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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식스투스의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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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9-28 ㅣ No.53

[성미술 이야기] 식스투스의 마돈나

 

 

- 식스투스의 마돈나. 라파엘로. 1512~13년. 269.5×201㎝. 드레스덴 고전거장 회화전시관.

 

 

이 그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턱을 괴고 위를 쳐다보는 앞쪽의 아기 천사들이다. 아기천사들은 공간구성의 시발점을 이루면서 동시에 그림의 심리적 깊이를 확장한다. 아기천사들을 라파엘로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고, 제자 가운데 하나가 나중에 덧붙였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구름을 밟고 선 마리아

 

엘베강이 비껴 흐르는 독일의 석조도시 드레스덴은 강둑이 좀 높다 뿐, 마치 북유럽의 베네치아를 연상시킨다. 아닌게 아니라 베네치아를 관류하는 대운하 그란카날레에 탄복을 금치 못했던 작센의 통치자 강력공 아우구스투스는 『엘베강이 그보다 못할 게 뭐람』, 하면서 또 하나의 베네치아를 가꾸는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축조된 보석처럼 빛나는 바로크 궁정건축 츠빙어의 입구 쪽 양쪽 날개에 드레스덴이 자랑하는 고전거장 회화전시관이 들어섰는데, 수많은 빼어난 수작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바로 라파엘로가 그린 「식스투스의 마돈나」이다.

 

라파엘로의 그림을 입수한 것은 강력공 아우구스투스의 권좌를 계승한 아우구스투스 3세였다. 피아첸차의 도미니크회 수도원장으로부터 라파엘로의 걸작을 입수하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거금을 들였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고고학의 아버지로 일컫는 빙켈만은 작품 구입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이탈리아의 가장 고귀한 보물, 아니 유럽 회화의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작품을 작센에서 보게 되었다』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그림을 바가지 씌워서 팔아먹은 피아첸차의 수도원장은 「엄청 짭짤한 거래(un capitale infruttif eros)」를 했다고 거래명부에 기록해두었다.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 이탈리아에 고전 거장들의 작품이야 차고 넘치는 처지인데, 바늘쌈지에서 바늘 하나 뽑아낸들 뭐가 대수냐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오른팔에 안고 서 있다. 자세히 보면 그냥 편하게 안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가만히 내밀어 보이고 있다. 육화한 신성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마리아는 에피파니아의 기적을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푸른 휘장이 양쪽으로 갈라지자 불현듯 황금빛 광채가 피어오르고 형언할 수 없이 맑은 향기가 코 끝에 달라붙는다. 또 천사들의 아름다운 합창도 들려온다. 배경의 희미한 구름 속에는 어린 천사들이 봄날 뜨락에 핀 꽃들처럼 앞다투어 앙증맞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어디선가 심술궂은 바람에 입김을 불어서 마리아의 두건과 겉옷 자락을 잡아챈다. 아기 예수의 고운 머리카락도 헝클어졌다. 여기서 옷깃을 잡아채는 바람은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 수단이다. 라파엘로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손짓과 몸짓 그리고 펄럭이는 옷자락을 통해서 자칫 경직되고 밋밋해지기 쉬운 종교화에 더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만약 마리아가 차렷 자세로 뻣뻣이 두 발을 모으고 있고, 교황과 성녀가 단정히 무릎꿇은 자세로 마리아를 올려보고 있었더라면 「식스투스의 마돈나」는 매력 빵점의 그렇고 그런 제단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교황 식스투스 2세(Xystus II, 257~ 258년 재위)는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을 통치할 때 박해를 받고 순교하였는데, 라파엘로의 그림에서는 법의를 걸치고 앉아서 마리아를 올려다보며 오른손으로 그림 바깥을 가리키고 있다. 식스투스 2세는 또 이탈리아 도시 피아첸차에 소재한 도미니크 수도원의 수호성인으로 오랫동안 기림을 받았는데, 교황 율리우스 2세가 화가 라파엘로에게 부탁해서 그린 이 그림을 그곳에 선물했다고 해서 「식스투스의 마돈나」라는 제목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숨은 이야기 한 토막. 그림을 주문한 율리우스 2세는 라파엘로가 일하는 작업실에 가서 교황 식스투스 2세의 초상을 그려 넣을 때 제 얼굴을 좀 넣어달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사실 이건 좀 엉뚱한 부탁이다. 엉큼한 쪽으로 생각하면 예술의 거울에 자신의 흔적을 새겨 넣음으로써 명예를 가로채겠다는 속셈으로 볼 수 있고, 좋은 쪽으로 변명을 둘러대자면 율리우스 2세가 순교자 교황 식스투스 2세의 경건한 용기를 본받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줄 수 있다. 라파엘로는 군말 없이 그림에다 율리우스 2세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어차피 1200년 전 교황의 얼굴 생김새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테니 누가 시비를 걸 턱이 없고, 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을 거슬렀다가 무슨 경우를 당하게 될지 은근히 겁도 났을 것이다. 실제로 사사건건 율리우스 2세와 맞서면서 고집을 피우던 미켈란젤로는 계약중도금을 떼이는 바람에 로마에서 시스티나 천정벽화를 그리다 말고 짐 싸들고 피렌체로 철수한 적도 있었다. 성품이 싹싹하고 모나지 않은 라파엘로는 그때 스탄체 집무실 벽화 작업을 하던 참이었는데, 미켈란젤로가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다가 빚잔치하고 도망쳤다는 소문 때문이었는지 앗 뜨거라, 교황청 벽화에 등장하는 역대 교황들의 얼굴에다 죄다 율리우스 2세를 그려 넣은 전력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라파엘로가 그린 이 그림도 「율리우스 2세의 얼굴을 가진 식스투스 2세의 마돈나」라고 제목을 고쳐 불러야 할지 모른다.

 

교황의 맞은편에서 짝을 이루는 인물은 성녀 바르바라이다. 피아첸차 시의 수호성인 자격으로 앉아 있는데, 등 뒤쪽으로 탑이 하나 보인다. 바르바라가 그리스도교에 입문했을 때 앞뒤 꽉 막힌 아버지가 큰일난 줄 알고 다짜고짜 딸을 돌탑에다 가두었다가 목을 베어서 죽였다고 한다. 어리석고 고지식한 아버지도 문제지만, 바르바라가 부모자식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설득할 수는 없었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림에서 교황 식스투스의 손가락과 성녀 바르바라의 젖힌 자세는 둘 다 그림 속의 사건과 그림 밖의 우리들 사이를 연결하고 매개하는 「그림의 안내자」 역할을 위한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5월 30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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