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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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성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내시는 교황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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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11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2004년 4월 8일 성목요일을 앞두고 전세계 사제들에게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성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내시는 서한

(2004년 4월 8일)

 

 

사랑하는 사제 여러분!

 

1. 저는 25년 전에 교황으로서 첫 부활 대축일을 맞으면서 시작한 이 전통에 따라 올해도 벅찬 마음으로 애정을 담아 여러분에게 성목요일 서한을 보냅니다. 이 서한을 통한 여러분과 저의 만남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함께 참여하는 형제적 만남으로서, 오전의 성유 축성 미사와 주님 만찬 저녁 미사라는 두 가지 중요한 예식을 거행하는 이 거룩한 날의 전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저는 우선, 사제 서약을 갱신하고자 교구장을 중심으로 각 교구의 주교좌 성당에 모여 있는 여러분을 생각합니다. 이 감동적인 서약 갱신은 축성 성유를 비롯한 성유의 축성과 더불어, 성사로 거룩하게 되고 구세주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 세상에 전파하도록 파견된 사제 백성인 교회의 모습을 강조하는(고린 2,14-16) 성유 축성 미사에 가장 어울리는 부분입니다.

 

해질 무렵 저는 파스카 삼일을 시작하고자 다락방으로 들어가는 여러분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목요일마다 우리에게 “이층의 큰 방”(루가 22,12)으로 돌아오도록 부르십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과 갖는 소중한 만남도 바로 그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최후 만찬 때 우리는 사제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다락방에 다시 모여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이 숭고한 사명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서로 일깨워 주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며 또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2. 우리는 성체성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최근의 회칙에서 재확인하였듯이 온 교회가 참으로 성체성사로 산다고 말할 수 있다면["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직무 사제직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무 사제직은 “성체성사로”(트리엔트 공의회, 22회기, canon 2: 신앙 규정 편람 1752) 태어나 살고 활동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성체성사 없이 사제직이 있을 수 없듯이, 사제직 없이 성체성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은총과 신비"(Gift and Mystery), 나의 사제 서품 50주년에, 뉴욕, 1996년, 77-78면].

 

‘존재’의 차원에 속하기에 결코 기능적 측면으로만 격하될 수 없는 성품 직무 덕분에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할 수 있으며, 이러한 성품 직무는 사제가 최후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을 되풀이하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순간에 정점에 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과 일치하시고자 너무도 겸손되이 당신을 ‘낮추시는’ 이 놀라운 실재 앞에서 우리는 경이로움과 경외심에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가 성탄 구유 앞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을 바라보면서 감동을 받는다면, 사제의 초라한 손을 통하여 시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희생 제사를 바치시는 제대 앞에서는 어떠한 감정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무릎을 꿇고 이 지극한 신앙의 신비를 말없이 흠숭할 따름입니다.

 

3. 사제는 성체를 축성한 다음 ‘신앙의 신비여’라고 선포합니다. 성체성사가 신앙의 신비이지만, 생각해 보면 사제직 자체도 신앙의 신비입니다(같은 곳, 78항).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성령의 활동인 성화와 사랑의 신비가 바로 사제 서품의 순간에 수품자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체성사와 사제직 사이에는 다락방에서 시작된 특별한 상호 작용이 있습니다. 성체성사와 성품성사는 함께 생겨났고, 그 운명은 세상 끝날까지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성체성사의 사도 전래성”(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26-33항 참조)이라고 말한 것을 짚어 봅시다. 성체성사는 고해성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것이며, 사도들과 모든 세대의 그 후계자들을 통하여 전수되어 왔습니다. 메시아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당신 곁에 있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도록 파견하셨습니다(마르 3,14-15 참조). 사도들이 이렇게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은 최후의 만찬 때에 그 정점에 이릅니다. 과월절 음식을 드시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거룩한 스승님께서는 그들의 소명을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심으로써 사도들의 사명에 성체성사의 날인을 찍으셨고, 성사적 친교로 사도들을 당신께 일치시키심으로써 당신을 기념하여 이 지극히 거룩한 행위를 영원히 계속하도록 하셨습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후계자, 곧 세상 끝날 때까지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줌으로써 그 사명을 이어갈 사람들까지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사제 여러분, 어떤 면에서 우리도 다락방에서 주님의 거룩한 손으로 주시는 성찬의 빵을 받아, 천상 본향을 향하여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양식으로 쪼개어 주도록 “각별한 애정으로”(성유 축성 미사 감사송) 그리스도께 친히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4. 사제직과 마찬가지로 성체성사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 은총은 “회중의 힘을 근본적으로 초월하며” 신자들이 “사도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주교직의 계승으로써 얻는” 선물입니다("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29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직무 사제는 참으로 그가 지닌 거룩한 힘으로 …… 성찬의 희생 제사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거행하고 온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한다.”(교회 헌장, 10항)고 가르칩니다. 신앙과 성령 안에서 하나 되고 갖가지 은총으로 풍요로워진 신자들의 모임은, 비록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시는”(전례 헌장, 7항) 장소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성찬례를 거행하거나 성품 사제를 배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성사와 사제직의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교회 안에 사제들이 절대 부족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마땅합니다. 계속 증대되는 복음화와 신자 사목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사제들이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오늘날 사제들이 젊은 세대로 충분히 교체되지 못하고 그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사제 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감사하게도 성소가 꽃피는 희망찬 지역들도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도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의 증진을 위하여 기도하고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의식이 점점 증대되고 있습니다.

