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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주교 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의 성과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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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37

주교 대의원 회의 아시아 특별 총회의 성과와 전망

 

 

1. 주교 대의원 회의 아시아 특별 총회의 개최 배경과 의의

 

아시아의 모든 주교가 모여 공동의 사목적인 문제를 논의하자는 생각은 갑자기 생겨났다기보다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더불어 서서히 준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주교들의 단체성(Collegialitas)을 통하여 교회 전체에 엄청난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교회의 쇄신을 가능하게 했기에, 그러한 움직임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교황을 비롯하여 많은 주교들이 공감하였다. 공의회는 전세계 주교들이 새롭게 대두되는 현대 세계의 여러 문제에 사목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국가적, 국제적 차원의 회의 체제를 갖추도록 권고하였다. 이로써 각국에 주교회의가 결성되었고 국가를 초월한 대륙별 주교회의도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아시아 대륙에는 공의회 이후 곧바로 15개의 주교회의가 구성되었고 레바논, 인도, 이란과 같이 라틴 교회와 동방 교회의 협의체가 구성되기도 하였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도 지역적인 주교들의 단체성을 구현하는 도구로 결성되었고, 1972년 12월 6일 성청의 공식적인 인준을 받게 되었다.

 

단체성은 모든 주교단과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 간의 일치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법일 뿐 아니라 복음화의 중요한 도구라는 이해가 서서히 무르익어가면서, 역대 교황들은 교회 내에 현존하는 다양하고 중요한 현안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매번 공의회를 소집할 수는 없으므로 ‘주교 대의원 회의’를 여러 차례 소집하였고, 최근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대륙별 주교 대의원 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주교 대의원 회의는 단순히 주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드러난 새로운 교회상의 구현이며, 복음화의 단계들이다. 여러 차례 있었던 정규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는 평신도의 사명, 사제 양성, 교리 교육, 가정, 화해와 참회의 가치, 봉헌 생활을 다루며 교회의 새로운 복음화 단편들을 조금씩 엮어갔던 것이다. 이러한 주교 대의원 회의가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교황의 사도적 권고 형태로 이러한 구체적 문제에 대한 보편 교회의 사목 지침이 제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주교 대의원 회의는 모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개인과 온 교회의 생활에 되도록 충실하게 적용하며 천주 강생 제3천년기에 대비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지역별, 대륙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개최를 제안하셨고,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아시아 대륙의 주교 대의원 회의 특별 총회를 소집하셨다. 

 

주교 대의원 회의 아시아 특별 총회의 의의는 아시아 대륙이 포함하는 지역적인 넓이나 인종과 문화의 다양함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지역 교회가 지닌 교회사적인 유산과 그 전통을 생각할 때 대단히 의미심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시아의 지역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출발하는 초대 교회에 뿌리를 두는 중동 지역의 교회들, 그리고 사도 토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도 교회를 포함하고 그 이후 첫 번째 천년기 동안 수천 명 선교사들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이룩된 여러 지역 교회, 그리고 13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시대에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비교적 새로운 지역 교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오랜 전통과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아시아의 다양한 지역 교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분이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모으고, 어떻게 하면 오늘의 시대에서 그 분의 복음적 삶을 닮으며 그분의 사랑과 봉사의 사명을 계승하여 구현해 나갈 수 있는지를 함께 논의하고 나누는 일은 제3천년기가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아시아의 지역 교회들이 이런 형태로 모두 한자리에 모인 예가 없으며, 세계의 복음화가 주로 서양 문화의 이론과 방법을 통하여 주도되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아시아 교회들끼리의 만남은 세계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복음화의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의 표지를 제시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주교 대의원 회의 기간 중 어떤 교부는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아시아 특별 총회를 통하여 본래 아시아인이시던 예수님께서 이제 아시아로 다시 돌아오셨다.” 희랍 문화에 기초를 두고 발달한 서양 문화가 주도해 온 그리스도교의 복음화는 현대 물질 문명과 만나면서 어떤 의미로 벽에 부딪히고 있다. 서구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신자들의 교회 이탈, 성소의 급격한 감소, 이에 대한 대안 부재와 같은 현상들은 교회의 시선을 다른 대륙, 특히 전통적으로 풍요한 종교적, 정신적 토양을 갖춘 아시아 쪽으로 돌리게 하는 것이다.

