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1년 제34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12-24 ㅣ No.26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2001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01년 1월 1일)


사랑과 평화의 문명을 위한 문화간 대화

 

 

1. 새 천년기의 여명에, 인간 관계는 진정한 보편 형제애의 이상에 더욱 고무될 것이라는 희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안정된 평화를 보장할 길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징표는 많이 있습니다. 형제애의 중요성은 위대한 인권 헌장들에서 선포되었으며, 여러 국제 기구들, 특히 국제 연합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 문화, 사회의 점진적 통합으로 이끄는 세계화 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형제애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신자들도 모든 이의 공통된 아버지이신 한 분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가 인류의 형제 의식과 더욱더 형제다운 공존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사실을 한층 더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 계시에 이 원리가 근본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2. 그러나 동시에 이 밝은 희망을 먹구름이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인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역사의 새 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인류는 피비린내 나는 격렬한 분쟁에 휩싸여 있으며, 같은 지역 안에 살지만 문화와 문명이 서로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 연대를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손쉬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오래된 증오와 심각한 문제들로 분노와 격노의 분위기가 일어나는 당사자들 사이의 차이를 해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나라에서 이민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문화와 문명이 다른 민족들 사이의 전례 없는 공존 상황으로 빚어지는 새로운 사회 형태의 문제들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평화의 미래가 위협받을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저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문화와 전통 간의 대화라는 주제에 대하여 성찰해 보도록 촉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화는 화합의 세계, 자신의 미래를 평화로이 바라볼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길입니다. 이것은 평화 추구의 핵심 주제입니다. 저는 국제 연합 기구가 2001년을 “문명 대화의 해”로 선포하여 이러한 절박한 요구에 관심을 촉구하였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그와 같은 문제에 손쉬운 해결책이나 즉시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어떤 형태의 예측도 불허하는 상황을 분석하는 것만도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이론적으로는 양립 가능하지만 실질적 차원에서는 어떠한 손쉬운 통합에도 저항하는 원칙들과 가치들을 결부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더 깊은 차원에서는, 이기주의와 인간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인들에게 언제나 윤리적 책임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성찰을 함께 나누는 것이 유익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의도로 저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역사의 이 중요한 시기에 교회와 모든 인류에게 하시는 말씀(묵시 2,7 참조)에 귀기울이면서, 여기서는 몇 가지 지침만을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류와 그 다양한 문화

 

4. 인간의 상황을 성찰할 때, 우리는 언제나 인간 문화의 복잡성과 다양성에 놀라게 됩니다. 모든 문화는 그 특수한 역사적 발전과 그에 따라 그 문화를 구조적으로 유일하고 독창적이며 유기적인 통합체로 만드는 특성 때문에 제각기 구별됩니다. 문화는 역사를 통한 여정에서 개인 차원이나 사회 집단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자기 표현의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성과 의지는 “자연의 재화와 가치를 계발하고”<1>, 사회 생활과 정치 생활, 안보와 경제 발전을 포함한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한 자신의 기본 지식을 더욱 차원 높고 체계적인 문화적 종합으로 통합시키며,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참으로 인간적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이러한 삶의 가치와 전망들, 특히 종교적 영역의 가치와 전망들을 강화하도록 끊임없이 촉구하기 때문입니다.<2> 

 

5. 문화는 언제나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요소들과 가변적이고 우발적인 요인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떤 문화를 일괄하여 살펴볼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문화와 구분되는 그 문화의 양상들에 놀라게 됩니다. 이러한 양상들은 뚜렷이 구별되는 요소들이 혼합된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을 각 문화에 부여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문화는 지리적, 역사적, 인종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독특하게 결합된 특정 지역에서 발전합니다. 각 문화의 “특수성”은, 지속적인 과정을 통하여 자기 문화의 영향을 받고 각자의 다양한 능력과 재능에 따라 자기 문화에 기여하는 그 문화의 전달자들 속에 명확히 반영됩니다. 모든 경우에 개인은 필연적으로 특정한 문화 안에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가정과 그들 주위의 사회 집단을 통하여, 교육과 지극히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통하여,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와 맺고 있는 관계 자체를 통하여 받아들이는 문화로 구별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결정론도 없으며, 단지 개인의 적응력과 인간 자유의 작용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 발전과 문화 소속

