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2004년 사제 성화의 날 성직자성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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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124

사제 성화의 날에 즈음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다리오 카스트리욘 오요스 추기경의 서한

(2004년 6월 18일,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직무에서 성덕의 원천인 성찬례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예수 성심 대축일에 거행될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 사제 직무의 은총에 대하여 성찰해 보고, 모든 신자와 온 인류, 그 가운데에도 특히 여러분이 열심히 또 헌신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여러분 각자의 교구장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에 대한 여러분의 사목적 관심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올해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주제인 “사제 직무에서 성덕의 원천인 성찬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황 재위 25주년이자 묵주기도의 해인 지난 해 성목요일에 발표하신 교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와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1. 사랑으로 창조되어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2). 레위기는 믿음을 가진 모든 피조물, 특히 모든 성품 직무자의 은총과 목적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교회와 모든 사람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성덕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사제 성소는 “근본적으로 성품성사라는 형식을 통해서 성덕으로 초대하는 부르심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 33항). 사제는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환경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면서 그리스도를 만나서 알고 사랑하며, 언제나 그분과 더욱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예수 성심 대축일에 우리 주 하느님과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분의 성자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우리의 지평은 우리 일상생활의 경계 너머로 확대될 것이며, 우리의 삶은 더욱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차원으로 풍부해질 것입니다.

 

“내 말을 들어라.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이미 다 익어서 추수하게 되었다”(요한 4,35). 주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마음속에 메아리치며, 강생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의 사랑의 임무, 우리의 것일 수 있는 그 임무의 드넓은 지평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교회에 유산으로 그 임무를 맡기셨으며, 특별히 당신의 성품 직무자인 우리에게 그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우리를 사제로 만들어 준 사랑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음식을 드시고 일상의 어려움들을 나누신 바로 그 예수님께서 지금도 당신 교회 안에 변함없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 안에 현존해 계십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구원의 십자가인(골로 1,20 참조) 당신 은총과 영광의 옥좌에서 지금도 모든 신자를 당신께 끌어들이시어 모든 세대의 모든 인류와 유일한 한 몸을 이루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신 백성을 가르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다스리시는 머리이며 목자로서 언제나 적절하고 탁월하게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현존은 그분께서 당신 교회의 중심에 세우시고자 하셨던 사제 직무를 통하여 실현됩니다. 모든 사제는 사제 직무를 통하여 자신이 선택되고 축성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전달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알리도록 파견되었다는 것을 단언할 수 있습니다(성직자성, 사제 직무 생활 지침, 1974. 1.31., 7항 참조).

 

우리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삶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와 메마른 땅을 적셔 비옥한 옥토로 만드는 물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시간과 공간 안으로 들어오심으로써 역사는 더 이상 강생 이전의 메마른 땅이 아니라 보편적 희망의 의미와 가치를 띠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마른 땅과 같은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쏟아 부어진 물의 작용으로 흩어진 밀가루가 한 덩이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우리가 하나의 빵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성 이레네오, 「이단 반론」[Adversus Haereses], III, 17: 『그리스 교부 총서』 7, 930 참조). (요한 바오로 2세, 칙서 「강생의 신비」[Incarnationis Mysterium], 4항).

 

 

2.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복에 이르는 데에 필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완전한 자기 증여의 징표로서 십자가 위에서 창으로 찔린 지극히 거룩하고 자비로운 예수 성심은 메마르지 않는 참 평화의 샘이며,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던”(요한 13,1) 것과 같은 희생적인 사랑과 봉헌의 충만한 현시이며, 하느님과 인간이 이루는 친교의 토대입니다.

 

예수 성심 대축일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사랑의 기쁨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새로운 노래를 주께 불러드려라. 묘한 일들 주님께서 하시었도다”(시편 97,1).

 

사랑하는 사제 여러분, 이 놀라운 일들이 바로 우리의 삶이며,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신비이자 하느님 자비의 은총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를 다음과 같은 말로 훌륭히 표현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예레 1,5). 또한 바오로 성인이 말했듯이, 사제직뿐만 아니라 사제직을 향한 여정도 하나의 은총입니다. “이 영예로운 직무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히브 5,4).

 

세례 사제직으로써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 됩니다. 바오로 성인이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일하는 종일 따름입니다(2고린 1,24 참조).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을 되새기자면, 직무 사제직은 “교회 공동체의 선익을 위하여 수행되는 어떠한 봉사나 직업이 아니라, 성품성사의 은총을 통하여 참으로 유일한 방식으로 또 지울 수 없는 인호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권한에 참여하는 봉사입니다”(바오로 6세, 사제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1968.6.30., 신앙의 해를 마치며).