 

한 달에 걸친 아시아 특별 총회만으로 교회의 삶에 어떤 획기적인 변화가 단숨에 일어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이 아시아 특별 총회는 아시아의 지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지역 교회, 그리고 보편 교회에 새로운 통찰과 자극을 주는 중요한 기회였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 주교 대의원 회의 아시아 특별 총회 사전 준비 과정

 

1995년 9월 10일 교황께서는 성청의 관계 인사들과 아시아 지역 교회의 여러 대표자를 포함한 주교 대의원 회의 사무국의 예비 위원회를 소집하셨다. 예비 위원회의 첫 회의는 1995년 10월 24-26일에 열렸고 이 회의에서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제를 선정한 다음에 교황님의 인준을 받았고 ‘의제 개요’(Lineamenta)의 줄거리도 구상하였다. 이는 그 후 많은 연구와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1996년 9월 3일 영어와 불어로 공식 발표되었다. 이 ‘의제 개요’는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아시아의 현실과 복음화의 배경, 2부는 아시아에서의 복음화 약사, 3부는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성령의 역사하심, 4부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 예수 그리스도, 5부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계승하는 친교로서의 교회, 6부는 아시아에서의 교회의 사랑과 봉사의 사명이었다. 

 

예비 주교 대의원 회의 위원회는 그 후 이 ‘의제 개요’에 실린 문제 제기에 대한 아시아 여러 교회의 반응을 검토하여 주교 대의원 회의의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을 작성하는 일을 계속 추진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아시아 각 지역 전문인들의 도움을 받아 수행되었다. 이 예비 위원회는 전부 다섯 차례 열렸다. 

 

교황께서는 1997년 10월 25일 정식으로 주교 대의원 회의 아시아 특별 총회를 1998년 4월 19일부터 5월 14일로 인준하시고, 1998년 2월 26일 L'Osservatore Romano지에 발표하셨다. 1997년 4월 말 교황께서는 이 주교 대의원 회의의 참가 기준을 다음과 같이 인준하셨다.

 

① 당연직 대의원

- 아시아의 현직 추기경 

- 아시아의 동방 교회 수장들 

- 예루살렘 라틴 전례 총대주교

- 각국 주교회의 의장 

-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의장, 인도 통합 주교회의 의장

- 주교회의가 없는 지역의 교회 수장들 

- 주교 대의원 회의 사무총장 

- 로마 성청 각 성 대표 

 

② 선출 대의원

- 주교회의 회원이 50명 미만인 경우 5명의 대의원 

- 주교회의 회원이 50명 이상인 경우 7명당 1명의 대의원 추가 

- 주교회의 회원이 100명 이상인 경우 10명당 1명의 대의원 추가

- 교황청 인준 성직 수도회 장상 연합회에서 10명

 

③ 임명 대의원 : 교황이 직접 임명하는 대의원 23명(전체의 15% 이내) 

 

④ 참관인(Auditores) : 교회 내 여러 분야에서 교황이 임명하는 40명(교구 사제 5명, 수도회 사제 5명, 수사 2명, 수녀 8명, 평신도 남자 12명, 여자 8명)

 

⑤ 전문인 : 18명

 

⑥ 비가톨릭 그리스도교 대표(Fraternal Delagates):6명

 

⑦ 총계 : 252명

 

주교 대의원 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교회 공동체의 여러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요구되므로 주교 대의원 회의 사무국은 주교 대의원 회의 준비 과정을 여러 매체를 통하여 온 교회에 알리고 ‘의제 개요’와 ‘의안집’의 공개를 단행하였다. 지역과 교구에 따라 ‘의제 개요’에 대한 응답을 마련하려는 각종 회의, 세미나 등이 열렸다. 이 문헌의 내용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주의 깊게 만들어졌고 아시아 대륙의 교회 상황을 잘 고려하여 구성되었다는 평이었다.