 

6. 한 사람이 자기 고유의 문화를 인격의 구성 요소로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은 특별히 인생의 시작 단계에서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사실이며, 그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특정한 ‘토양’에 굳건히 뿌리박지 않으면, 아직 상처받기 쉬운 나이에, 평화로운 균형 발전을 해칠 수 있는 지나치게 상충되는 자극들에 지배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인간은 가정, 지역, 사회, 문화의 차원에서 자신의 고유한 ‘기원’과 가지는 본질적 관계를 토대로 자신의 민족성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문화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어느 정도 ‘민족적’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몸소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 가족에 속하게 되심과 동시에 한 지역에 속하게 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영원히 나자렛 사람, 나자렛 예수로 남아 계십니다(마르 10,47; 루가 18,37; 요한 1,45; 19,19 참조). 이것은 사회적 심리적 요인들이 상호 작용하는 자연적인 과정으로서, 일반적으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지역에 대한 사랑은 편협함이 아닌 인류 가족 전체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3>, 소속감이 자기 찬양, 다양성 거부, 국수주의, 인종 차별, 외국인 혐오 등으로 변할 때에 발생하는 병리적 현상들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촉진되어야 할 가치입니다.

 

7. 따라서, 자기 문화의 가치를 평가할 줄 아는 것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전형적인 인간의 실재이고 역사적인 상황의 현실인 모든 문화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특정 문화에 대한 소속감이 고립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다른 문화에 대한 사심 없고 편견 없는 지식입니다. 나아가, 문화들을 주의 깊고 철저하게 연구하여 보면, 문화들은 흔히 그 외면적인 다양성 아래에서 중요한 공통 요소들을 보여 줍니다. 이는 문화와 문명의 역사적 연속성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에게 인간 자신을 보여 주시는<4>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이천 년 역사의 경험에 의존하여 “모든 변천 속에도 변하지 않는 많은 것이 들어 있다.”<5>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연속성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 계획의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화적 다양성은 인간의 일치라는 더욱 폭넓은 전망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일치는 근본적으로 역사적이고 존재론적인 조건이며, 문화적 다양성의 심오한 의미는 이것에 비추어 파악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일치의 요소들과 다양성의 요소들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만이 모든 인간 문화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해석하게 할 수 있습니다.<6>

 

 

문화적 차이와 상호 이해

 

8. 과거에는 문화적 차이가 흔히 민족들 간의 오해의 근원이자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지금까지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일부 문화의 다른 문화에 대한 공격적인 주장을 목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불안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재난을 가져오는 긴장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러한 상황은 자신의 문화와 다른 문화적 환경, 적대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으로 기울기 쉬운 다수 문화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종적 문화적 소수민들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 선의의 사람들은 특정 공동체의 문화적 경험을 특징짓는 기본적인 윤리적 지향을 검토하여야 할 것입니다. 문화는, 그것을 창조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사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악의 신비”(1데살 2,7 참조)에 얼룩져 있으므로, 그 문화들 역시 정화되고 구원될 필요가 있습니다. 각 인간 문화의 진정성, 그 문화의 근원을 이루는 정신의 건전성, 그 도덕적 의미의 타당성은 인간에 대한 문화의 기여, 모든 차원, 모든 환경에서 인간 존엄을 증진할 수 있는 문화의 능력으로 어느 정도는 측정될 수 있습니다.