 

사람들은 사제에게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아야 하고, 사제에게서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은”(히브 5,1)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지식이시며 또한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그리스도 친히 우리 안에 현세적인 것들에 관한 믿음을 심어 주시고, 그리스도 친히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진리를 설명해 주십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삼위일체론"(De Trinitate), 13, 19, 24).

 

 

3. 우리의 힘과 희망인 성찬례를 통하여

 

복음서는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풍랑에 시달리던 배 안에 있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어 도움과 위로를 주셨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마태 14,22-23 참조).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는 초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배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신 권유를 우리에게도 되풀이하여 말씀하십니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마태 14,27). 역경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유효하게 심어주셨고 여러분이 너그러이 겸손하게 받아들인 사제 성소는 그러한 비옥한 토양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의 자비로운 모습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기도와 고해성사를 통하여 바라보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분의 시선만이 우리의 미약함과 우리의 한계, 우리 죄의 무게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복음서의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협력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도움도 줄어듭니다”(마태오 복음 해설, 50항).

 

특히 거룩한 성찬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의 진실성과 유효성을 재발견합니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하고 말씀하셨다”(마태 14,31). 하느님의 손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면, 우리의 자만심과 사탄의 힘으로 요동치는 어두운 바다는 그 세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을 이끌어내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교황 성하께서는 성체성사에 관한 회칙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덕에 대한 모든 노력, 교회 사명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활동, 모든 사목 계획에 필요한 힘은 성체성사의 신비에서 이끌어 내어야 하며, 또한 그 정점인 신비를 지향하여야 합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60항).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교구 사제, 선교사, 수도자 여러분에게 이 거룩한 직무 안에서 여러분이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특히 거룩한 성찬례를 통하여 여러분의 사제 성소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성소의 교육자가 되어, 두려움 없이 성덕을 근본적인 선택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아르스 본당 신부인 비안네 사제가 단언하였던 것처럼, “사제는 예수 성심의 사랑”(비안네 사제의 교리교육, 강론, 대화에 나타난 "아르스 본당 신부의 정신"[Esprit du Cure D'Ars], Tequi 출판사, 파리, 1935, 177면)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 자신의 성소가 보여 주는 감동적인 증언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제가 자신이 무한한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는 죽고 말 것이다.”라고 비안네 사제는 덧붙입니다("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의 정신", 같은 곳, 113면).

 

하느님의 집인 교회를 지키는 사람인 우리는 우리 본당의 모든 교회 생활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또한 최고의 사도직 계획과 사목 계획들을 밀쳐내고, 하느님의 말씀과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으로 흠뻑 젖어 있지 않은 일로 바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메마르게 하는 장애물인 행동주의를 멀리하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황 성하의 말씀을 되풀이하여 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로 변한 빵과 포도주의 소박한 표징 안에서, 우리 여정의 힘과 양식이 되시어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62항).

 

우리는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 다락방의 경험을 되살려 줍니다. 다락방은 어떤 의미에서 사도들에 대한 최초의 교육 현장이었습니다. 다락방에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르치신 다음,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고, 십자가의 피흘림 희생 제사를 예시하시며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 자신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내어 주셨습니다.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을 기다리던 사도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여자들과 (……)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에 힘썼습니다”(사도 1,14).

 

올해는 1854년 12월 8일에 복자 비오 9세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선언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히 충실한 믿음으로 우리의 복되신 성모님께 기도드립니다. “성체성사”의 여인이신 성모님께서 언제나 우리 안에 당신 아드님을 온전히 닮으려는 열망을 불어넣어 주시어, 그리스도 자신, 제2의 그리스도(ipse Christus, alter Christus)가 되게 하여 주시고,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인간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 현대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기쁨과 희망, 고민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동시에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성모님께 간청 드립니다.

 

사도들의 모후이시며 사제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우리를 봉헌하며, 성모님께서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또 최초의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과 같이, 우리의 직무 여정에 함께 하여 주시기를 성모님께 간청 드립니다. 복음화의 별이신 성모님께 우리 자신을 성실히 봉헌함으로써 성모님의 전구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사제 성소에 충실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 우리 교회 공동체의 중심으로 밝게 빛나시어 교회 공동체들이 “산위에 있는 마을”, “집안에 있는 사람을 다 밝게 비출 수 있는 등불”(마태 5,14-15)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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