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교회문헌ㅣ메시지

1999년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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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135

1999년 성탄 메시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히브 13,8)

 

 

1. 영원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한 민족이면서도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고통받는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하느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인간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의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이 천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평화와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7).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요한 3,16). "그분은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이 가난해짐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부유하게 되었습니다"(2고린 8,9). 그러므로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히브 13,8)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축하는 것입니다.

 

 

2. 은총과 평화의 2000년 대희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오늘 성탄 대축일부터 2001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를 은총과 평화의 대희년 기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 탄생 후 2000년은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도 특별한 대희년입니다"(「제삼천년기」15항). 교황께서는 대희년 교서를 통해 "이번 성탄시기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성령의 풍성한 선물을 교회의 삶에 불어넣는 생동하는 심장과도 같으며, 모든 이에게 빛으로 충만한 축제"(「강생의 신비」6항)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희년의 정신인 자유와 해방을 구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오늘 교회가 대희년을 선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된 은총의 해를 지금 여기에 구현하여 생명의 빛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보편 교회는 구세주 강생 2000년을 맞아 하느님 나라 선포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대희년을 합당하게 맞이하기 위해서 '새날 새삶 운동'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운동을 펼쳐 왔고 우리 교구에서도 다양한 교육과 함께 기도를 바쳐 왔습니다.

 

 

3. 우리의 현실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그러나 성탄과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해서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아직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요한 1,10).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채 살아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생명 경시와 환경 파괴,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부정과 부패, 불의와 거짓, 허영과 사치 등이 만연해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은 자주 침해당하고, 우리 삶의 보금자리인 가정 공동체마저 급속히 와해되면서 사회의 안정 기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발생되는 비인간적인 사건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신앙인은 물론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 교육자, 언론인 등 그 누구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되고 있는 부정적인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도자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지만 그들은 공인으로서 누구보다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여 더욱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4.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

 

정부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 터널을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직장을 잃어버린 채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들과 그 가족들, 병고와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 하루의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즐기며 사는 데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데에는 관심이 부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욱 깊어져 가는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간의 격차를 좁히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새로운 연대성의 용기를 갖고 사고방식과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아시아 교회」32항) 진정한 인간발전을 이룩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나약한 인간으로 태어나셨음을 기억하며 가정과 사회 안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끌어안아야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은 교회에 맡겨진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지상의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성을 통하여"(「아시아 교회」34항) 고통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가난한 인간으로 태어나신 아기예수님을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마태 25,41-46 참조).

 

 

5.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믿고

 

먼저 우리는 구세주의 성탄과 2000년 대희년을 큰 기쁨의 해로 맞이하기 위해서 교회의 여러 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믿고 개인 차원의 회개와 함께 공동체 차원의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남에게 탓을 돌리기 전에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난날 올바로 살지 못한 점에 대하여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다면 세상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더 구원된 모습으로 변화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요엘 2,13),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는"(골로 3,9-10)다면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 비칠 것입니다. 밤에도 깨어 양들을 지키다 아기예수님을 만난 평범한 목동들처럼 정직하게 이 시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이 구세주의 기쁜 탄생을 알리는 또 다른 증인들입니다. 새 천년의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순교한 수많은 신앙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이 시대에 온 몸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의 공동체'(「아시아 교회」17항)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6. 대희년의 기쁨이 북한의 형제 자매에게도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성탄과 2000년 대희년의 기쁨이 북한의 모든 형제 자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서울대교구장이면서 평양교구장 서리이기도 한 저는 북한 교회와 그곳의 형제 자매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 드립니다. 특별히 침묵의 교회에서 목자 없이 내적으로만 하느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교우 여러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 교구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지속적인 기도와 함께 '민족화해위원회' 등을 통하여 고통받는 북한의 동포에게 긴급한 구호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보편 교회도 한국 교회의 북한 동포 돕기와 민족화해를 위한 노력에 연대감"(「아시아 교회」28항)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대북 햇볕 정책 못지않게 종교인 및 민간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활발한 교류와 나눔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의 최대 과제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나누는데 더욱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나라가 하느님의 은총과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하루 빨리 하나될 수 있기를 청하며 간절히 기도합시다. 다시 한번 아기예수님의 성탄과 대희년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 민족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999년 12월 25일

구세주의 성탄과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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