 

9. 문화가 외부의 모든 유익한 영향을 거부하게 만드는 근본주의적인 정체성 주장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서구 세계에서 비롯된 문화적 유형들에 대한 기타 문화들의 맹목적인 모방이나 적어도 그 핵심적 측면에 대한 독창성 없는 모방 역시 그 못지 않게 위험합니다. 그리스도교 기원에서 벗어나 있는 이러한 유형들은 흔히 세속주의나 실천적 무신론, 철저한 개인주의 형태를 그 특징으로 하는 생활 방식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이러한 현상은 대중 매체의 강력한 선전으로 뒷받침되고 있으며, 그 의도는 생활 방식과 사회적 경제적 계획,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다른 모든 훌륭한 문화와 문명들을 그 내부에서부터 썩어 가게 하는 세계관을 전파하려는 것입니다. 서구의 문화적 유형들은 그 뛰어난 과학적 기술적 특색 때문에 유혹적이고 매력적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인간적, 정신적, 도덕적 빈곤의 심화는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유형을 만들어 내는 문화는 최고의 선이신 하느님을 제거함으로써 인류의 선을 보장하려는 파멸적인 시도를 특징으로 합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경고한 대로,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어지고 맙니다”.<7> 더 이상 하느님께 준거를 두지 않는 문화는 그 혼과 방향을 상실하고, 죽음의 문화가 됩니다. 이러한 죽음의 문화는 20세기의 비극적 사건들로 충분히 입증되었으며, 현재는 서구 세계의 일부 특정 집단에 현존하는 허무주의에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문화간 대화

 

10. 인간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다른 사람에 대한 아낌없는 자기 증여를 통하여 성숙해집니다.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에게 봉사하는 문화는 대화와 친교를 통하여 완전해져야 합니다. 이러한 대화와 친교는 “한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신”(사도 17,26)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인류 가족 최초의 근본적 일치에 토대를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세계 평화의 날 담화의 주제인 문화간 대화는 인간 본성 그 자체와 문화의 본질적인 요구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인류 가족의 근원적 일치에 대한 역사적 창조적 표현인 문화들의 특수성을 보호하는 대화이며, 문화들 간의 이해와 친교를 돕는 대화입니다. 그리스도교 계시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최상의 원형을 발견하는(요한 17,11.21 참조) 친교의 개념은 결코 우둔한 획일화나 강요된 동화나 융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러 형태의 다양성의 수렴을 나타내므로, 풍요로움의 상징이며 성장에 대한 약속입니다.

 

대화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으로 이끌어 주고, 일치에 대한 인류 가족의 근본적 소명이 요구하는 상호 수용과 진정한 협력으로 마음을 열어 줍니다. 이와 같이, 대화는 사랑과 평화의 문화를 건설하는 훌륭한 수단입니다. 저의 전임자이신 존경하는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사랑과 평화의 문화를 우리 시대의 문화, 사회, 정치, 경제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상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제삼천년기를 시작하며, 엄청난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 희망과 평화의 표징을 볼 수 없어 때때로 좌절하는 세계에 다시 한 번 대화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범세계적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과 위험

 

11. 개인 생활과 인간 생활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영향을 받는 오늘날에는 문화간 대화가 특히 절실합니다. 우리 시대는 과거의 유형들과 다소 단절된 새로운 문화적 유형의 노선에 따라 사회를 형성하는 범세계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입니다.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세계 모든 곳의 모든 사람이 가장 최신의 정확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범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영상과 언어의 자유로운 흐름은 사람들 사이의 정치 경제 관계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까지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지만, 일부 부정적이고 위험한 측면들도 지니고 있습니다. 몇몇 나라들이 이러한 문화 “산업”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자국의 상품을 지구 곳곳의 대중들에게 보급하고 있으며, 그 수효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은 문화적 특수성을 해치는 강력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품들은 은연 중에 가치 체계를 내포하고 전달하므로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정체성의 박탈과 상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민 문제

 

