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가정: 통합적 가정사목을 위한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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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311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가정 - FABC 제8차 총회 결과와 통합적 가정사목을 위한 제안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한다. 군 입대 뒤 첫 휴가 나온 아들의 검게 탄 얼굴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으며 어머니가 하는 말일 수도 있겠고 몇 년, 몇 달 아니 몇 주라도 타지에서 지내다 온 사람들이 어려웠던 때를 떠올리며 푸념조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또 잠시나마 집을 벗어나 바캉스나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도 할 터이다. 이렇듯 우리는 한순간이라도 집을 떠나있으면 불편함을 느끼며 사는 것 같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로 시작하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이라는 노래도 가파르고 메마른 삶을 살던 한 음악가가 말년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며 만든 노래라 하지 않던가! 확실히 가정은 인간에게 편안함을 주는 안식처요 ‘행복’이라는 말을 하거나 들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왔다. ‘편안함’을 위해, 거꾸로 말해 ‘불편함’을 피하고자 가정을 찾고 또 그리워하는 것이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 안락함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겠다. 

 

그렇다면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라는 주님의 명을 받들어 자기 가정의 그 편안함에서 미련 없이 떠난 아브라함은 늘 ‘불행’했을까? 아브라함을 비롯해 유목민들은 이제나 저제나 좋은 목초지를 위해 늘 떠나는 삶을 살았고 가는 곳마다 그곳을 집으로 여기며 살았다. 늘 떠나는 불편한 그들의 삶에서도 그들은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쩌면 ‘편안하고 따듯한 집=행복’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이 아닐까? 다시 가정문제를 대하며 화두처럼 던져보는 물음이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제8차 정기총회

 

올해 8월 한국에서 열린 이 총회는 최근 교회 안팎으로 가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치른 행사로서 가정사목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데 크고도 중요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회의는 끝났고 이제 남은 일은 회의 결과를 제대로 수용해 지역교회에 구체적이고도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일이겠다. 이를 위해 이 자리에서는 우선 FABC와 관련해 총회 자체와 최종문서를 평가할 수 있겠고 이어서 지역교회의 대응, 특히 한국 천주교회가 어떻게 이 회의의 결실을 우리 현실에 맞게 끌어안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겠다. 세세한 분석은 피하고 가능한 한 총괄적인 평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하자.

 

이번 총회는 회의 진행자 중 하나였던 말레이시아의 에드문드 치아 수사의 말대로 “불고 싶은 대로 부는 성령”에 인도되는, 어떻게 보자면 역대 다른 총회에 비해 체계적이지 않은 느슨한 회의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프로그램이나 일정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했다. 이를테면 총회가 있기 훨씬 전에 작성한 작업문서(working paper)를 바탕으로 회의를 진행하려 했으나 상당수 참가자들이 이를 읽지 않았다고 판단해 기존 일정을 확 바꿔서 아예 읽는 시간을 주고 난 뒤에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끝난 뒤에 드는 생각이지만, 이런 배려 없이 프로그램대로 밀고 나갔다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최종문서가 이 작업문서의 틀을 그대로 두고 첨삭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작업문서 내용을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참가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최종문서는 작업문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전체 124항 가운데 32개 항을 완전히 또는 거의 대부분을 고쳤고, 제3부 사목 권고에서 새롭게 제안된 내용과 부분적인 수정까지 포함하면 전반에 걸쳐 손을 봤다고 해야 맞겠다. 많이 고쳤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총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말일 테니 이런 점에서 이번 최종문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본다. 

 

작업문서에서도 이미 하느님 나라가 언급되기는 했지만 최종문서에서는 ‘하느님 나라(Reign of God)’를 이해의 틀이나 해석학적 원칙으로서 제시함으로써 가정 문제를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먼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최종문서는 1항을 새롭게 쓰면서 아시아 가정이 친교와 연대, 선교를 중심으로 하느님 나라로 가고 있는 여정에 있으며 그렇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종문서는 이 친교와 연대의 내용이 다른 사람과 구원의 연대를 이루는 일, 특히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한 예수님의 사명, “하느님 나라에 생명을 주시는 당신의 사명”(58항)이라고 밝힌다. 가난한 자와 이루는 연대를 비롯해 아시아 상황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타종교인 가정, 혼종혼 가정뿐만 아니라 나아가 편부모, 이혼·재혼 가정, 이주민·이민 가정 등과의 연대로 넓혀가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가정이 그리스도 중심의 제자직을 실천하는 길이며 선교의 공통분모로 이런 하느님 나라의 영성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121항).

