라 그분의 희생의 정점인 부활의 신비도 드러냅니다. 이것은 살아 계시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 안에서 ‘생명의 빵’(요한 6,35.48), ‘살아 있는 빵’(요한 6,51 참조)이 되시는 것과 같습니다”(14항).

 

그러므로 희생 제사의 봉헌은 새 생명의 원천입니다. 희생 제사의 구원 능력은 주님의 몸과 피를 성체로 받아 모실 때 완전히 실현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바로 그분을 받아 모십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내어 주신 몸과,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마태 26,28) 피를 받아 모십니다”(16항).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당신 성령을 내려 주십니다”(17항).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먹고 사는 우리가 그분의 성령을 가득 받아 그분 안에서 한마음 한몸이 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심으로써 당신 성령을 우리 안에 더욱 가득 부어 주십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이미 성령을 충만히 받았고,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의 ‘인호’를 받았습니다”(17항).

 

또한, “주님께서 영광에 싸여 오실 때까지”라는 말에서 우리는 성찬례의 종말론적 의미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충만한 기쁨을(요한 15,11 참조) 미리 맛보려는 목표를 지향합니다. 성찬례는 어느 모로 천국의 선취이며, ‘후세 영광의 보증’입니다”(18항).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천상 교회와 친교에 이르게 하는 이러한 지평들에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 지평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지평들은 “현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고, “우리가 하는 일상의 일 안에 살아 있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 줍니다”(20항).

 

이러한 책임 의식에 대한 요구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나 우리 사제들에게 그것은 특별히 가슴에 와 닿는 요구입니다. 모든 성찬 거행은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성찬 거행은 사제들에게 성체성사로써 변화시켜야 할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워 줍니다. “신앙의 신비여.”라는 말을 하거나 들을 때, 사제는 이러한 신앙의 요구가 자신에게 그리스도께서 그 기적을 이루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한다는 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사제는 스스로 모든 곳에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여야 할 절박한 임무를 느낍니다.

 

사제는 성령의 힘이 모든 인간의 삶 안에서 온전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맡겨진 사제 임무와 자신이 맡아야 할 임무를 새롭게 통찰합니다. 사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특히,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로 바꾸는 축성을 할 때마다 거기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현존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현존의 기적은 모든 사제의 마음에 직무를 수행하면서 만났던 온갖 장애들, 시련과 투쟁으로 짐이 되었던 장애들조차도 극복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으로 길을 열어 줍니다.

 

 

교회 건설과 성체 공경

 

회칙은 성체성사의 충만한 영성적 부요를 보여 주고자 합니다. 한편으로는 성체성사가 교회의 성장에 가져다 준 근본적 기여를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미사 밖의 실질적 현존에 대한 예배의 중요성에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성체성사의 이러한 풍요롭고도 지극히 중요한 측면을 우리 자신과 신자들에게 주지시켜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이전의 교도권과 일치하여, 성찬례는 교회 성장의 핵심이라고 가르칩니다.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 희생되신’(1고린 5,7)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성찬의 빵을 나누는 성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1고린 10,7 참조) 신자들의 일치가 표현되고 실현됩니다”(21항).

 

최후의 만찬에서 명백히 드러나듯이, 성체성사는 교회의 기원에서부터 교회 발전에 영향을 미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은 “새 계약의 백성인 새로운 메시아 공동체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 교회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신 하느님의 아드님과 성사적 친교를 이룸으로써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21항).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성체성사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지극히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제의 건설적인 역할을 명확히 보게 됩니다. 이러한 임무에 덧붙여지는 또 다른 임무는, 기도 안에서 흠숭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성찬의 현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경배는 교회 생활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25항)이라고 회칙은 말합니다. 이러한 경배에 대한 사제의 책임을 회칙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목자들은 성체 조배와 특히 성체 현시, 그리고 성찬의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계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흠숭 기도를 각자의 개인적 증거를 통해서도 장려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25항).

 

교황 성하께서는 모든 사제에게 이러한 증거를 보여 주도록 권유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개인적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 주기도 하십니다.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며,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처럼 예수님의 품에 바싹 기대어(요한 13,25 참조) 그분 마음 속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엇보다도 ‘기도의 예술’에서 뛰어나야 한다면,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나누는 영적 대화와 그분 앞에서 드리는 침묵 조배, 그분께 대한 진실한 사랑 안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성을 다시금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이러한 필요성을 얼마나 자주 느꼈는지 모르며,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힘과 위안과 지원을 얻었는지 모릅니다!”(25항).

 

이러한 신심 실천은 교회의 교도권과 수많은 성인들의 예로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권장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신 교황 성하의 개인적인 증언은 회칙을 읽는 모든 사제에게 성체 조배에서 흘러 나오는 신비로운 은총의 작용을 깨닫고 감사하도록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효과적인 관상과 성화의 원천이 됩니다.

 

 

성찬례와 직무 사제직

 

성찬의 희생 제사는 직무 사제직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회칙은 보편 사제직만으로는 성찬례를 거행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신자들은 자신의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찬의 봉헌에 참여하지만,” “성찬의 희생 제사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거행하고 온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0항) 것은 다름 아닌 성직자로 서품된 사제입니다. 이 직무는 “유효한 주교품을 처음부터 중단 없이 이어받는”(28항) 사도직의 계승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한다”는 말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 희생 제사의 창시자이시며 근본 주체이신 영원하신 대사제와 성사를 통하여 특별하게 일치한다는 의미입니다”(29항).