12. 대화의 방식과 문화는 이 시대의 중요한 사회 현상인 이민이라는 복잡한 문제에 이를 때 특히 중요합니다. 지구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은 흔히 당사자들에게는 두려운 모험이며, 그와 함께 이민들을 보낸 나라와 그들이 정착하는 나라들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면서 전통과 관습의 혼합을 초래합니다. 이민들을 받아들이는 나라들이 그들을 어떻게 맞아들이고, 이민들이 새로운 환경에 얼마나 잘 통합하는가 하는 것 또한 다양한 문화들 사이에 얼마만큼의 실질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문화적 통합의 문제는 오늘날 많은 논란이 되고 있으며,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를 균등하고 공평하게 보장할 최선의 방법을 자세히 명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민은 지극히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졌고,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여러 문명에서, 이민은 새로운 성장과 부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또 어떤 경우, 지역민과 이민들은 문화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서로 존중하고 관습의 다양성을 받아주거나 용인함으로써,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로 다른 문화들의 만남과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거기에 따르는 긴장은 주기적인 갈등 분출의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13. 그러한 복잡한 문제에서는 ‘마술 같은’ 해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준거로 삼을 수 있는 몇 가지 기본적인 윤리 원칙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먼저, 이민들은 언제나 모든 인간의 존엄에 합당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민들의 유입을 통제하는 문제에서, 공동선을 마땅히 고려한다면 이 원칙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모든 인간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합당하게 맞아들이고 또 인간답고 평화롭게 살기 위하여 새로 이민해 온 사람들과 지역 주민들 양편에 모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려하는 것입니다. 이민들이 가져 온 문화 관습은 자연법이나 인간의 기본권에 내재된 보편적 윤리 가치에 위배되지 않는 한 존중되고 수용되어야 합니다.

 


문화에 대한 존중과 서로 다른 지역의 ‘문화적 측면’

 

14. 이민들이 대다수 지역민들의 관습과 쉽게 양립될 수 없는 그들의 특정한 문화 관습을 공적이고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어느 정도 있는지 결정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진정 열려 있는 분위기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역사적 시간에, 주어진 장소, 주어진 사회적 여건에서 공동선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를 하여야 합니다. 이는, 가치에 대한 무관심에 굴복하지 않고 정체성에 대한 관심과 대화 참여 의지를 함께 지니게 하는 개방 정신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데에 크게 달려 있습니다.

 

다른 한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태어날 때부터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의 균형 있는 발전, 특히 인생을 시작하는 민감한 단계에서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룩하도록 하는 한 지역의 특수한 문화적 능력을 과소 평가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적 균형’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문화를 참조하여 각 지역에 일종의 “문화적 균형”을 보장할 합당한 방법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균형은, 소수 민족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특정한 ‘문화적 측면’의 지속적인 현존과 발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여기서 문화적 측면이란 한 민족의 역사와 그 민족 정체성의 불가분의 일부인 언어와 전통, 가치 등 기본적 유산을 뜻합니다.

 

15. 그렇지만 물론 한 지역의 문화적 측면의 균형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은 법적 조치들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조치들은 주민들의 정서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문화가 특정 민족과 특정 지역에 활력을 주는 능력을 잃게 되면 그러한 조치들도 불가피하게 바뀌게 되어 있고, 박물관이나 예술관이나 문예관에 보존되는 유산에 불과하게 됩니다.

 

요컨대, 문화가 진정 살아 있는 한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죽어버린 문화라면 어떠한 법도 그것을 살아 있게 할 수 없습니다. 문화간 대화에서 각 문화는 상대 문화에 자기가 믿고 있는 가치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사람들의 자유와 양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간 정신에 부드럽고 힘차게 파고드는 진리는 오로지 진리 그 자체의 힘으로 드러날 뿐입니다.”<8>

 

 

공통 가치들에 대한 인식

 

16.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는 특별한 수단인 문화간 대화는, 모든 문화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모든 문화에는 공통된 가치들이 있다는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인류의 가장 참되고 독특한 특징들을 드러냅니다. 관념적인 편견과 이기적인 욕심을 물리치고, 사람들에게 이러한 공통된 가치들에 대한 의식을 일깨움으로써,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대화에 이바지하는 그러한 본질적으로 보편적인 문화적 ‘토양’을 육성하여야 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들도 이러한 과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다른 종교의 대표들과 수 차례 만나면서 - 특히 1986년 아시시와 1999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가졌던 만남이 생각납니다 - 저는 서로 다른 종교인들 사이의 상호 개방이 평화의 대의와 인류 가족의 공동선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연대의 가치

