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악마에게 시험 받으시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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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45

[성미술 이야기] 악마에게 시험 받으시는 예수

 

 

- '악마에게 시험 받으시는 예수', 두초, 시에나 제단화 「마에스타」의 프레델라 그림. 1308~1311년, 44×45㎝, 프릭 컬렉션.

 

이탈리아 화가 두초의 그림은 색유리를 녹여 붙인 장식처럼 아름답다. 두초는 일찍이 세밀화가로 이름을 날렸고, 가구 그림에도 깔끔한 솜씨를 발휘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배경 하늘은 번쩍거리는 금박이다. 금으로 하늘을 바르는 것은 비잔틴 미술의 오랜 전통이다. 다른 화가들도 교회에서 주문한 공식 제단화를 그릴 때는 대개 바탕색을 금박으로 칠했다. 하늘과 하느님의 존재를 동일시하고, 거룩한 신성을 빛으로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금은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성질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종교 주제를 다루는 제단그림의 배경에는 금박을 선호했다.

 

 

-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 구에르치노, 1649년. 124.3×158.7㎝, 워싱턴 국립 미술관.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펼치는 알몸 유혹에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하느님만 예배하고 섬겨라”

 

애드거 앨런 포우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나는 유혹 이외의 모든 것에는 절대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 말을 돌려서 읽으면 유혹이란 유혹에는 무조건 빠진다는 이야기이니까, 너스레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혹에 당하는 장사가 없다는 사실은 역사를 훑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의 유명한 10년전쟁이 미인에게 장가 가게 해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유혹에 눈 먼 파리스가 황금 사과를 내밀었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는데 또 10년이나 소요된 것도 키르케 같은 요부들이 영웅의 발목을 묶어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큼직한 서사시 두 편을 써내려 가면서 유혹이라는 코드 하나로 밀어붙이는 뒷심이 엔간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화도 마찬가지다. 올림포스의 제왕 제우스가 천하의 못 말리는 바람둥이라는 사실은 초등학교 코흘리개들도 줄줄 꿰는 내용이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애정 행각에 몸달아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점잖은 문예의 신 아폴론이나 불굴의 영웅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까지 여자 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것을 보면 왜 그토록 번성하던 헬레니즘 문화가 폭삭 망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성서에도 유혹의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담을 꼬드긴 하와, 아니 하와를 꼬드긴 뱀이 창세기 첫 장면부터 분위기를 흐리기 시작 하더니, 삼손이 들릴라의 아름다움에 솔깃해서 제 팔자를 구기는가 하면 다윗과 솔로몬은 아예 대놓고 여성 편력에 앞장선다. 그래도 이 둘이 마치 현군인 것처럼 성서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그 시대 역사를 다윗과 솔로몬이 새로 고쳐 쓰게 하면서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갖다 붙였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물론 보디발의 아내가 펼치는 알몸 공세에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는 요셉 같은 「멋없는」 남자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예수님도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웠을까? 1988년 마틴 스콜시지가 감독한 영화 「예수의 마지막 유혹」에서는 이런 의문을 던진다. 원래 니코스 카잔차키스 원작을 각색한 영화인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영화 개봉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적이 있었던 문제작품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에서 잠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서 막달레나와 함께 오붓하게 살림도 차리고 세상 유혹을 한 번 겪어본다는 줄거리였는데, 결국 별 것 없다는 결론을 얻고는 다시 십자가의 운명에 순종하신다는 줄거리이다. 이런 가정 자체가 불손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이 인간적 고뇌로 번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예수님은 젊어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신 적이 있었다. 40일 동안 사막에서 단식을 하실 때 악마가 접근했는데, 예수님은 달콤한 유혹을 모두 떨치시고 악마를 내쫓으셨다고 한다.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도 예수님만한 심지가 있었더라면 우리가 원죄의 굴레를 쓰고 사망의 운명 때문에 이렇게 마음 고생이 심하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이탈리아 화가 두초가 그린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예수」는 시에나 대성당에 전시하기 위해 제작된 대형 제단화 「마에스타」의 프레델라 그림이다. 프레델라는 여러 장의 패널로 이루어진 대형 제단화의 아래쪽 받침 부분을 가리킨다. 크기가 두어 뼘 남짓 밖에 안 되지만 성서의 일화를 격식 차리지 않고 손 가는 데로 그린 그림이라서 화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악마는 다짜고짜 세 가지 미끼를 던졌다고 한다.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았다. 악마가 유혹한 시점이 예수님이 단식을 마친 후였는지 단식 중이었는지는 복음서에 따라 기록이 다르다. 유혹의 순서도 약간씩 다르다. 악마는 우선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주면서 『만약 나에게 절을 하면 … 저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다』고 호언한다. 군침 도는 제안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두초가 고른 것은 바로 이 장면이다. 산꼭대기 벼랑에 버티고 선 예수님의 모습이 퍽 늠름하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으니, 악마에게 허리를 굽힐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악마는 허둥지둥 쫓겨간다. 예수님 뒤로 날개 달린 천사들이 서있다. 한 천사는 유혹을 물리친 예수님의 의지에 감탄하고, 다른 천사는 꽁무니를 사리는 악마의 뒷모습에 고소한 표정이다.

 

두초의 그림에는 재미난 부분이 또 있다. 등장인물들이 모조리 그림 위쪽에 모여 있고 그림 배경을 차지할 도시 풍경이 되레 아래 부분에 깔려 있는데, 이것은 성서를 따른 것이다.

 

『악마가 예수를 높은 곳에 데려가서 발치 아래 까마득하게 보이는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주었다』

 

두초는 세상의 모든 왕국을 장난감 레고를 쌓아서 만든 도시처럼 재현했다.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의미하는 악마의 도성을 그리면서 그가 시에나에서 보았던 건축 소재들을 조금씩 떼어온다. 붉은 기와를 올린 맏배지붕, 대리석으로 둥글게 쌓아올린 뾰족탑, 창턱을 기울게 낸 로마네스크식 창문들 그리고 붉은 벽돌을 덮은 성문 앞의 포장 도로를 보면 그 당시 번영을 자랑하던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 풍경과 다르지 않다. 제단화에 세상의 도시를 그려 넣음으로써 유혹의 풍경으로부터 오늘의 교훈을 이끌어낸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1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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