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4년 제90차 세계 이민의 날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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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10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2004년 제90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1. 금년도의 이주민과 난민의 날 주제는 '평화의 관점에서 본 이주'로 정했습니다. 이 주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쟁, 폭력, 테러리즘, 압제, 차별, 불의에 시달리다가 이주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입니다. 홍보매체들은 고통과 폭력과 무력 분쟁의 모습을 그대로 전달해줍니다. 여러 나라와 대륙이 이러한 비극에 시달리고 있고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그런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이 비극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고향을 떠나 알몸으로 타향으로 이주해온 사람들과 절망을 뚫고 모국을 도망친 난민들이 개인과 가정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조차 마련하지 못해 어려운 지경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점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 지구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런 긴장된 상황이 전개되는데 우리가 어떻게 평화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까?

 

2. 인류의 대부분이 평화를 갈망하고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뜨거운 열망이 있기에 우리는 모든 인간의 보다 나은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한 모든 방도를 찾아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의 죄악과 그 뿌리에서부터 싸워나갈 필요가 있음을 끊임없이 확신해야 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 가정에서 시작하여 학교, 여러 단체나 조직, 국가적 차원뿐 아니라 국제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어우러져서 힘을 모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장기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와 화해의 구체적인 행동과 노력이 절실합니다. 우리 사이의 차별과 분열은 이를 해결하려는 분명한 전망이 없이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인권의 존중과 정의의 실현이 없이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힘차게 증언해야 합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가 '정의는 평화를 가져온다.'(이사야 32.17)라고 말했듯이 정의와 평화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3. 이주민과 난민에 관한 평화의 구체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의 이주하지 않을 권리, 즉 모국에서 인간의 품위를 지니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지방과 국가의 행정, 동등한 무역,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을 통하여 모든 국가는 주민들의 거주 이전과 표현의 자유와 함께 식량, 건강, 노동, 주거, 교육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가야 합니다. 이런 필요가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타국으로 이주를 강요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사람은 이주할 권리를 갖습니다. 복자 요한23세 교황께서는 회칙 '어머니와 교사'에서 이 권리에 입각하여 세상의 재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언급하십니다(30항 33항). 물론 각 국 정부는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필요성을 고려하고 이주민들의 인간적인 품위와 가정의 필요를 최대한 존중하며 이민을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이주민, 난민, 정치적인 망명자들을 위한 국제적인 협약이 체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협약들은 앞으로 더욱 더 보완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우리 중 아무도 이주민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들은 종종 아주 극적인 상황과 사건 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매스컴에서는 우리 심금을 울리고 때로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이주민의 모습, 어린이, 젊은이, 성인, 노인의 깡마른 얼굴에 슬픔과 고독에 가득 찬 눈망울을 보여줍니다. 이들을 받아들이는 수용소에서는 때로는 심한 제재가 가해집니다. 그러나 지구촌 곳곳에서 우려스러운 이러한 사태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공적, 사적 조직들이 기울여 온 노력은 참으로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찾아 나선 사람들을 바다에서 작은 배에 유기하는 비양심적인 인신매매범들의 행위는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치명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이들에게는 신속하고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5.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민들의 세계는 세상에 평화를 공고히 하는데 효과적인 공헌을 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민은 사람과 공동체 사이 뿐 아니라 문명과 문명 사이의 만남과 이해를 용이하게 해왔습니다. 이러한 여러 문화간의 풍부한 대화는 본인이 2001년 평화의 날 메시지를 통하여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의 화해를 건설해 나가는데 필요한 길'을 닦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주민들을 합당한 인격적인 처우로 존중할 때 실현됩니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서로의 차이를 조화로 이끌고, 때로는 가치관이 달라도 서로 무관심으로 치닫지 말고 대화를 추구하는 환대의 문화, 평화의 문화를 우선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개방의 연대는 평화의 조건과 실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모든 이주민들이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민족의 문화적 유산을 지켜주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노력할 때 이주민들은 겟토를 형성하는 위험을 모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전체의 저항을 받아 완전히 고립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한 지역을 차츰 정복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다양성'이 서로를 보완하며 만났을 때 '상호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공존'하는 삶이 풍성해지고 우리는 모든 문화에 존재하는 분열보다 일치를 추구하는 가치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그 가치는 인간이라는 동일한 '토양(Humus)'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공존하는 삶은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며 서로 관용의 길을 걸어가기 위하여 유익한 대화의 장을 펼쳐 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의 현상은 전 인류가 평화의 미래에 대한 꿈을 실현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6.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마태. 5. 9)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과 형제적인 친교와 일치를 추구하는 일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본성에 그 원천과 모형이 있습니다. 본인은 이주민, 난민, 그리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함께 만드는 모든 교회 공동체가 이 은총의 원천에서 힘을 얻어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아무도 불의에 대해 체념하거나 역경과 난관에 맞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여럿이 공유하고, 이에 대한 이주민과 난민들의 공헌을 평가할 줄 안다면 인류는 모든 이의 가정이 되고 우리들의 이 지구는 참으로 '공동의 우리 집'이 될 것입니다.

 

7.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나아 가야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당신의 부활을 통하여 선이 악을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는 것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수난에 일치하여 성부께 바치는 우리들의 보속과 노력은 하느님 구원의 섭리가 실현되는데 이바지 할 것임을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본인은 이주민들과 연관된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이 평화의 역군이 되도록 초대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외아들의 어머니 마리아의 전구를 빌며 이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할 것을 약속하며 모든 이에게 저의 축복을 보냅니다.

 

2003년 12월 15일

바티칸에서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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