 

아시아 각 지역의 ‘의제 개요’에 대한 응답을 기초로 새로이 작성된 ‘의안집’은 ‘의제 개요’보다 훨씬 잘 다듬어진 내용이라는 평을 얻었으며 주교 대의원 회의의 ‘의제 개요’로 충분한 역할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3. 한국 교회의 주교 대의원 회의 준비 과정

 

한국 교회의 주교 대의원 회의 준비는 솔직히 상당히 부실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의제 개요’를 받아 이를 번역하고 여러 계층에 알려 이에 대한 반응이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미흡하였다. 일반적으로 종전의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는 이 준비 문서가 비공개라는 조건부로 배부되었기에 이번에도 한국 주교회의는 이 문헌을 주교회의 밖으로 알려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소홀히 하고 주로 주교회의 차원에서 각 주교들의 개별 의견을 수렴하여 공동 답변서를 작성하고 성청 주교 대의원 회의 사무국으로 보내었다.

 

다만 ‘의안집’을 받고 나서는 이를 번역하여 비록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견해와 평가를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주교 대의원 회의에 참석하기 전 6명의 한국 주교 대의원들은 두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갖고 주교 대의원 회의에 대비한 논의를 교환하였고 로마에 도착하여 다시 각자가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 발언할 내용을 점검하고 대책을 강구하였다.

 

 

4. 주교 대의원 회의 본회의

 

1) 전체 회의

 

4월 19일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첫째 주에는 주로 전체 회의가 이루어졌다. 전체 회의에서는 우선 토론에 앞서 기조 강연에 해당하는 문헌 Relatio ante Disceptationem의 발표가 있었고, 그 다음, 참석한 주교 대의원들이 신청하는 순서대로 8분 내에서 자유 발언을 하였다. 이 발언은 주로 주교 대의원 회의의 ‘의안집’과 관련하여 주교들이 느끼는 문제점이나 자신의 지역 교회의 관점을 피력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발언의 내용이나 순서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고 아시아 여러 지역 교회의 상황을 폭 넓게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대의원 주교들의 발언은 주로 4월 21일에서 23일에 이루어졌다. 장익 주교는 성서 사도직에 대하여, 정진석 대주교는 가정 사목의 중요성에 대하여, 필자는 소공동체 활성화를 통한 교회의 친교에 대하여, 이병호 주교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일치에 관하여, 이문희 대주교는 사제 양성에 관하여, 김수환 추기경은 북한 문제에 대하여 차례로 발언하였다.

 

2) 소그룹 회의

 

대부분 대의원들의 발언이 끝난 후 주교 대의원 회의 참석자들은 영어, 불어, 이태리어의 세 언어권별로 소그룹에 배정되었으며 그 동안 각국 주교들이 발언한 내용을 토대로 새롭게 작성된 문헌 Relatio post Disceptationem이 발표되었고 이 문헌을 비롯하여 그 동안 배포된 모든 자료를 토대로 자유로운 그룹 토의가 진행되었다. 이 그룹 토의는 둘째 주간과 셋째 주간 초까지 계속되었고 이를 통하여 교황께 드릴 제언들(Propositiones)을 작성하였다. 셋째 주간 후반부터 각 그룹은 제언의 문안까지 만들었고 이 문안들이 수집되어 주교 대의원 회의 사무국은 제언 전체 내용을 종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3) 최종 전체 회의

 

넷째 주간에 들어가서는 제언 문안을 투표로 확정하고 아울러 외부 발표용으로 주교 대의원 회의의 최종 메시지를 작성하고 확정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교황께 드리는 제언문의 내용 자체는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교황이 이 내용을 검토하고 여러 전문가들의 자문과 도움을 얻어 마지막으로 주교 대의원 회의 전체의 결론에 해당하는 교황 문헌을 사도적 권고의 형태로 발간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5. 주교 대의원 회의 교부들의 주요 논점

 

1)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

 

