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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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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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67

2000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강우일 주교 -

 

 

우리는 동족 상잔의 비극을 치른 지 50돌째 되는 날 6월 25일을 맞이하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자 합니다. 6.25 전쟁의 참화로 인해 남과 북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었고 수많은 가족이 반영구적인 이별의 아픔을 겪게 된 지 한 세대가 지났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이 땅에 찾아온 것은 우리들 자신의 선택이었다기보다는 세계 역사의 한 과정에서 탄생한 사회주의 체제와 세계 열강의 세력 각축에서 빚어진 역학 구도의 충돌에서 기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시대에 이미 세계 역사는 큰 전환점을 맞고 이념의 대립과 냉전 구도는 막을 내렸습니다. 다만 오직 이 한반도만은 예외적으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념과 체제의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의 위협을 항시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 한반도에도 이 대희년에 드디어 역사의 새 장이 열리려 하고 있습니다. 분단 55년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 회담은 평화 공존과 통일의 길을 모색하며 이산 가족의 상봉을 약속하고 상호 협력과 교류를 다짐하며 7천만 겨레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대희년은 전세계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2000년을 맞이하며 선포한 은총의 해입니다.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굴레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경축하고 그 강생의 신비를 오늘 더욱 온전히 구현하도록 초대받은 해입니다. 우리 한민족이 이 대희년에 6.25의 50주년(희년)을 맞으며 민족을 억압하던 이념의 틀, 전쟁의 위협, 동족간의 불신과 증오의 굴레에서 해방을 실현하려 하고 있는 것은 겹치는 경사요 대희년의 구체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무엇보다도 역사를 주재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요 크신 은혜임을 겸허히 고백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북 정상의 만남과 합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큰 일보 전진이요 획기적인 변화의 징표로 우리 모두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양측 정상의 합의가 과거처럼 일회적인 선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실천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의 동참과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우리들의 동참과 협력은 북한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의 전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오랜 냉전 체제하의 편향된 교육과 왜곡된 전달로 형성된 북한 동포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요, 한 겨레임을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55년의 세월은 우리에게 상당히 다른 생활 감정과 문화 양식을 따로 따로 키워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비록 억양이 다른 말을 쓰고 우리와 다른 사고 방식을 갖고 유행이 다른 옷을 입고 있어도 그들도 우리와 한 핏줄이며 같은 문화적 동질성을 갖춘 사람들임을 확인하고 존중하는 마음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지난 55년 동안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껄끄러움 안에 살아온 사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측이 그 동안 끊임없는 도발과 공작으로 우리의 체제를 위협하고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어 온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북측으로서는 남쪽의 경제력과 미군의 존재로 적지 않은 도전과 위협을 느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과 오늘의 아직 위협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남과 북은 서로 과감한 용서와 탕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해방은 자신들의 죄악에서 해방이며 죄악에서의 완전한 해방은 용서와 탕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전쟁은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무자비하고 비이성적인 집단적 범죄입니다. 이 땅에 다시금 6.25의 참화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남북 정상은 전쟁의 위협에서 온 겨레를 해방시키고자 마음을 모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용서와 탕감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못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이사 2,4) 때를 맞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서와 탕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 동포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는 아무런 수고 없이 얻을 수 없습니다. 동서독의 통일은 분단의 극복이 얼마나 많은 나눔과 희생과 인내가 필요로 하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법을 통하여 통일로 나아가든 우리는 상당한 나눔과 희생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 동안 교회는 각 교구와 수도 단체에서 어려움에 처한 북한 형제들을 보는 노력을 기울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북 교류의 합법적인 여건이 조성되므로 인하여 더욱 본격적인 지원이 요청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의 형제들이 참으로 '민족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는'(이사 2,4) 주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알아뵙고 그분을 자유롭게 찬미하고 예배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해서 한국 교회 전체가 한 마음이 되어 많은 기도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교황께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북한 땅에 교회가 제 기능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꾸준한 노력과 기도를 바쳐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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