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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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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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98

2003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2천년 대희년을 맞이한 지 벌써 3년째에 접어들고 있으나 우리는 지금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과 어린 생명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대립으로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를 원하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된 목소리가 필요한 때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교회에 있어서 희년은 죄와 그에 따르는 벌을 사해 주는 용서의 해, 상반된 집단 사이의 용서의 해, 다양한 회개와 참회의 해"라고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대희년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참회하는 데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가 1965년부터 사용해 오던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의 명칭을 '단절과 부정의 표현'이라는 이유로 199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바꾼 지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무관심 속에 북한 교회는 여전히 '침묵의 교회'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국제 사회에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 이후 우리 교회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북한의 '조선가톨릭교협회'라는 천주교 단체와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천주교를 알게 하고, 북한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3월 2일 평양의 장충 성당 신자들이 우리 민족의 평화와 화해, 일치의 상징인 명동 성당에서 우리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돕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부족함이 없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가 6·25 전쟁이 발발한 날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설정한 이유는 민족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교회가 앞장서자는 의미와 함께 평화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거듭 새기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참된 용서를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미움과 분단의 아픔을 씻어내야 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관용의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북한은 한편으로는 핵무기 개발을 통해 우리를 볼모로 하여 미국으로부터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 노력은 국제 사회의 협력, 무엇보다도 우리의 협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북한이 잘못된 판단으로 돌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그들의 변화 노력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소망은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고, 북한 지역에 복음화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도와 회개, 그리고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그들을 무시하고 귀찮아하며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미움의 찌꺼기를 털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이 땅의 평화는 우리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 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평화는 북한의 형제 자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같이하려는 마음을 지니게 될 때 싹이 트고, 모두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 되이 받아들일 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이어지고 삶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어려움에 처한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나누어주고, 어려운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북녘 교우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남북한과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이 참회하며 그리스도께 평화의 선물을 간청하도록 기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는 인권 회복을 표방하는 전쟁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인권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인권을 되찾아주고 진정한 평화를 쟁취한다는 명분 하에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는 전쟁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어려워만 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교류와 협력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가고 있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특히, 지난 6월 14일에는 경의선 철도의 연결식이 거행되어, 머지 않아 지금 "민족 화합의 대미사"가 봉헌되고 있는 이 곳 도라산역을 지나서 북한의 개성역을 거쳐 평양과 신의주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회개하며 용서와 사랑을 실천한다면 주님께서 이 땅에 평화를 허락하실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집시다. 또한 남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지혜를 모아 난국을 타개해 나갈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합시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북녘의 형제 자매들에게도 풍성하게 내리시길 바라며, 하느님의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6월 22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운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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