① ‘의안집’ 등의 문헌에서 아시아의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나왔고 이에 대하여 몇몇 교부들은 이러한 표현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우려하였다. 그러나 구원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떠한 중개자도 있을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개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갖는 의미는 구원의 은혜가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령의 힘으로 아버지에게서 파견받은 그리스도와 같은 중개자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세계의 가장 큰 종교들이 탄생하고 아직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타종교와 마찰을 빚을 수 있는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을 비켜가려고 하는 움직임, 또는 종교 다원주의적인 접근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② 복음 선포는 말씀과 증거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곧 말씀의 선포와 삶의 증거가 함께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교의적인 말씀의 선포에 너무 치우친 면이 있지 않았을까? 어느 쪽이 강조되고 우선하는가는 시대와 장소의 환경에 따라 그리고 성령의 감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③ 교회는 신앙의 기본 틀을 유지해야 한다. 토착화는 필요하나 그리스도의 신성, 초월성을 저해하면서까지 토착화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곤란하다. 유일한 신앙의 표현은 다양할 수 있되 신앙의 본질은 잘 보존해야 한다. 

 

④ 어떤 교부들은 ‘유일한 중개자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다른 종교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염려를 했다. ‘이 표현은 너무 공격적이다.’ ‘좀더 겸허한 표현을 써야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증거이지 설교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너무 한 가지 표현 양식 안에 제한하고 고착시킬 수는 없다.’ 등. 

 

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신앙의 핵심은 어떠한 경우에도 분명히 천명하여야 하며 희석시킬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아시아의 상황에 따라 그리스도 생애 가운데 더 부각시켜야 할 면은 다를 수 있다. 

 

⑥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고백하여도 이를 아시아인들에게 제시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아버지 하느님을 가르쳐주신 분, 영생으로 가는 길, 모든 이의 치유자, 연민과 자비로 가득하신 분, 하느님의 지혜를 제시해 주시는 스승, 평화의 왕자, 비폭력의 사도,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고 내어주신 분, 참된 하느님의 예언자, 철저한 가난과 겸손을 사신 분 등, 복음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이미지인 착한 목자, 착한 사마리아인 등의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다. 

 

⑦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이론적, 교리적으로 선포하기보다는 우리들의 사랑의 실천, 용서의 구현으로 서서히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적인 논리 전개와 이론적인 설복으로 사람들을 개종시킬 수는 없다. 

 

⑧ 이런 신학적인 전개 문제는 교회 교도권과 신학자들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하여 평소에 논의되어야 한다. 

 

⑨ 비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방법과 그리스도인에게 교리 교육을 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 비그리스도인에게는 해방자, 자비, 치유, 고통과 같은 인간적인 개념으로 소개하고 새 입교자에게는 또 다른 교리 교육의 방법이 필요하다.

 

2) 교회의 복음화 사명

 

① 아시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으로 라디오 등 매스 미디어가 있다. 이러한 방법을 더 많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② 교회는 아시아에서 소수이지만, 학교, 병원, 사회 복지 시설 등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온 경력 때문에 강력한 조직과 재력을 갖춘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외국, 특히 유럽에서 들어온 외국 종교, 식민주의 세력의 선봉으로 잘못 인식되는 반면 영적, 신비적 능력을 갖춘 존재로서는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면도 있다.

 

③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는 상황에 자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지역 교회에 부여되어야 한다. 지역 교회와 성청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서로 상호 신뢰, 상대방의 선의, 정당한 자유, 보조성의 원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청의 실무 부서는 지역 교회의 사정을 잘 파악하고 교황을 보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황청에 근무하는 인재들 중에 아시아에서 유능한 사람들을 배치해야 한다. 특히 전례서의 번역은 지역 교회 주교단에게 전적으로 위임하여야 하며 전례의 지역적인 특성을 감안한 토착화 도입은 지역 교회의 재량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④ 지역 교회도 서로 잦은 교류와 대화의 기회를 통하여 일치를 증진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지역 교회 간의 교류에 가장 잘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이다. 주교를 포함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를 모두 참여시키는 ‘아시아 가톨릭 회의’ 같은 기구가 탄생하기를 원한다.

 

⑤ 교회가 ‘소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임을 신자들이 체험하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 내의 모든 모임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끼리만 모이는 것보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모여 협력하는 체제가 가장 효과적인 교회 발전을 가져온다. AsIPA(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등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의 건설은 신자들의 친교(communio) 체험에 필수적이며 신앙 생활을 발전시키고 활성화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⑥ 각종 성서 모임, 시청각 교재, 연극이나 다양한 예술적인 표현 양식을 통한 복음 선포도 효과적이다. 

