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1998년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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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134

1998년 성탄 메시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14).

 

구세주의 성탄을 맞이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축복과 평화를 풍성히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둡고 힘들고 차가운 이 세상에 구원과 평화를 주시려 한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사회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큰 시련을 겪어온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위로를 받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심에 대해 묵상해봅시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주십니까?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시편 8,4-5)는 시편의 노래처럼 인간은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늘 자신의 잣대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하다보니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긋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다른 인간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하느님께서 관리하라고 맡기신 자연과의 관계마저 어긋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창조된 목적대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평등한 존재에서 불평등한 존재가 되고, 심지어 노예로마저 전락하게 되고 스스로 자신이 고귀한 인간임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절망과 억압, 슬픔과 분노에 가득찬 이들에게 희망과 해방, 기쁨과 평화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로써 삶의 의미를 잃었던 이들은 새로이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며, 인간다움을 잃었던 이들도 자신의 고귀한 인간 존엄성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베들레헴의 한적한 곳에 천사들의 노래가 들려오고 갓태어난 한 아기가 강보에 싸여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할 때 이 세상 누구라도 마음으로부터 평화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갓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인류의 구세주께서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계셨던 것은 아무도 그분을 알아뵙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마태 8,20) 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뵙고 있는지, 그분이 머무실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이 갓태어난 아기보다 더 연약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누가 구유에 누워있는 것보다 더 비참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 길을 택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 인간의 논리를 역전시키기 위한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부귀와 명예,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만 생각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갓난아기로 태어나 구유에 뉘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해마다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시 오십니다. 주님께서는 매년 우리에게 희망과 평화를 주시지만 우리가 이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쩌면 받으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매번 가장 겸손하신 모습으로 먼저 손을 내미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주시며 참된 회개를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어두움 속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한편으로는 빛과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절망과 어두움에 빠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사이엔가 서로 마음을 닫고 지내고 있습니다. 핏줄로 이어진 가정에서조차 가족들간에 대화가 단절되어 가고, 직장에서도 서로가 퇴출당하지 않으려 두려워하는 까닭에 동료애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도 우리의 전통과 가치관이 없어지고 이를 대신할 새롭고 참된 가치관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이들이, 모든 분야에서 혼란에 빠져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국민 대다수가 사회현상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심각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몸과 마음이 추우리라고 예상됩니다. 물질적 부족 때문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가족사랑, 인류 공동체의 형제적 사랑이 무너져가고 있기에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경제적 위기보다 더 근본적인 정신적 붕괴의 위기가,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이를 각성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기 예수님을 낳아주신 성모 마리아의 자세를 본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모님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아기 예수를 낳으리라는 소식에 그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루가 1,37)는 이 한마디에 자신의 미래가 어찌될 것인지도 모르고, 처녀의 신분으로 아기를 낳으면 어떤 수모를 당할지도 뻔히 알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겸손과 순종의 자세가 오늘 구세주를 이 땅에 태어나시게 한 힘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철저히 신뢰하는, 이런 마리아의 자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시해줍니다.

 

아기 예수님은 마리아, 요셉의 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한 가정을 택하여 그 안에 오셨습니까? 가정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즈음처럼 점점 더 개인주의화, 비인간화 되어가는 사회에서는 가정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기만 합니다.

 

가정은 인간성숙과 인격성립의 기초가 되며 인간관계의 살아있는 실천의 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가정이 건전하게 지켜진다면 사회의 위기는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극복이 될 한시적인 현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정의 일원으로서 가족간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게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면 인간을 신뢰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인간을 신뢰하는 것이 마음을 바로잡는 회개이고 회개가 곧 화해의 첫걸음입니다.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할 때만이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질서를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대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 탄생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서로가 마음의 담을 쌓고 사는 우리를 하나되게 해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에페 2,14).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맞으면서 지난날에 본의 아니게 외면하고 소홀히 대했던 이들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방황과 좌절과 체념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을 외면한 데 대해 그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직장을 잃은 실직자들과 그 가족들, 집을 나와야 했던 노숙자들, 그리고 북한 동포, 중국의 조선족 및 해외 동포, 외국인 노동자들, 이 모든 분들께 우리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2000년 대희년이 이제 꼭 1년 남았습니다. 내년 성탄절부터 시작되는 대희년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벅찬 희망을 가지고 대희년을 맞아 그 동안의 어둠에서 벗어나 평화와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탄생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친애하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가득히 내리시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1998년 성탄절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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