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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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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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79

2001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월 24일) 담화문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이하여

 

 

현대 세계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각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서로 존중하며 자주적인 발전을 보장하고 협력함으로써 공존하는 통합적인 지구촌 문명을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가공할 무기를 보유하고 생산하며, 끊임없는 분쟁의 고통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평화의 중요성을 더 깊이 공감하고 이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보화의 덕택으로 지구촌 어느 한 곳에 지진이나 홍수가 발생하면 즉시 세계 각국에서 인도적인 지원 인력과 물품이 쇄도합니다. 그만큼 인류는 과거 역사의 많은 고통을 통하여 서로를 아끼고 도울 줄 아는 역량을 키워 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는 아직 이러한 국경을 넘어선 폭넓은 교류와 협력의 물길이 크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음을 보며 우리는 가슴 아파합니다. 지난 해 6월 15일 남북의 정상이 역사적인 만남을 이루면서 새시대의 막이 올랐음을 우리는 모두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 간 우리는 분단된 이 민족의 땅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데는 우리들의 결정이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사실을 지켜보았습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세계 열강의 정치, 경제, 외교상의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교차하는 급소이며 이로 인하여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이나 시도들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땅에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참된 화해와 일치의 은총을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시며 당신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에페 2.14-16).

 

예수께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당신을 중죄인으로 몰아세운 유다인과 로마인들의 음모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놓으시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누구를 탓하고 책임을 추궁하기보다는 용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6.25 전란으로 인하여 공산 치하에서 신앙 때문에 60여명의 사제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도자, 평신도들이 같은 이유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북한 땅에서는 교회 공동체의 전례를 집전할 수 있는 성직자가 한 명도 없어 북한 땅의 하느님 백성은 오랜 세월 동안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기쁨도 영광도 맛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 당국이 한국이나 외국의 사제들이 여행 중 평양에 세워진 장충성당을 방문할 때 비정규적이긴 하지만 미사 집전을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충성당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북한 땅에서 유일하게 성찬의 전례가 거행되고 있는 자리입니다. 한국교회는 과거 6년 동안 장충성당을 통하여 식량난과 경제난에 고통받고 있는 북한 동포를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북한의 사정이 특별히 호전되지 못한 이상 우리들의 관심과 지원은 계속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이들이지만 지금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동포를 모른 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 가장 작은 형제 중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고 가르치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로서 이렇게 고통 중에 있는 형제들을 손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한국 사회도 경제위기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실업과 저소득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동포들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여전히 국민 대다수가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의료체계 붕괴로 질병에 걸려도 대책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엄청난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세상 역사를 주도하시는 주님께서 이땅에 참된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간청합시다.

 

아울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북한 당국에도 호소합니다. 북한 동포들도 하느님을 믿고 예배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허용하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가톨릭 사제의 상주 허락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지역교회의 목자인 주교가 방문하여 신자들을 만나고 성사를 집행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조처가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러한 결단과 조처는 북한이 국제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영받고 성숙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분단의 상처를 화해와 일치의 노력으로 치유하며 이땅에 참된 평화를 이룩합시다.

 

2001년 6월 24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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