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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한국의 사회안전망, 안전한가?: 신빈곤 계층의 대두에 따른 대응책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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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25

한국의 ‘사회안전망’, 안전한가? - 신빈곤 계층의 대두에 따른 대응책을 생각하며

 

 

신빈곤 계층의 발생 원인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객관적 요구가 높아지는 것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진정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와 속도, 그에 상응하는 사회문화적인 변모를 생각할 때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적절한 사회안정 기제의 확보는 매우 절실한 시대적 숙제인데도,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실제적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고 평가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에 빚어진 ‘신빈곤’ 논란이다. ‘신빈곤’이란 전통적인 빈곤의 양상과는 달리, 일하면서도 빈곤한 계층, 곧 근로 빈곤층(working poor)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용어로서 한국의 빈곤이 갖는 의미와 속성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신빈곤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매우 미진하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곧 신빈곤은 사회보장체계가 부실한 데 대한 반증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빈곤 계층이 부각된 가장 근본적이고 일차적인 배경에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도사리고 있다. 곧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끊임없이 ‘노동으로부터의 배제(exclusion from labour market)’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까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비정규직화의 기조가 계승되어 실업자와 불안정 고용의 문제가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고용유연화 전략 이후 임시직과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어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년 말 현재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 근로자의 51.9%인 약 68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저임금 상태에 놓여있고 기업복지와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어 있어 열악한 생활조건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현재 초점이 되고 있는 신빈곤 계층은 안정적인 소득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들은 노동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데도 노동시장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에서 오는 생활의 불안정성, 나아가 가계파탄 등의 결말을 불가피하게 맞이한다는 비극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최근의 급속한 경기침체는 대량의 빈곤층이 구조화될 가능성을 낳게 된다. <그림 1>에서와 같이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 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자영업자가 일정한 계기를 통해 계약직·임시직·일용직 등 비정규직이나 저소득 자영업자로 전락하면, 노동시장의 배제 경향에 따라 본래의 위치로 환원되지 못하고 그 상태에서 빈곤층으로 남게 되거나 아니면 절대 빈곤층으로 또다시 추락하는 행진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신빈곤 계층의 규모가 적어도 200만 명 내외라는 것이 중론이다. 곧 4인 가구 기준으로 표현하자면 현재 월수입이 102만 원이 넘으나 120만 원 수준은 되지 않는 이들, 다른 말로 표현하여 이른바 차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자들의 규모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추락과정에 적절한 안전장치인 사회보장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이 적절히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복원시킬 재도약의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사회적인 지지망이 발동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양산되는 신빈곤층, 곧 근로 빈곤층 문제의 핵심이다.

 

앞에서 본 200만 명의 차상위 계층을 포함하여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나 부양의무자 조건이나 자산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국가로부터 수급권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른바 ‘비수급 빈곤층’ 130만 명 정도를 합치면 모두 320만 명의 빈곤층이 있고,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좀 더 부연하여 이들 빈곤층에 대응되는 사회안전망의 구체적인 내역을 나열하면 다음의 <표 2>로 정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해 수급권자가 된 135만 명에게는 1인당 평균 21만 8천 원의 급여가 지급되지만, 그 외에 저소득층인 경우는 그들의 인구학적 특성에 따라 경로연금, 장애수당, 아동양육비 등이 주어진다지만 수혜 대상자의 규모나 급여 수준에서 매우 미진한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속출할 수밖에 없으며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절망 계층이 존속된다.

 