 

⑦ 아시아 사회는 가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가정 사목이 강화되어야 한다. 결혼 전, 단기간의 상담과 교육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 자녀 교육, 가치 교육, 매스미디어 교육, 부부 대화 등에 대한 다양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⑧ 전례는 복음과 구원의 체험 현장이다. 전례에 대한 교육과 철저한 준비가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신비로 인도하고 비신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례가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행사로 끝나는 것은 집전자를 비롯하여 참가자의 세심한 준비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⑨ 교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평신도 지도자의 체계적인 양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평신도에게 교회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부여하고 권한도 부여해야 한다. 평신도, 수도자 모두 참여하는 교회가 될 때 진정한 통교가 이루어지며 참여적 교회가 된다.

 

⑩ 아시아의 교회는 지금까지 너무 조직, 기구, 시설, 복지의 이미지가 강했다. 아시아인의 심성에 맞는 교회는 좀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 섬기는 교회, 관상적으로 기도하는 교회, 신비를 보유하는 교회, 자신을 비우는 교회의 이미지로 변화해야 한다. 

 

⑪ 고통받는 교회와 연대하고 지원해야 한다. 인적 자원, 매스 미디어, 물적 자원 등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⑫ 신학생 양성 문제에서 신학교 교과 과정은 아시아 현실을 감안한 내용으로 쇄신되어야 한다. 기존의 학문과 함께 아시아의 종교와 사상도 배우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 생활과 영성 생활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관상, 묵상, 그리고 극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신학생은 지적인 공부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스스로 내면화하고 자기 안에서 종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생의 양성을 책임진 교수들의 양성도 긴요하다. 이들은 철학이나 신학에 관련된 과목을 전공한 다음 적어도 1년 동안은 사제 영성, 아시아의 영성과 묵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 영성 지도의 방법과 도구 등에 대해 따로 연구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아시아의 환경에 맞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개발하여야 한다. 

 

사제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지속적인 양성과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구 안에 이러한 지속적인 교육이나 영성 쇄신을 위한 센터가 마련되어야 한다.

 

⑬ 신학생과 사제의 교육이 지금까지 너무 유럽의 색채가 강하고 이론적인 양성에 치중되어 왔다. 사목적인 체험과 현장 체험(immersion)이 필요하다. 하느님 백성의 다른 계층 곧 수도자, 평신도와 함께 협력이 가능한 능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양성되어야 한다. 신학교의 양성을 책임진 교수들도 대부분 서양에서 양성을 받아왔으나 이런 방법으로는 이론적인 준비만이 가능하다. 신학교 교수들이 자기 전공 분야를 포함하여 지식의 종합적인 정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학교 교수 신부들은 적어도 3-5년의 사목 경험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신학교 교수 중에는 남녀 평신도가 포함되어야 한다. 신학교 교수로 임명된 사람이 무기한으로 신학교에 남아서는 곤란하다. 

 

3) 교회의 사랑과 봉사의 사명

 

① 교육, 의료, 사회 복지 분야에서 교회의 활동은 아시아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 난민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더 절실하다.

 

② 세계화는 여러 나라 주민들의 문화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가난한 나라들이 선진국의 대규모 자본에 착취당하게 하는 부정적인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개발 도상국의 시장은 선진국의 시장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회는 복음화의 사명과 사회적 가르침의 실천을 위하여 인간의 존엄성, 연대성, 보조성,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한다.

 

③ 아시아 지역에는 많은 갈등이 현존하고 있다. 아직 공산주의 이념으로 인한 갈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남북한 대립 상황과 같은 문제에 아시아 교회는 화해와 평화의 징표를 가져와야 한다. 또한 중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지상(애국) 교회와 지하 교회 간의 문제는 대단히 예민하고 중요하다. 

 

④ 생명 수호를 위하여 더욱더 효율적인 공조직을 동원하고 가동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서명 운동을 전개한 것처럼, 죽음의 문화를 배격하고 생명의 문화를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여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소외당하고 잊혀진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 정의 문제는 교회가 가장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할 부분이지만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다르므로 지역 교회가 이를 감안하여 추진해야 한다.

