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0년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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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0-12-23 ㅣ No.136

2000년 성탄 메시지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 3,16)

 


1. 대희년에 맞이한 주님의 성탄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탄생하셨습니다. 2000년 대희년의 뜻깊은 해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기뻐하며 이사야 예언자가 불렀던 기쁨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반가워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이사 52,7).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이 여러분과 우리 민족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고통 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청합니다. 아울러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주님의 은총으로 불신과 대립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을 통해 새롭게 민족의 앞날을 열어 갈 수 있기를 간청합니다.

 

 

2. 사랑 때문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

 

성탄은 천주 성자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비천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 2,6-7).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모습은 마땅히 머물 곳조차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비참했습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신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시기 위하여 가장 소외된 장소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골고타에서 죽기까지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아끼면 유한한 삶을 뛰어 넘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한결같이 사랑하셨지만 그 가운데서도 병들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3. 어려움 속에서의 불안한 삶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에 인류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큰 진보를 이룩하였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전반적인 삶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우상처럼 숭배하며 극심한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도덕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생명경시 풍조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또 오늘날 지구촌은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무한 경쟁을 일삼아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2000년 대희년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분단 이후 최초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그 결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긴장완화 정책과 이산 가족들의 감동적인 만남 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큰 진전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으며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맞이하는 이 겨울은 춥기만 합니다. 구조조정으로 말미암아 거리를 배회하는 실업자의 수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갈곳 없는 많은 노숙자들은 낮이면 공원의 벤치에서 시름을 달래고 밤이면 보호시설이나 지하도에서 차가운 겨울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4.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이처럼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정치인이나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민생문제보다는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국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각종 부정과 부패 사건들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에게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총체적인 위기 속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군중은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요한은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하고 대답하였다. 세리들도 와서 세례를 받고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요한은 '정한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내지 말라'하였다. 군인들도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요한은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하고 일러 주었다"(루가 3,10-14).    이제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사이에서 우리가 살 길은 야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 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신명 30,20 참조). 

 

무엇보다도 정부는 출범 초기에 간직했던 정신을 되찾아 실천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실추된 신뢰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큰 정치를 펼쳐 보여야 할 것입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 역시 윤리적·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만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도 오늘의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잘못된 삶을 회개하여 새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히 저지르는 부정과 부패, 사치와 과소비, 투기와 향락 같은 죄악과 죽음의 문화를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고통을 나눔으로써 함께 사는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훼손하는 구조적인 악과 제도에 대해서도 선의의 사람들과 연대하여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종교인이 본연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살고 있는지 회개하면서 나눔과 섬김을 통해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마태 5,13-16 참조). 

 

 

5.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

 

오늘 우리가 기리는 성탄은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축일일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깊이 느끼고 그분을 더욱 닮고자 노력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본당차원에서 교우들은 지역의 결손가정 아이들, 독거 노인들, 병든 이들과 노숙자들을 돌보면서 성탄을 뜻깊게 보내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이런 삶을 살지 못한다면 2000년 전 아기 예수님께 머무를 방조차 내어주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수행하셨던 인류 구원 사업을 우리 자신이 실천하여 이 사회를 더욱 완성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성탄을 뜻깊게 보내는 길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우리 민족과 한반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같은 민족이면서도 반세기 동안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의 축복과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하나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간구합니다.

 

구세주 강생 2000년 12월 25일

대희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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