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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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내가 뽑은 교회건축: 프랑스 파리 생 샤펠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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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10 ㅣ No.108

[교회건축을 말한다] 내가 뽑은 교회건축 - 프랑스 파리 생 샤펠 성당


고딕 성당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를 육체의 눈으로 보게 하고, 사람의 모든 감각으로 하늘 나라를 체험하게 해줬다. 고딕 성당은 온갖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상의 예루살렘을 이 땅에 구현하려 한 것이다. "예루살렘의 성문들은 청옥과 취옥으로, 성벽은 모두 보석으로 만들어지고 예루살렘의 탑들은 금으로"(토빗 13,16) 돼 있으며, "성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도성 성벽의 초석들은 온갖 보석으로 꾸며져"(묵시 21,18-19) 있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께서 계시고 생명의 힘이 미치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은 성당 외곽을 만들고 그 안에 머물며 하느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기를 기다린다. 이에 고딕 성당의 원형을 만든 수도원장 쉬제르는 이렇게 말했다. "이 집을 고귀하게 빛나게 하시고, 고귀하게 빛나는 이 집이 우리 마음을 밝히게 하소서."
 
고딕 성당은 얼마나 빛을 갈망했던가? 이 갈망의 정점에 생 샤펠(Sainte-Chapelle) 성당이 있다. 파리 한복판 시테 섬에 있으며, 1248년에 완성됐다. 루이 9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받은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 조각을 모시기 위해 자신의 왕궁에 이 성당을 세웠다. 위ㆍ아래 2층인 성당이다. 아래층은 신하들을 위한 것이고, 유리화의 보석상자 같은 위층은 왕가 일족을 위한 것이다.

고딕 성당의 벽면에는 로마네스크처럼 아케이드가 있고, 그 위에 두세 개 다른 구조물이 층을 이뤘다. 그러던 것이 점차 구조적 기술이 발달하면서 층이 사라지고 창이 점점 커져갔다. 이러한 빛의 공간을 만들고자 한 고딕 성당의 극한이 바로 이 생트 샤펠이다.
 
나선 계단을 돌아 2층으로 올라가면 신비로운 빛이 보는 이를 엄습한다. 빛의 홍수요, 빛의 보석이 박힌 공간이다. 벽면은 모두 15개로 돼 있다. 벽면 전체는 창에서 빛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골조는 최소한으로 억제돼 있다. 교차 볼트를 보강해주는 뼈대들은 기둥으로 합쳐지면서 가벼운 선을 긋고 있다. 구조는 힘을 떠받치는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시각적 선이 돼 있다.
 
이 성당 내부를 덮고 있는 것은 무수한 '입자'다. 유리화나 창문의 문양 중 어느 하나도 다른 것을 지배하는 것이 없다. 빛과 색깔, 구조와 창, 수많은 문양들은 모두 대등하다. 거의 바닥에서 시작해 천장까지 하나의 면으로 된 창도 그 안은 무수한 입자로 분해돼 있다. 기둥의 다발도 작은 문양으로 나뉘어 있고, 천장에도 무수한 별 모양이 가득하다. 이런 공간에서는 천장도 높고 전체가 잘게 쪼개져서, 웬만한 조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육중하고 촉각적인 로마네스크 성당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시각적인 것을 위해 만들어져 있다.
 
그 결과, 이 성당의 공간은 가볍게 빛나고, 물질은 온통 비물질적인 것으로 변해 있다. 공간은 육중하고 무겁게 높지 않고 가볍게 높다. 보석과 같은 공간 안에는 신비한 빛이 가득 차 있고, 사람은 그 빛에 물들어 있다. '빛의 벽'이라 불러야 할 유리화에는 성경의 1134가지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 자체가 거대한 공간이자 한 권의 장대한 성경책이다. 건축을 통해 성경을 '눈'으로 읽게 한 것이다.

[평화신문, 2012년 2월 26일,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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