 

⑥ 타종교와의 대화, 교회 일치 운동의 강화.

 

⑦ 청소년, 여성 사목에 대한 교회의 자세 변화 필요.

 

⑧ 낙태, 환경, 외채 문제에 대한 교회의 적극적인 대응 필요.

 

⑨ 어려운 지역(중동 지역, 중국, 북한 등)의 교회에 대한 관심과 연대의 필요성.

 

 

6. 주교 대의원 회의 아시아 특별 총회의 평가와 전망

 

이번 주교 대의원 회의는 우선 아시아 대륙이라는 범주에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주교 대의원 회의라는 데 교회사적 의미가 있다. 비록 유럽이나 미주 또는 아프리카 대륙과 달리 아시아 대륙은 민족적, 문화적 동질성을 찾기가 대단히 힘들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인 대륙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기존의 서양 문화가 주도해 온 교회의 삶에 전혀 다른 새로운 색깔과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주교 대의원 회의를 통하여 아시아의 다양한 지역 교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비록 사회적 여건이나 주변 상황은 다를지라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있으며, 어떠한 역경과 시련이 가로막고 있어도 결코 굴하지 않고 서로 그리스도 안에 형제적인 유대와 결속을 통하여 믿음과 희망으로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확인하였으며, 이 사실만으로도 주교들은 커다란 격려를 서로 주고받았다. 아시아 대륙에서 복음 선포는 다른 대륙보다 상대적으로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많은 지역 교회 구성원들이 사도적 열성에 불타고 있으며 아시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있음을 알고 기쁨을 나누었다. 아시아의 지역 교회는 소수라 할지라도 결코 외롭지 않으며 앞으로 복음화를 위하여 서로 다양한 연대와 협력의 가능성을 펼쳐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주교 대의원 회의는 복음을 아시아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새로운 아시아적인 언어와 문화적 표현으로 제시함으로써 복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올바로 부각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번 주교 대의원 회의의 교부들은 복음화란 증거, 대화, 선포, 교리 교육, 개종, 세례, 교회 공동체에 귀속, 교회 안착, 토착화, 포괄적인 인간 개발, 기도 생활 등의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과정의 종합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따라서 아시아에서 복음화를 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함을 인식하였다. 또한 예로부터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하느님 체험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감화를 준 사례가 적지 않아 모든 그리스도인이나 선교사들도 매일 기도와 성체성사와 말씀 그리고 복음적 생활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만남과 체험을 축적해야만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 교부들이 가장 많이 부각시킨 측면은 친교, 일치(Communio)로서의 교회이다. 천주 성삼의 친교에 바탕을 둔 교회의 친교는 교회 존재의 본질이며 교회의 모든 삶과 활동이 이 친교의 성격을 띠어야 함을 재차 인식하였다. 지역 교회(교구와 본당, 본당과 본당,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사이) 안에서의 친교, 지역 교회(교구와 교구)사이의 친교,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의 친교, 갈라진 형제들과 이루는 친교, 타종교인들과 이루는 친교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심화해 나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을 완성해 나가는 길이다. 아시아 대륙은 다른 어느 대륙보다 수많은 종족, 언어, 종교, 문화, 계층의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과거와 현재에 커다란 갈등과 마찰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켜 왔고 주교 대의원 회의가 열리는 기간에도 파키스탄, 인도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소요와 분쟁의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교회만이 아시아의 이러한 갈등과 분열의 악순환을 중단하고 서로 화합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촉진하는 중개자가 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아시아의 지역 교회는 지금까지 아시아의 복음화되지 않은 대다수의 백성들과 사회적 배경을 하느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그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뜻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탐구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곧 이는 아시아의 다른 전통 종교인들과의 대화와 일치에 대한 전망을 어느 때보다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교회의 시야를 크게 넓히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추구하고 약속하신 종말론적 일치를 향하여 크게 한 발을 내딛는 자리가 되었다고 본다. 