 

이런 점에서 왜 최종문서가 하느님 나라를 가정문제를 바라보는 해석의 원리로 제시하면서 작업문서에는 없던 “온전한(integral)”이라는 단어를 삽입해 “온전한 생명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으로 제목을 수정했는지 그 까닭을 가늠하게 한다. 다시 말해 이 “온전한” 생명이라는 표현을 가정에 견주어 이해하면, 완벽한 가정을 하나의 모델로 정해놓고 이를 추구해 나가자는 뜻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포함한다는 포괄적인(inclusive) 태도를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아시아의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이라는 상황에서 보자면 당연한 것이지만 이번 총회의 논의가 추상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했다는 반증으로 여길 만하다고 보인다. 그런데 이는 아시아의 여러 가정이 일상 삶에서 부딪히는 시련과 고통에 굴하지 않고 구체적인 친교와 연대로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함께 성장하면서 나아간다(74-75항)는 최종문서의 선언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

 

물론 최종문서는 앞에서 지적한 내용 말고도 이주노동자, 토착민, 여성문제(15-20항), 저출산율과 고령화(38항), 에이즈(40-41항), 생명공학(43-45항), 매스 미디어(89-90항), 부부관계와 자녀교육 등 여러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면서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다.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 저출산율과 고령화를 이슈화한 것은 아시아에서 가정문제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이런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각 지역교회가 그 상황에 적합한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과제를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문서는 지역별 회의 때에 동남아시아 그룹이 들고 나온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에 “새로운 도전”이라는 말로 간단히 정리했다. 이 지역회의에서 인도네시아 참가자들은 동성애자들이 교회의 온전한 일원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사목적 배려가 요청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한 가지 밝힐 것은 이 총회가 열리기 전인 지난 6월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ICMICA)과 우리신학연구소가 국제 포럼을 열고 이번 제8차 총회와 작업문서에 대해 논의한 뒤 제시한 비판적 제안이 총회에 주요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아시아 평신도 신학자와 활동가들이 참가한 이 포럼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언명한 바, 혼인은 하나의 “성사(ordo, holy order)”이며 가정 또한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 실현태로서 이 안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이 신앙을 능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 단순히 가정을 교회의 사목 대상으로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이미 가정 안에 현존하는 교회”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과 성(sexuality)에 대한 이원론적, 수동적 이해에서 벗어나 성은 하느님께서 주신 성사적 선물(sacramental gift)이라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포럼 참가자들은 총회 작업문서에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라는 아시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주 제한적으로 다뤄졌다고 지적했다(포럼 최종선언문, 10-13항). 이런 지적이 총회 최종문서에 크게 반영된 것은, 물론 이 포럼에 참가했던 이들 가운데 10여 명이 총회에 참가해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가한 데도 까닭이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직자와 평신도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는 점이다.

 

 

지역교회의 응답 : 여성학의 시각

 

이번 총회 이후에 FABC 차원의 후속 프로그램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라별로 가정에 관한 사목교서나 주교 메시지를 발표하거나, 가정사목 종사자 회의를 활성화하거나, 또 가정문제에 관한 회의 또는 심포지엄을 여는 등 크고 작은 행사가 있었다. 이런 흐름 가운데 최근 가톨릭여성연구원이 연 심포지엄은 주목할 만하다고 본다. 지난 10월 2일 “도전받는 가정공동체”라는 주제로 열린 이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가정사목이 주로 혼인, 이혼, 혼전 성관계, 낙태 등 개별적 사안에 대해 전통적인 가치관에 기반한 가르침을 단편적으로 전파하는 것에 치중되어 온 감이 있다.”고 지적하고 가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라고 촉구했다.

