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316.....사순2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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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3-15 ㅣ No.1487

  사순 제 2 주일 (가해)

창세기 12,1-4ㄱ            2티모테오 1,8-10        마태오 17,1-9

2014. 3. 16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초대를 듣기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상상외의 대답이 나올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들으면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질문에 충실히 대답할 사람도 있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질문에 대답해봐야,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해봐야 의미 없는 일이라고 미리 짐작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 기준이 될 원론(原論)우리가 올바른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올바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다시 뒤집으면,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현실에는 최선을 다하되, 그 현실을 대비하는 일은 최악을 예상하고 움직이라는 소리를 합니다. 우리가 아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낱말의 뜻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 준비나 대비를 한 사람에게 다가온 일들이 아무런 탈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면, 그것은 우리가 미리 대비한 일의 덕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도 다행스럽게도 잘못된 일이 없이 우리가 시간을 지냈다면, 그 기간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힘겨운 경험은 누구에게나 같을 것입니다.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오늘 복음말씀은 묵주의 기도 가운데, ‘빛의 신비 4의 내용이고,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모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던 3명의 가까운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놀랍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삶에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삶에 놀라운 일은 예고한 뒤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예고한 다음에 찾아오는 일과 대비한 다음 맞이하는 일들은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고, 우리들의 삶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남지도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놀라운 일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일이 우리들 삶에 일어나면, 그 일이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 신앙인의 삶에 활기를 주는 일이 되겠습니까? 다양한 사람이 함께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들은 그 가짓수가 꽤나 많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만난 3명의 제자는, 놀라운 일을 엉겁결에 만났고, 그래서 그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고 두려워했다고 전합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예수님의 놀라운 변화가 그렇게 끝난 것만도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늘 이러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제대로 응답하는 사람을 찾기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일에 하도 바쁘게 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들에 온통 신경을 쓰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먼저 들은 창세기독서의 말씀에서, 우리는 인간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헌데, 아브람에게 들려온 소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하느님은 사람이 예상하는 대로 말씀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하느님이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내가 하느님이 될 수 있고, 내가 하느님이라고 우겨야 합니다.

 

대한민국 땅에 사는 우리는 아브람이 어디에서 살다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나 멀리까지 흘러갔는지 모를 수도 있고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브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동한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400킬로미터 거리를 뛰어넘는 아주 먼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람이 이렇게 움직일 때, 어떤 말씀을 들었고, 아브람이 도대체 무엇을 믿고서 그렇게 먼 거리를 움직였는지 질문하고 싶어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창세기말씀도 그 내용을 전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나, 하느님이 축복하고, ,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나, 하느님이 대신 저주를 내리겠다고 선언하는 소리에 모든 것을 믿고 아브람이 길을 나섰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읽고 들은 창세기 말씀에는 그 내용만 나오지만, 그 문장에는 기록되지 않은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우리가 갖고 살아야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마다 그 자세는 다를 수 있습니다만, 그 대답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말씀이 두 번째 독서에 나왔습니다. 스승인 바오로가 자기 제자 티모테오에게 알려주는 내용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제자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원론(原論)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어, 거룩하게 살게 하시려고 부르셨다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스승이 제자에게 한 말씀이지만, 200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서 그 말을 이 시간에 전해 듣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도 티모테오가 얻은 삶의 결과에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익히고 따르는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겠는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우리들 삶에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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