 

“성찬 거행을 위하여 모인 신자들의 모임이 진정한 성찬 모임이 되게 하려면, 그 모임을 주재하는 성품 사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공동체는 스스로 성품 사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러한 교역자는 사도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주교직의 계승을 통하여 공동체가 받는 선물입니다. 성품성사를 통하여 새로운 사제를 만들고 그에게 성찬례를 봉헌할 권한을 주는 사람은 주교입니다”(29항).

 

성품 교역자의 필요성은 교회 일치 운동의 관계에서 문제가 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 22항에서 말하듯이, “우리와 갈라진 교회 공동체들은 비록 세례에서 흘러 나오는 완전한 일치를 우리와 함께 이루지 못하고 또 특히 성품성사의 결여로 성찬 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하였다고 우리는 믿지만, 그래도 그들은 거룩한 만찬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이 만찬이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상징한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닙니다. 곧 “가톨릭 신자들은 갈라진 형제들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면서도, 성찬례의 본질을 흐리는 것을 묵과함으로써 진리를 명백히 증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의 예식에서 나누어 주는 친교의 빵을 거절하여야 합니다”(30항).

 

“마찬가지로, 주일 미사를, 위에서 말한 교회 공동체들의 신자들과 함께하는 초교파적 말씀 전례나 공동 기도 예식, 나아가 그들 공동체의 전례 예식 참여로 대신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30항).

 

가톨릭 공동체에서는 사제의 부족으로 성찬례를 거행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칙에서 지적하듯이 “이 모든 것은 충분한 구성원과 다양한 신자들이 본당을 이루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라 할지라도, 그들을 이끌 사제가 없다면 그 공동체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하고 비정상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 공동체에 사제가 없을 때, 공동체가 계속해서 주일을 거행하고 또 형제자매들을 기도로 이끄는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세례성사의 은총을 바탕으로 한 모든 신자의 보편 사제직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든 그러한 상황을 개선할 시도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결책은 공동체가 사제를 기다리는 동안의 일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32항).

 

이러한 상황에는 오직 한 가지 개선책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거행들의 성사적 불완전성은 무엇보다도 모든 공동체가 주님께서 당신의 추수 밭에서 일할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마태 9,38 참조) 더욱 열심히 기도하게 만드는 촉진제가 되어야 하며, 또한 사제직 후보자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교육적 기준을 낮추는 해결책을 찾으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적절한 성소 사목 증진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결집시키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32항).

 

사제가 없어서 성찬례를 거행할 수 없는 공동체들을 볼 때, 사제는 자기 책임의 막중함과 자기 존재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사제는 또한 무엇보다도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외적으로도 드러나는 자신의 존재론적인 정체성에 명백히 투신함으로써, 사제 성소의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며 거기에 충실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쁘게 헌신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증언하고 또 사도직에 대한 증거를 보여 줌으로써, 사목적으로 사제 성소를 증진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성소 증진에만 모든 시간을 바치는 사제들도 있지만, 사제 성소 증진은 모든 사제의 개인적인 의무입니다.

 

 

성찬례와 교회 친교

 

회칙은 특별히 한 장을 할애하여 교회 친교를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의 목적이 교회를 건설하고 성장시키는 성찬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인 만큼 교회 친교는 참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교회의 특징인 친교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지상 순례 동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 또 신자들 간의 친교를 유지하고 증진하여야 합니다”(34항). “성찬례는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외아드님과 일치됨으로써 우리가 성부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를 완성하는 모든 성사의 정점으로 여겨집니다”(34항). “하느님께서는 가장 완벽한 결합으로 우리와 일치를 이루십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마음 안에 성체성사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을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34항).

 

성찬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친교는 개별 교회 안에서 일치의 가시적인 으뜸이며 토대인 주교와 이루는 친교입니다. 또한 모든 성찬 거행은 교황과 주교단, 모든 사제와 모든 그리스도교 백성과 이루는 친교입니다(39항 참조).

 

이러한 친교의 결과 가운데 하나로, 우리는 교회 일치 문제에서 특히 가톨릭 교회와 더욱 가까운 동방 교회의 형제자매들에 대하여 더욱 개방된 자세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여야 합니다. 동방 교회의 신자들이 자진하여 영성체를 요청하고 또 적절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러한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우리도 또한 그들에게 영성체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회칙 「하나되게 하소서」(Ut unum sint)에서 밝혔듯이 “가톨릭 성직자들이 특별한 경우에 가톨릭 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루지는 않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병자성사를 집전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46항 참조).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자들도 유효하게 집전하는 다른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이러한 성사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규범의 목적은 서로 다른 종파간에 영성체를 허용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자 개개인에게 영원한 구원에 필요한 중요한 영적 양식을 주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교회와 성찬례의 교리를 같은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성모님의 신앙으로

 

교황 성하께서 성목요일 회칙을 마치시며, 우리 사제들에게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성체성사가 신앙의 신비라면, 이 신비는 가장 완벽하게 그것을 받아들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믿음 앞에 놓인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신앙을 우리 사제들과 함께 나누시고, 우리가 교회의 생명을 위하여 성체성사를 증진할 의무를 다하도록 도와 주시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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