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3년 성서주간 주교회의 담화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103

2003년 성서주간 담화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 14,6)


- 다원주의(多元主義) 안에서 복음의 위상(位相) -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느덧 무르익어 가는 결실의 계절 가을의 길목에서 성서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금년 성서주간의 표어를 주님의 위대하신 선포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 14,6)로 정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이 21세기 다원주의의 흐름 속에서 성서사도직 봉사자가 구심점으로 삼고 갖추어야 할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의 비전과 신적(神的) 힘의 원천이시며 말씀 자체이신 주님께로 다시금 방향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년 레바논에서 열린 가톨릭성서연합 제6차 총회 결의문에서는 향후 6년 동안 여러 차원에서 성서사도직이 수행해야 할 우선적 과제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차대한 과제는 문화·종교적으로 다원적인 세계에 직면해서 성서사도직의 과제와 역할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연구하는 일이라고 천명되었습니다. 새롭고도 불확실한 다원주의의 흐름 속에서 첨예화되고 있는 상대주의와 가치관의 혼란은 새 천년기의 말씀 봉사자들이 혼신을 다해 극복해야 할 위협이 무엇인지를 되짚어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도 "복음화 활동에서 '말씀의 봉사자'가 되고자 우리 자신을 풍부한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야말로 새 천년기의 여명을 맞는 교회가 무엇보다 우선하여야 할 일"(「새천년기」40항)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당면한 이러한 위기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다음 세 가지 현상에서 관측해 보고 21세기를 사는 말씀의 봉사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자연종교의 확산입니다. 지금까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의 훼손이 가져다 준 생태 위기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제 자연은 더 이상 정복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풍조가 주변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신성시하는 세계관의 영향은 계시종교를 배제하고 자연종교와 유사한 성향의 종교를 더 선호하게 합니다. 동양종교와 같은 자연종교가 강세를 보이고 계시종교인 그리스도교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둘째, 신영성 운동의 범람입니다. 뉴에이지와 같은 신영성 운동의 이름으로 반(反)그리스도교적인 종교 현상과 운동들이 가톨릭 교회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신영성 운동은 개인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이나 평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동원될 수 있다는 새로운 종교 운동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종교 선택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물든 신자들은 초월명상, 선, 기공, 요가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적인 종교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부정하는 감각적이고 열광적인 신비 체험에만 몰입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인격적인 하느님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말씀을 통해 인간과 대화하시는 하느님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일찍이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협하는 이러한 거짓 영성 운동을 경계한 적이 있습니다. "훗날에 사람들이 거짓된 영들의 말을 듣고 악마의 교설에 미혹되어 믿음을 버릴 때가 올 것이라고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1디모 4,1).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입니다. 인간의 자기 본능과 감각과 느낌을 충족시키면 그것이 바로 진리이며 선이며 아름다움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권위를 흔들고 있습니다. 감성에 충실한 것은 모두 선하다는 상대주의적 가치 기준에 기초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적인 절대적 가치 기준이 무너지고 상대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현상이 혼합되어 효력을 발휘하면서 신자들의 신앙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융합과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뒤섞인 이러한 혼합주의의 영향은 결국 경계와 영역과 정체성을 파괴하여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의 경계선까지 허물고 있습니다. 다원주의에 입각한 이러한 움직임들은 신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켜 신앙인들에게조차 교회는 재미없고(교회전례), 고리타분하고(교리교육), 부담스러운(교회윤리)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이러한 다원주의의 사조와 풍조에 직면해서 말씀의 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우리의 삶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을 일치시키는 완전한 중개자로서 우리의 길이시며, 계시자로서 우리의 진리이시며, 구세주로서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 삶의 최고 가치인 길, 진리, 생명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전한다면 그만큼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히브 4,12)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연 영성, 평화, 자기 계발 등도 이 말씀 속에 이미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의 봉사자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먼저 다원주의의 긍정적인 고유한 가치들은 올바로 수용하면서도 말씀이 정화되어 뿌리내리는 길을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항상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2003년 11월 23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권혁주 주교



39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