 

이번 주교 대의원 회의는 아시아 지역만의 회의가 아니라 성청에 종사하는 보편 교회의 여러 구성원 그리고 다른 대륙의 대표들과도 함께 친교를 나누고 서로 이해하는 자리가 되었다. 성청에서 세계 교회 전체를 위하여 봉사하는 이들도 아시아 각 지역 교회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며 아시아의 주교들은 로마에서 일하는 분들의 관심과 염려를 이해할 기회를 가졌다. 

 

현 교황께서 오늘날까지의 교회 역사를 2000년 대희년의 의미 안에서 총정리하여 해석하고 내일의 교회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주교 대의원 회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는 회의였고 이는 미래 교회의 방향타가 되는 의미심장한 사건의 현장이었다. 비록 아시아 대륙에 국한되는 회의였지만 아시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감안할 때 다른 어느 대륙의 주교 대의원 회의보다 더 보편성과 내용의 풍요로움이 뛰어난 회의였으며 새로운 세기의 복음화를 추진해 가는 과정에서 교회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의였다고 본다. 이러한 주교 대의원 회의의 의미에 대하여 필자를 비롯한 한국 교회 구성원들의 사전 파악과 이해에 부족한 면이 있지 않았을까 자문해 본다. 이는 주교 대의원 회의의 후속 과정을 어떻게 소화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와도 깊이 연관된다.

 

 

7. 한국 교회는 이번 주교 대의원 회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번 주교 대의원 회의에 참석한 한국 주교들이 느낀 점은 아시아 대부분의 교회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회의 기간 중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또 우리와 함께 회의에 동참하고 있는 주교들을 통해서 이러한 현실이 얼마나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회의 기간 중 파키스탄의 주교가 자살을 하는 사건이 터졌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과연 정말일까 믿어지지 않았다. 로마에 와있던 파키스탄 주교들은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소감을 내놓았다. 파키스탄에는 독성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코란에 저촉되는 표현이나 행동을 한 사람은 즉시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법이 비인간적이고 회교 중심의 독선적인 것이라고 항의와 투쟁을 계속해 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미 네 사람이 이 법에 따라 사형을 받았다고 하였다. 자살했다는 요셉 주교는 바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전국적인 항의 운동을 전개하였고 따라서 정부나 회교 근본주의자들에게 눈엣가시로 비춰진 인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요셉 주교는 이 악법이 고쳐지기 위해서는 보통의 수단으로는 되지 않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파키스탄의 주교들은 이 일에 대해 분노와 슬픔을 금치 못했고 이 일이 있은 다음 곧바로 귀국했다.

 

또 인도네시아에서는 민중들의 시위와 약탈, 혼란이 연일 계속되었다. 그래서 우리와 한 숙소를 쓰고 있던 인도네시아 주교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인도네시아 주교들은 지역이 워낙 광활하고 개발이 안된 지역이 많아 선교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주교는 자기 교구 내 본당 사목 방문을 가는데 밀림을 헤치고 걸어가야 하기에 일주일씩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밀림에는 온갖 해충들이 득실거려 살기가 아주 힘들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 바지를 걷어붙여 종아리를 보여주는데 전부 새까맣게 되어있었다. 벌레에 물려서 다리 전체에 독이 퍼져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베트남 주교들도 만났다. 베트남 주교들은 아직 언행을 자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들이 한 말이 귀국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직 베트남 정부는 교회의 움직임을 상당히 제한하며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주교들이 단체로 외국 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 베트남에서는 젊은이가 신학교에 들어가려면 우선 사상적으로 불순하지 않은지 또 반정부적인 태도를 취한 적이 없는지 정부의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는 신학생 수가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일정한 틀을 정해 놓고 한참 기다리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도 계속 관찰 대상이 되고 나중에 서품을 받을 때가 되면 다시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서품 받고 나서 본당에 파견될 때 또다시 정부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고 한다. 본당 운영은 정부의 지원없이 교우들이 없는 가운데서 쪼개어 헌금하는 것으로 사제들이 먹고 산다고 한다.

