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3년 제8회 농민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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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100

2003년 제8회 농민주일 담화문


쌀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7월 셋째 주일은 한국천주교회가 제정한 농민주일입니다. 농민주일은 농촌에서 생명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을 기억하고 그 수고에 마음을 모아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또한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움에 처한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으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1994년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농촌을 살리기 위해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이 운동을 범 교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1995년 가을 주교회의에서는 농민 형제들이 가장 힘든 시기인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교구별로 이 운동을 추진할 교구 본부를 설립하고 농촌에서는 가톨릭 농민회를 중심으로 마을이나 공소에서 생산 공동체를 만들어 생명 농업을 실천하고, 도시에서는 생명 농업을 통하여 생산된 먹을거리를 나누며 도-농이 하나되는 공동체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촌은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1,312개 전 품목의 농산물이 수입 개방되어 농가 소득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빚만 늘어 가고 있습니다. 농촌 공동체는 파괴되어 가고 농촌을 떠나는 농민은 줄을 이어 이제 전 인구의 7.5%인 359만 명만이 남아서 농촌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말 타결 목표로 현재 진행 중인 세계무역기구 농산물 협상은 우리 농업-농촌을 송두리째 삼킬 기세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도하 개발 의제(WTO/DDA)라 불리는 이 협상은 대폭적인 관세 및 국내 보조 감축을 통해 완전한 농산물 시장 개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만약 수출국의 주장대로 이번 협상이 타결된다면 우리의 농업-농촌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될 전망입니다. 이에 앞서 농업 강국인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면 이는 우리 농업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10년 간 관세화를 유예받았던 쌀마저도 더 큰 폭의 개방 여부를 놓고 내년부터 재협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농업-농촌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심각한 농업 위기가 비단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문제이자 국가의 문제라는 데 있습니다. 농산물 수입 개방의 확대는 기본적으로 식량 자급율 하락으로 인한 식량 안보의 위협과 함께 장기간 저장-운송되는 수입 농산물의 특성상 국민 건강을 크게 위협할 것입니다. 그리고 금수강산이라 칭하던 우리의 환경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파괴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 창조 질서를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농업은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식량 생산 기능 이외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많은 공익적, 다원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별히 홍수 조절과 대기 정화, 수자원 함양 등 환경적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진 각국이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농업의 절대적 가치 때문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쌀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쌀은 지난 5천년 동안 우리 겨레를 먹여 살려온 생명이자 문화며 민족의 혼입니다. 쌀은 우리 나라 전체 농가의 74.9%, 농업 소득의 54%에 달하는 농가 경제의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농업은 인간과 자연이 협력하여 하느님 창조 사업에 가장 친숙하게 동참하는 생명 산업이자 기초 산업입니다. 그리고 농촌은 모든 생명이 창조 질서에 따라 공존-공생하는 생명의 터전이며 우리 모두의 고향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전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쌀을 지키고 농촌을 살리는 일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생명-환경-농업 문제를 극복하는 일이며 하느님 창조 질서를 회복해 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기가 막혀 땅이 꺼지게 한숨만 쉬고”(예레 14,4) 있는데 우리는 “애써 농사지은 것을 약탈해 가도 보고만 있어야 하겠습니까”(이사 1,7).

 

생명이신 하느님은 농부이십니다(요한 15,1). 농민이야말로 자연을 돌보고 생명을 섬기고 가꿈으로써 하느님 창조 사업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생명의 일꾼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우리의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놓으신 것처럼 농민들 또한 온 몸으로 우리의 양식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농민들의 노고와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생각하면서 하느님 창조 질서를 보전하고 위기에 처한 생명-환경-농업을 살리고자 하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다함께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2003년 제8회 농민주일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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