 

5. 성소는 참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간구하여야 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따라, 우리는 수확의 주님께 당신의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마태 9,37 참조). 고통을 말없이 봉헌함으로써 풍요로워지는 기도는 성소 사목 활동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기도란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한 봉헌에서 모든 시대의 교회 생활과 사명에 필요한 성소의 씨앗이 성령의 활동으로 풍성히 자라날 것을 믿으며,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께 고정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 다락방에 잠시 머무르며, 최후의 만찬 때에 성체성사와 사제직을 제정하신 구세주를 바라봅 시다. 그 거룩한 밤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시대의 모든 사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무화과나무 아래의 나타나엘,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를 바라보시던 것과 똑같은 애정 어린 격려의 눈길로 사제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다양한 길을 따라 당신의 봉사자가 되도록 부르시고 계십니다.

 

다락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찾으시며 부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제 성소를 사목적으로 장려해야 하는 이유와 영원한 근원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 자신을 바라봅시다. 우리는 사제 성소에 가장 우선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며,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제직에 참여시키고 싶어 하시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도록 언제든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소를 위한 그 어떤 노력보다도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충실성입니다. 곧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개인적 투신,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 성체성사 거행에 대한 열의, 열심한 성체 조배, 우리 형제자매들, 특히 병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려는 열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포도밭에서 일할 새로운 일꾼들을 계속해서 몸소 부르고 계시지만, 처음부터 우리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하십니다. 성체성사를 깊이 사랑하는 사제들은 제가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로 되살리고자 하였던 “성체성사의 경이로움”을(6항 참조)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성소 여정이 잘 보여 주듯이, 그들 젊은이들을 사제직의 길로 이끄는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사제들입니다.

 

6.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이러한 면에 비추어, 저는 여러분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사제 성소의 ‘밭’이라 할 수 있는 제단의 복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기를 간청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일부인 복사들은 여러분의 지도 아래, 그리스도교 교육에 대한 귀중한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예비 신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정인 본당 공동체가 제단의 복사들을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밥상 둘레에 선 올리브나무 햇순들”(시편 127, 3 참조) 같은 자녀로 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가장 열심한 가정들과 교리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제단의 복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음으로써 그들 각자가 하는 제단의 봉사를 통하여 주님이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자라나고,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며, 전례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하십시오. 다양한 연령 집단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교구나 지역 차원에서 제단의 복사들을 위한 활동을 장려하고 격려하여야 합니다. 저는 크라쿠프에서 주교 직무를 수행하면서 젊은이들의 인간적 영성적 전례적 교육에 관심을 기울일 때 커다란 유익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기쁘게 또 열정적으로 제대에 봉사할 때, 그들은 또래들에게 성체성사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설득력 있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그들의 활발한 상상력과 사제들과 선배들의 설명과 모범에 힘입어 신앙 안에서 성장하며 영적인 실재들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자신이 곧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첫 번째 ‘사도’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증언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제단의 복사들은 매주일 미사와 평일 미사에서 여러분을 봅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손 안에서 성체성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 여러분의 얼굴에서 성체성사의 신비가 빛나고 있음을 보며, 여러분의 마음에서 위대한 사랑의 부름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아버지와 스승이 되고, 성체 신심과 거룩한 생명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7.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교회 안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어,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의 학교에서 순종하며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할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권고하듯이(1데살 5,17 참조), 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신자들에게도 성소를 위하여, 사제 생활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꾸준한 정진을 위하여, 모든 사제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도록 권유하십시오. 여러분의 공동체가 저 유일한 ‘선물이며 신비인’ 직무 사제직을 더욱더 충만히 사랑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기도하는 날인 성목요일에, 저는 사제이며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 몇 가지 청원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싶습니다("은총과 신비", 108-114면 참조).  저는 여러 해 동안 이 기도를 바치면서 영적으로 커다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제이며 제물이신 예수님,

최후 만찬에서 영원한 희생 제사를 제정하신 사제 예수님,

인간이 받아 모시는 대사제 예수님,

인간을 위하여 세워지신 대사제 예수님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대사제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의 마음을 지닌 목자들을 당신 백성에게 보내 주시기를 청하오니,

주님께서 수확하실 밭에 충실한 일꾼들을 보내 주시기를 청하오니,

주님의 신비를 나누어 줄 충실한 관리자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기를 청하오니,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8. 여러분 각자와 여러분의 일상 직무를 사제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맡겨 드립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우리는 빛의 신비 제5단에서 성체성사의 선물을 성모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이 세상에”(요한 13,1) 보여 주셨던 사랑과, 모든 감실 안에 계시는 그분의 소박한 현존에 경탄하게 됩니다.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서 여러분의 손 안에 있는 그 신비를 여러분이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은총을 간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몸과 피로 주신 놀라운 선물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여러분이 사제 직무에 충실히 정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대사제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교회에 언제나 수많은 성소자들과 충실하고 헌신적인 제단의 봉사자들이 넘쳐 날 수 있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 공동체에 부활 대축일을 축하하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으로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재위 제26년,

2004년 3월 28일 사순 제5주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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