 

17. 세상에 불평등이 증대하고 있는 이 때, 더욱 폭넓게 강조하여야 할 최고의 가치는 물론 연대의 가치입니다. 사회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다른 중간 사회 단체로, 나아가 시민 사회 전체와 국가 공동체로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서로가 서로를 발전시키는 기본 관계에 의존합니다. 국가들도 서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범세계적인 상호 의존의 현실은 전인류 가족의 공동 운명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고, 사려 깊은 모든 사람에게 연대의 덕목을 더욱더 소중히 여기도록 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상호 의존의 증대가 여러 가지 불평등을 폭로해 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곧, 부국과 빈국의 격차,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과 생활 필수품마저 부족하여 존엄성을 손상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각국의 사회적 불균형, 자연 자원의 무책임한 이용으로 야기되고 심화되는 인간의 타락과 환경의 파괴 등이 그것입니다. 일부 지역에서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과 불균형이 악화되어 왔고, 일부 최빈국에서는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정의의 증진이야말로 진정한 연대 문화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남는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문제가 아니라, “제외되거나 주변화된 온 인류 가족을 경제적 인간적 발전 범위 안으로 진입하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가 풍부하게 생산하는 잉여물에서 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생활 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는, 이미 확립된 권력 구조의 변화를 요구합니다.”<9>

 

 

평화의 가치

 

18. 연대의 문화는 모든 사회, 그리고 국가와 국제 활동의 으뜸가는 목적인 평화의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들 간의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도정에는 세계가 직면해야 하는 여러 가지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룰 수 없는 선택을 부과합니다. 불안을 확산시키는 군비 증강과 핵확산 방지 노력의 미흡한 진전은 경쟁과 갈등의 문화를 조장하고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에는 국가들뿐만 아니라 준군사 단체와 테러 조직 등 비국가 단체들도 가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계는 과거와 현재의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인 지뢰와 끔찍한 생화학 무기의 사용이 가져온 비참한 결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국가 사이의 알력, 일부 국가의 내란, 만연된 폭력 등 국제 기구도 국가 정부도 거의 손 쓸 수 없어 보이는 상존하는 위협들에 대하여 무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위협들에 맞서 우리는 민족들 사이에서 평화와 이해의 대의를 촉진하는 구체적이고 시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느껴야 합니다.

 

 

생명의 가치

 

19. 문화들 사이의 진정한 대화는 상호 존중의 감정은 물론 생명 자체의 가치에 대한 생생한 의식을 고취시킵니다. 인간의 생명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신성하고 침범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실재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선이 보호되지 않을 때 평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를 염원하면서 생명을 경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시대는 생명에 대한 아낌없는 봉사와 헌신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잔인함과 무관심으로 고통스럽고 가혹한 운명을 맞이한 슬픈 광경도 목격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살인, 자살, 낙태, 안락사, 신체 상해, 육체적 심리적 고문, 온갖 형태의 부당한 강압, 독단적인 투옥, 사형에 대한 불필요한 의존, 국외 추방, 노예 소유, 매춘, 여성과 어린이 매매 등 비극적인 죽음의 악순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연구를 위한 인간 배아의 복제와 이용과 같은 유전 공학의 무책임한 실태를 더 보태야 합니다. 이것은 자유, 문화의 발전, 인류의 진보를 꾀한다는 불합리한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 이러한 잔학 행위에 희생될 때, 인간의 가치와 신뢰, 존중, 상호 부조 위에 건설되는 인류 가족의 개념 자체가 손상될 위험에 놓입니다. 사랑과 평화에 토대를 둔 문화는 인간에게 부당한 이러한 실험들을 저지하여야 합니다.