 

여러 주장이 제기됐지만 두 가지 정도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정 개념은 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정’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정상 가정이라는 고정된 이상형에 매달려 거꾸로 현실을 여기에 맞춰서는 안 되며 어떤 가정에서든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개발하고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하다. 다시 말해, 가족의 건강성을 좌우하는 것은 가족 형태가 아니라 가족 관계의 질과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둘째는 “정상 가정” 개념의 기원 문제로 이 개념은 19세기 프랑스 산업사회의 부르주아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런 가정 모델에 따르면 아버지는 가정 밖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며 자녀를 돌보는 성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 이런 가정 모델은 소외되고 가난한 이주민이나 노동자 가정에 부합하지 않으며, 특히 맞벌이 부부 형태가 일반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형이므로 교회가 이런 가정을 “정상 가정”이라고 보는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이 심포지엄이 FABC 제8차 총회와 상관없이 준비된 것이어서 총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성찰할 수는 없었다는 주최 측의 귀띔이 있었지만 앞서 필자가 말한 최종문서의 기본 방향과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변화하는 사회상황에 맞게 가정은 변화해 가며 여기서 어려움에 맞서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 것은, 앞서 총회 최종문서에서 가정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의 깊은 친교와 연대를 이루며 하느님 나라로 가고 있는 여정, 곧 순례의 길”이라고 본 것과 잘 조응하며 또 중요한 신학적 모티브를 제공한다.

 

 

신학적 제안 : ‘순례하는 교회’인 가정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변치 않는 제도(permanent hierarchical order)로서의 교회와,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라는 하느님의 백성(People of God) 교회론, 또 세상에 ‘봉사하는 종’으로서의 교회론 등 다양한 교회론을 제시한다. 오늘 우리 주제와 관련해 중요한 교회론은 「인류의 빛」,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인류의 빛」에서 제시한 ‘순례하는 교회’, 지상에서 순례의 길을 가는 교회의 모습이다. 순례하는 교회는 자신의 성사들 안에서 그리고 이 시대에 딸린 제도 안에서 지나갈 이 현세의 모습을 지니고, 아직까지 신음하고 진통을 겪으며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피조물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인호를 받은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며,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들이다(48항). 바로 현세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는 “우리가 교회”이며,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열정적 신앙으로 “나그네 길을 걷는”(8항),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에 있는 ‘과정 속의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앞서 필자는 최종문서에서 하느님 나라가 가정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가늠자 구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의 사회적 역할을 언급하는 항은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회 변화에 이바지하는 일은 가정이 수행하여야 할 봉사다. 그러나 그러한 사명은 그리스도인 가정이든 아니든 모든 가정의 사명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느 가정도 끊임없이 변화를 필요로 하는 이 세상과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은 모든 가정의 여정이기도 하다”(91항). 

 

예수님 가정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아니 예수님 스스로 당신 사명 가운데 ‘하느님 나라 선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으니 예수님의 성가정도 바로 하느님 나라를 찾아가는 순례자 교회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가정해체와 저출산율이라는 사회 상황 아래서 ‘안락한 가정’(정상 가정)을 예수님의 ‘성가정’과 동일시해 왔다. 여기서 최종문서는 이런 동일시가 잘못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수님 부모의 삶은 평범한 삶이었지만 여느 가정보다 더 어려운 일을 겪는데, 이를테면 “아기를 낳을 적당한 장소를 구할 수 없었고” 아기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낯선 땅에서 가족이 피난처를 찾아내야” 했으며, 예수님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죽음을 당하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65항). 이렇듯 복음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삶과 성가정은 애당초 ‘안락한 가정=행복’이라는 관념과 거리가 멀다. 따라서 우리가 성가정을 우리 가정의 모범으로 삼고자 할 때 성서에 근거를 두지 않고, 관념적으로 만들어놓은 “정상 가정”만을 말하는 성가정관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 강생하심으로써 예수님과 같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성화되었다는 육화신학(Incarnation Theology)을 순례자 교회에 비추어, 모든 가정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바로 순례자 교회의 길이며 그 자체로 성화된 것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겪는 고통, 절망, 슬픔을 슬기롭게 극복해 내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가정이 보여준 것이었으며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성가정이라고 강조하고자 한다. 가족의 슬기를 모아 고통을 이겨낼 때 순례자 교회로서 가정은 하느님 나라를 삶의 굽이굽이에서 순간순간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신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앞서 말한 육화신학 말고도 종말론에 관한 새로운 이해와 신학화가 절실히 요청된다.

