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2003년 제3회 가정성화주간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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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107

2003년 제3회 가정성화주간 담화문


가정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가정은 교회와 세상의 미래

 

해마다 한 해를 마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맞이하는 가정주일은 신앙 안에서 '가정'이라는 귀중한 삶의 터전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묵상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또한 '가정'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찾고 결심해야 하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올해로 세 번째 맞이하는 '가정성화주간'을 기념하는 것은 교회가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사명인 가정을 보살피고 바로 세우는 일을 실행해야 함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일입니다.

 

이미 각 교구별로 활발한 가정사목이 전개되고 있으며 가정이 사목의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다가오는 2004년에는 한국에서 열리게 될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총회에서도 '가정'이 중심주제로 다루어질 예정이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가정'을 주제로 공동사목교서가 발표될 계획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교회 내에서 가정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정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징표이며, 가정이 교회의 미래와 세상의 미래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2. 교회는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지금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중대한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른 생명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안락을 유지하려는 반생명적인 죽음의 문화가 온 사회를 뒤덮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모든 희망을 잃은 듯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심지어 온 가족을 죽음의 길로 끌고 가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을 뒤덮고 있는 어둠과 죽음의 문화 속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은 가정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이 처해 있는 이러한 현실은 가정의 정체성이 전체적으로 무너져 가고 있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가정 안에서 부부관계와 가족관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혼인에 대한 가치관의 붕괴로 말미암아 거룩한 혼인계약의 의미가 상실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이혼률의 급격한 증가와 저출산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결손가정이 증가함으로써 발생하는 부부와 자녀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性)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급증하고 있는 동거문화와 혼전 성교, 그로 말미암아 증가하는 낙태와 성의 문란 현상은 우리 사회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정이라는 기초적인 세포가 건강을 잃게 되면 그 사회는 내부로부터 치명적인 병을 앓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사회의 기반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이 가정의 문제에 교회는 물론 온 세계가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가정 문제의 위험 수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가정을 살리는 일에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쓰러져 가는 가정을 지키고 올바로 세우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교회가 이 시대에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사명이며, 세상과 교회의 미래를 지키고 준비하는 일인 것입니다.

 

 

3.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가정

 

그리스도인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의 사랑 안에 항구히 머물러야 합니다. 혼인의 계약으로 탄생한 가정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고 그 은총을 끊임없이 지속시키는 길은 서로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랑과 생명이 가장 충만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인간의 성숙이 이루어지는 못자리이며 가족관계를 통해서 체험한 사랑과 생명을 사회생활에 확대해 나가는 원천지입니다. 세상을 향해 가정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노력을 끊임없이 촉구하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인간의 구원자」, 10항)고 말씀하시며, 가정은 인간이 인간으로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자리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또한 "사랑에 의해 세워지고 생명을 받는 가정의 첫째 임무는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적 노력을 쏟으면서 일치의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며, 그 임무의 내적 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 가정이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 없이는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 없다."(「가정 공동체, 18항」)고 호소하십니다. 따라서 가정이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교회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하며 각 가정이 목표로 삼아야 할 가장 소중한 사명입니다. 가정이 본연(本然)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사랑의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족 서로가 끊임없이 사랑하기로 결심하며 실천할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가정 -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가정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를 가정의 중심으로 모시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시며 당신의 온 삶을 통해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세상의 참된 가치가 무너지고 인간의 삶이 점점 더 비인간화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자유와 개방의 선택은 우리의 삶을 자기만족과 이기심의 노예로 이끌었으며, 헛된 것들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들을 다 탕진하고 타락과 자포자기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기 몫을 챙겨 자신의 환상과 꿈을 좇아 아버지를 떠났지만, 이내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고 짐승들의 먹이로 허기를 채우던 아들이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그리워 발길을 돌려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품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멀리 떠나왔지만 지금이라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우리의 발걸음을 아버지께로 향한다면 이 세상은 다시 아버지께서 다스리시는 풍요로운 세상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 겪는 모든 사건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심을 생생하게 유지시켜 주고 일깨워 주는 것은 가정기도입니다. 각 가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치셨던 기도를 바치며 그분의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고 느낀다면, 가정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가족들의 유대는 더욱 튼튼해지며 가정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을 향해 비출 수 있을 것입니다.

 

 

5. 가정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가정은 그 자체로 교회의 모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가족간의 일치는 교회 일치의 분명한 계시와 실현입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평범한 일이나, 특별한 일이나 하느님 구원사업의 일부분이며 그리스도인의 믿음, 희망, 사랑의 살아 있는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 안에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마음과, 가정 안에서 말씀의 식탁을 차리는 일,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일을 충실히 함으로써 가정이 다양한 형태의 성소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예배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가정은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삼위일체의 사랑과 친교를 반영하는 성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교회의 모습을 증거하며,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서, 우리의 미래를 지켜 줄 것입니다.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면서 나자렛 성가정의 거룩한 모범으로 세상의 못자리인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려는 모든 가족들에게 성령께서 용기와 힘을 주실 것을 믿으며 모든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03년 12월 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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