 

 

교육의 가치

 

20.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려면, 문화간 대화는 민족 중심의 모든 이기주의를 극복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겸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책임입니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그들 자신의 뿌리를 인식시키고, 이 세계에서 각자의 위치를 규정할 수 있게 하는 준거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동시에 교육은 다른 문화들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 자신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초월하여 차이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역사와 그들의 가치관에서 발견되는 풍요로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적절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건실한 윤리 구조 안에서 얻는 다른 문화들에 대한 지식은 자기 문화의 가치와 한계를 더 깊이 인식하게 하고, 동시에 온 인류에게 공통된 유산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바로 이렇게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교육은 더욱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특별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교육은 생명의 윤리적, 종교적 차원에 열려 있으면서 이해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며 또한 다른 문화들과 그 안에 있는 영적 가치들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통합적 인본주의를 지지하도록 도와 줍니다.

 

 

용서와 화해

 

21. 예수님 탄생 2000년을 기념하는 대희년 동안, 교회는 화해에 대한 적극적인 요청을 강력히 체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청은 문화간 대화라는 복잡한 문제의 맥락에서도 중요합니다. 대화는 사실 전쟁과 갈등, 폭력과 증오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비극적인 유산에 짓눌려 흔히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의사 소통의 단절로 생긴 장벽을 헤쳐 나가는 길은 용서와 화해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이 환멸에 찬 현실주의를 내세우며 그 길은 실현 불가능한 순진한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길은 평화의 목표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신자들의 눈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하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 오른 편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죄수는 돌아가시는 구세주의 이 마지막 말씀을 듣고 용서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원한 행복을 약속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은 우리에게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과 대화를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을 허물 수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용서와 화해가 일상 생활과 모든 문화의 평범한 관행이 되며, 따라서 인류의 평화와 미래를 건설하는 실제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충만해집니다.

 

뜻깊은 희년의 체험인 기억의 정화를 염두에 두고,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와 화해의 증인이자 선교사가 되라는 특별한 호소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하느님께 열렬히 간청함으로써 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사야의 놀라운 예언을 앞당겨 성취할 것입니다. “그 날에 이집트에서 아시리아로 가는 큰 길이 트여 아시리아 사람과 이집트 사람이 서로 오가며 이집트 사람이 아시리아 사람과 함께 예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아시리아 다음의 셋째 번 나라가 되어 세상에서 복을 받으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복을 주시며 이르시는 말씀을 들어라. ‘복을 받아라. 내 백성 이집트야, 내가 손수 만든 아시리아야,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이사 19,23-25).

 

 

젊은이들에 대한 호소

 

22. 저는 이 평화의 메시지를 인류의 미래이며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는 살아 있는 돌들인 전세계 젊은이들에 대한 특별한 호소로 끝마치고자 합니다. 저는 최근 로마 세계 청년 대회에서 우리가 가졌던 감동적이고 희망에 찬 만남들을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참여는 기쁘고 진실되며 용기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동감과 활력, 그리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서 저는 더욱 평화롭고 인간적인 세계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가까이 있음을 느끼며, 저는 다채로운 모자이크와도 같은 여러분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 관습과 사고 방식들을 통하여 교회의 놀라운 보편성, 교회 일치의 보편성을 바라보는 은총을 저에게 주신 주님께 깊이 감사하였습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저는 같은 신앙, 같은 희망, 같은 사랑의 일치를 통한 다양성의 놀라운 조화를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구원과 인류의 일치를 위한 그리스도의 표지이며 도구인 교회의 놀라운 실재를 웅변적으로 표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10> 복음은 여러분에게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그 근원을 두고 있는 인류 가족 본래의 일치를 재건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언어와 문화의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신나고 드높은 임무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연대와 평화와 생명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족을 이루는 형제 자매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인류의 창조자가 되십시오.

 

바티칸에서,

2000년 12월 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53항.

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국제 연합에서 한 연설(1995.10.15.) 참조.

3. 사목 헌장, 75항 참조.

4. 같은 곳, 22항 참조.

5. 같은 곳, 10항.

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서 한 연설(1980.6.2.), 6항.

7. 사목 헌장, 36항.

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Dignitatis Humanae), 1항.

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 58항.

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 1항 참조.



35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