더군다나 생활고의 충격에 허덕이는 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적절한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신용회사들의 달콤한 유혹이며, 이로 인해 자신도 조절하지 못하는 가운데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부채를 안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파산을 선고받은 신용불량자는 올해 7월 말 현재 315만 명으로 전 인구의 무려 6.6%에 이른다고 볼 때 ‘신용불량공화국’이라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이들 중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는 200여만 명에 달해 전체 신용불량자의 60%를 넘는 수준이며, 전체 신용불량자 중 20-30대의 비중이 48.8%를 차지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결국 현재의 신빈곤층이란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일차적인 소득 보장의 실패로 생겨나고, 이차적으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발동되지 못한 가운데 신빈곤층으로 고착되며, 잘못된 신용제도가 이를 악화시키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어떻게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가장 급선무가 사회안전망 체계를 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 신빈곤 계층에 긴급구호 등을 통한 생계, 의료, 주거, 교육에 대한 국민 기본선을 국가가 보장하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긴박한 위기를 맞고 있는 이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포함하여 질병에 대한 의료 서비스의 보장과 주거공간의 확보, 그리고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후세대의 교육기회 보장 등 4가지 분야로 압축된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원래 취지를 살려, 노동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실업이나 질병, 출산, 가구주의 사망, 장애 등으로 벼랑 끝 위기에 몰린 계층에 대해서는 긴급구호로서 생계 지원을 해줌은 물론, 의료 급여를 통한 질병 치료, 그리고 교육비의 면제와 임대아파트를 통한 주거공간의 한시적 제공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지원책이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의 구성원 누구나가 생계 중단의 두려움이나 질병의 고통, 집 없는 설움, 나아가 가난의 대물림에서 오는 한으로부터 일정한 보장을 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야말로 국민 기본선을 좀 더 충실히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빈곤층들이 신용카드로 당면한 생활고를 회피하려는 유혹 앞에 굴복하여 종국에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긴급 대부를 통한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현재 시행되는 자활급여 대상자를 위한 자활기금과 자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정교화하여, 이러한 벼랑 끝 계층의 자립을 도모하는 자립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이들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결합된 자활 프로그램이 발동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서민층의 벼랑 끝 계층으로의 전락을 방지하고자 사회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원칙 아래 세부적인 보완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벼랑 끝 계층의 전신(前身)은 대부분 서민 계층이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이나 직위를 가졌던 경우이다. 그러므로 이들 일반 서민 계층이 실업이나 질병, 장애, 출산, 가구주 사망 등의 예기치 않은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 빈곤 계층으로 급전직하의 전락을 하지 않도록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이 충실히 짜여져야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현재 안정적인 중산층과 기초생활보장대상자 사이에 존재하는 사각지대에도 사회보험과 사회수당, 사회복지서비스의 각종 급여가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검토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예시해 보면, 장애수당 대상자의 확대, 경로연금 대상 노인의 확대, 차상위 계층과 차차상위 계층의 부분적 위험에 대한 급여 제공, 편부모 가정의 주거공간 제공 혜택의 확대와 아동양육·교육의 기회 적극 보장, 아동·청소년·장애인·여성·노숙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과 사회통합의 기조를 마련하는 노력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안전망의 보완만이 아니라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통한 빈곤 계층의 노동시장으로의 편입 시도가 갖는 의의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노동력이 다시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제법 직업훈련이나 직업알선에 대한 인프라(infrastructure)가 충실히 닦여있을 경우에 가능하며, 또 한편 근본적으로는 시장에서 새로운 노동력의 활용처를 보장하는 경기 수준과 신종 산업이나 직종이 지속적으로 창출되기 위한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사회적으로 공공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벼랑 끝 계층의 안정적인 수입이 확보되도록 하고, 시장에서 소화되기 어려운 제3분야(the 3rd sector)의 개발과 발전이 서둘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적 단기적인 대응책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대책들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없다면 문제의 해결은 결국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새 정부가 내세운 참여복지 정책의 가장 중요한 방향인 ‘전 국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체계 수립’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복지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고, 전 국민에게 필요한 복지정책을 구사하며,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확대’(인수위원회, 2003. 2.)하는 것이 참여복지의 기조라고 내세우며 등장하였으나, 취임 반년이 넘도록 참여복지의 5년 계획이나 전망이 명시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소득 2만 불 시대’가 정치적인 쟁점이 되면서 성장제일주의의 국가경제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재생될 우려가 되는 상황까지 와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애초에 약속한 대로 전 국민에게 보편주의적 의미의 사회보장제도가 구현되도록 장단기 계획을 세워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신속히 보여주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우리나라 재정정책을 전개할 때 선진국형 재정지출 구조로의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앞에서 말한 사회복지제도의 적절한 확충을 위해서는 반드시 재정의 확보를 담보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구조는 ‘경제개발비 - 국방비 - 교육비 - 일반경상비 - 사회복지비’ 등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고, 그나마도 순증주의(純增主義)에 입각하여 각 부문 재정간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은 사회복지재정 조달에 치명적인 역효과를 내어 사회적으로 절실한 위기의 해소를 위한 정책들을 실현하는 데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의 재정구조, 곧 ‘사회복지비’라는 지출비가 가장 높은 재정구조로 재편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 또는 동의가 절대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결국 ‘인간을 위한 성장’의 기조가 확립되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경제성장의 목적이 그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의 복리와 그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데에 있는 것이라면 30-4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성장지상주의 대신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성장’의 기조를 확립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적극적으로 보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관계를 이용하여 복지정책 가운데 이러한 효과를 실현할 수 있는 세부 복지정책들을 과감히 추진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오늘날 신빈곤 계층의 문제는 단순히 몇 푼의 재원과 몇 가지의 정책으로 극복되기에는 그 태생적 뿌리가 매우 깊이, 그리고 넓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전 사회적 각성과 전 방위적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에 사회안전망이 주요한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될 것이다.

 

[사목, 2003년 10월호,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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