 

중동 지역 동방 교회 주교들의 이야기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레바논, 이스라엘, 이란, 이라크 등지에서 온 주교들은 한결같이 그 지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하였다. 복음이 처음으로 선포된 곳, 초대 교회가 번성했던 곳인데도 오늘은 회교 근본주의의 경향 때문에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갈수록 신자들이 줄고, 외국으로 이주해서 교회 전체가 극도로 침체되어 있는데, 얼마 안가서 교회가 다 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아시아 각 지역 교회의 삶은 한마디로 역경과 시련과 환난의 소용돌이의 연속이고 이에 비하면 한국 교회는 한마디로 낙원이었다. 우리는 낙원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한국 주교들 모두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나라 교회가 이렇게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복음 선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어려움이 없다고 하여 현실에 안주하고 있어도 괜찮은가 하는 강한 의구심, 불안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왔다. 한국 교회의 현상황은 분명히 아주 특수한 상황이고 거기에는 하느님의 특별한 부름이 숨어있으며 이 부름을 외면하고 희희낙락할 때 주님께서 결코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교회는 세계의 교회, 아시아의 교회 안에서도 대단히 독특한 위치에 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교 효과와 신자들의 열성과 적극적인 신앙 생활 등 교회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 1년에 10만 명 가까운 성인 영세자, 해마다 가득 차는 대신학교, 해마다 지어도 지어도 모자라는 새 성당,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신심 운동, 사회 각계 각층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자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극히 예외적인 것이며 태풍의 눈 속의 고요함과 같은 것이 아닐까? 아시아의 대부분 나라에서는 타종교인들의 억압과 박해,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의 전통 종교 틈바구니에 끼여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사는 상황이거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여러 측면에서 교회가 고통받거나 아니면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교회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 엄청나게 넓고 큰 아시아 대륙 전체에서 보면 아주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네덜란드 교회의 체험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의 신학교에는 2천 명이 넘는 신학생이 있었으며 외국으로 나간 선교사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불과 몇 년 만에 급격히 감소하게 되자 걷잡을 수 없었고 오늘은 네덜란드 전국에 신학생이 백 명도 채 안된다고 한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다. 이런 전세계의 동향을 직시한다면 한국 교회도 결코 무풍지대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람이 불어 상황이 급변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에서 오늘의 한국 교회를 바라볼 때 하느님께서 마련하시는 특별한 시대의 징표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오늘 우리에게만 주어진 시대의 특별한 징표를 찾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앞으로 한국 교회는 좀더 외국 교회, 보편 교회의 동향과 체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긴밀히 연락하고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하여 보편 교회의 현실과 요청 안에서 우리가 담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찾는 열린 교회로서의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교회가 아시아에서 특별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사실, 다른 나라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은총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 교회를 위하여 특별한 사명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교회는 한국 교회에 대하여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동적인 한국 교회의 모습에서 아시아의 새로운 복음화의 첨병으로 앞장서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아직 공산주의 체제에 묶여있는 중국 대륙과 북한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회는 한국 교회밖에 없다고들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이제 다른 나라 교회와 긴밀한 연대와 교류를 강화하여 아시아의 새로운 복음화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외방 선교의 체질을 터득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으로 준비해야 한다. 타민족과 교류, 타문화와의 대화, 타종교와의 공존에 대비한 적응력을 키워나가기 위해 한국 교회는 한국 교회 안에 닫힌 상태로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밖을 향하여 넓게 열려야 한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지금까지의 폐쇄적인 자세를 깨고 아시아의 다른 이웃을 향해 활짝 열려야 한다. 한국 교회가 자기 내부에 스스로 안주하지 않고 다른 나라 교회를 향해 스스로를 내어주고 교류하고 나눌 때, 한국 교회 자신도 새로운 자극과 생기를 공급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린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한국 교회는, 특히 성직자, 수도자들은 진실로 새로 태어나는 쇄신의 체험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현재의 한국 교회의 사목 체질을 가지고 해외의 다른 나라 교회에 다가간다면 이는 오히려 서로에게 어려움만 초래할 것이다. 해외의 한인 교포 사목의 사례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제부터 한국 교회는 오랜 세월을 두고 해외 선교를 위해 봉사해 온 역사 깊은 국제 선교회들의 자문과 지도를 겸허하게 배워야 할 것이다.

 

[사목, 1998년 8월호, 강우일(서울대교구 보좌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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