 

 

사목적 제안 : 순환방법론과 통합사목

 

한국 주교회의에서 발표한 「가정을 위한 교서」는 이번 총회 문서가 취한 “관찰-판단-실천”의 순환방법론(pastoral spiral methodology)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순환방법론은 1990년 제5차 총회 이후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가 본격적으로 지역교회에 쓰도록 권고한 사목방법론이지만, 실은 그전부터 가톨릭노동청년회(JOC) 같은 가톨릭 운동단체에서 써온 방법론으로 그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교서는 첫 부분에서 한국사회의 세속화와 가정 해체현상을 가정형태, 혼인관, 부부관계, 저출산과 고령화 등을 중심으로 살폈고, 이어서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이 이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았으며, ‘실천’에서는 사목적 대안으로 교육, 가정사목 정책, 통합 사목, 특수 환경의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등을 제시했다. 이 순환방법론을 통해 이번 총회가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라와 지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이 방법론을 더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그 진가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다양한 가정 하나하나의 입장에서, 이들의 시각을 중심으로 이를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사목적 제안과 실천도 그만큼의 폭과 다양함을 지녀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저출산 가정, 혼종혼 가정, 동성부부 가정은 같은 사회적 환경 아래 있더라도 부딪히는 문제와 충격의 정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이런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순환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환방법론의 구체적 적용은 통합적 사목 없이는 그 실효성을 보장하기가 어렵다. 이와 관련해 최종문서는 “모든 사목 계획이 지원하고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복음화의 초점인 가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며, “모든 사목계획이 (…) 가정을 강화하고 힘을 실어주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118항)라고 제안한다. 과연 현재의 사목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런 가정사목 중심의 사목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지만, 필자는 가정 중심의 통합사목을 본당 차원과 교구로 나눠 제안해 보려 한다. 

 

첫째, 본당에서는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가정사목을 고민해 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본당구조를 소공동체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이때 본당은 소공동체에서 신자들이 채우기 어려운 신심활동과 문화활동을 제공하는 장소이자 적당한 주기로 구역 또는 전체 신자가 모이는 센터 역할로 재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소공동체가 “가정 공동체”가 아닌 성별, 직능별인 한국의 경우에 어려움은 여전히 남는다.

 

둘째, 현재 교구의 각 부서 사이에 아무런 연관 없이 각자 자기 일만 하는 상황을 지양하고, 통합적 사목을 하려면 우선 가정사목부를 따로 두고 각 부서에 가정사목 또는 소공동체 담당자를 두어 가정사목부와 각 부서를 연결할 필요가 있다. 이 담당자는 각 부서의 고유한 업무에서 가정 또는 소공동체 업무에 해당하는 업무를 가려내고, 가정사목부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면서 가정사목 자료와 업무를 통합적으로 관리한다. 

 

전국 차원에서는 이번 주교회의 교서에서 제안한 대로 가정사목연구소를 시험적으로 운영해 교구별로 가정사목 상황을 점검하고 도울 수 있는 방안, 이를테면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을 통한 지원으로 가정사목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본당-교구-전국이 이렇게 연결되면 순환방법론을 구체적으로, 또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 된다.

 

 

위기를 기회로!

 

이번 총회 마지막 회의에서 “아시아의 하느님 백성과 선의의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수정하는 작업이 있었다. 총회에는 남편은 힌두교 신자이고 아내는 가톨릭 신자인 부부가 참가했는데, 이 힌두교 신자는 메시지 마지막에 나오는 “생명을 주시는 사랑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그리고 “복음”이라는 말이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모두와 선의의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했으니 그의 말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회의 운영위원들은 이를 해결하느라 상당히 고심했다. 하루 뒤 운영위원들은 그의 의견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여 결국 다음과 같이 메시지의 문구를 고쳤다. “우리는 아시아 가정을 사랑과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에게 의탁한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습니다.’(골로 3,14)라고 기도한다. 하느님께서 아시아에 보내신 사랑과 생명의 은총인 아시아의 가정이여, 그 본래 모습으로!”

 

80여 명의 추기경과 주교, 60여 명의 평신도, 그리고 40여 명의 사제와 수도자 등 180여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한 힌두교 신자의 의견을 존중해 메시지를 바꾼 것이다. 필자는 이번 총회의 가장 커다란 성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이번 제8차 총회 자체가 하나의 가정이었고, 모든 가족 성원들이 한 힌두교 신자 가족의 지적으로 생긴 위기를 종교 간의 대화합이라는 결실을 거두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온전한 생명”을 향한 아시아 가정은 여기에 있었다. “순례자인 FABC 가정”은 이런 논의와 고민 속에서 평등한 의사소통과 결정으로 하느님 나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구현되었다. 남은 일은 하느님 나라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마치 닦으면 닦을수록 빛이 나는 거울처럼.

 

[사목, 2004년 12월호, 황경훈(사단법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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