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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정보사회와 지적 재산권: 디지털 시대의 공유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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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264

정보 사회와 지적 재산권 - 디지털 시대의 공유와 나눔

 

 

1. 한국의 정보 사회론

 

한국 사회에서 '정보 사회'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사용될까?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행복을 약속하는 복음이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자."는 어느 신문사의 캠페인에는 정보 사회를 바라보는 기대가 가득 담겨 있다. 이런 주장은 '기마 민족론'과 '정보 강국론'으로 이어진다. '손에 손에 휴대 전화를 들고 다니고'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를 달리는 나라,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이 세계 1위이고 반도체 생산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나라 대한민국, 인터넷을 온통 대박과 황금알의 신화로 도배하던 인터넷 신흥 부국, 이것이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던 자리였다. 그러나 휘황찬란하게 피어오르던 대박의 신화는 코스닥 시장의 붕괴로 단숨에 무너졌다. 

 

그러나 인터넷이 기대한 것과 달리 큰돈을 벌어들이지 못하자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에 관한 이야기들이 비판적인 자세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대박'과 '황금'으로 덧칠하던 언론은 180도로 논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하루아침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자살을 부추기고 음란물을 퍼뜨리며 원조 교제를 조장하는 뚜쟁이로 전락하였다. 네트는 남의 재산을 훔치고 불법으로 자료와 정보를 나누는 도둑들의 소굴로 단죄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타고 정보 산업을 육성하고 정보 자본주의의 앞날을 위해서는 저작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고 디지털 저작물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지적 재산권을 보장받으려면 지적 재산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당연히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정부의 법적인 개입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지적 재산권 보장에 대한 요구는 불법 정보를 단속하고 정화하려면 불가피하게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한통속으로 이루어진다. 정부는 공공질서 유지라는 명목을 내걸면서 네트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정보 교환에 제동을 걸고 디지털 관련 기업들은 지적 재산권을 내걸면서 향후 생존을 위해 한판 승부를 준비한다.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이 강화되고 컨텐츠 업계의 유료화 공세 또한 점차 거세진다. 인터넷 초기의 공유와 나눔의 정신이 상업화와 상품화의 대세에 밀려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힘을 주고 지식과 정보를 서로 나누고 사회를 민주화할 수 있다던 초기 인터넷의 희망찬 전망은 약육강식의 현실 앞에서 점차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어느덧 지적 재산권이란 말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고 그것이 적용되는 범위를 넓히고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새로운 부를 축적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자본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문화 상품의 생산과 유통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디지털 시대의 지적 재산권이란 이데올로기를 자리 잡게 하고 이것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미 소프트웨어의 무단 복제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공세가 이루어지고 있다. 복제물 사용자들을 남의 재산을 훔치는 도둑처럼 취급하여 윤리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비트 시대의 도둑질을 근절해야만 진정한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고,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사용자들을 교육한다.

 

이제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면 도둑놈이자 범죄자이다. 잘못하면 빵을 훔친 장 발장처럼 몇 년을 감옥에서 썩을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이것은 공유와 나눔의 관습에 기반을 둔 인터넷의 문화를 자본의 윤리와 규범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공유와 나눔의 규범과 관습이 네티즌 사이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한, 지적 재산권을 바탕으로 하는 상업화와 상품화는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 독점과 공유의 대립

 

디지털 복제는 나눔과 공유의 문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기계 복제에는 원료와 노동력이 추가로 들어간다. 그러나 디지털 복제는 추가적인 비용이 아주 적거나 거의 들지 않는다. 남과 나누어 써도 디지털이란 자산은 결코 말라 없어지지 않는다. 성서에 나오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이 디지털 시대에서 현실로 이루어진다. 디지털 빵과 물고기는 5천 명이 아니라 5억 명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이것이 디지털 복제와 정보 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선물이다.

 

정보와 지식의 '디지털화'는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온다.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하면 원본과 똑같은 정보를 손쉽게 복제할 수 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전 세계의 디지털 아카이브(archive)들은 하이퍼 링크를 통해, 디지털 생산물을 수백만 사용자에게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순식간에 분배한다. 디지털 복제와 비트 아카이브는 저자와 독자의 거리를 좁히고 사용자의 힘을 강화하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디지털 아카이브의 나눔 기능은 종전의 지적 재산권이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한다. 이런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여 기존 저작권자들의 불안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결국 디지털 시대의 지적 소유권 문제를 법률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정보와 사람들이 맺는 관계를 정보 관계라고 하자. 이때 자본은 자신의 배타적 소유권에 입각하여 정보 관계를 재조정하려고 할 것이다. 한편 노동자나 소비자는 정보 관계를 자본 관계로 환원하는 데 반대할 것이다. 특히 초기 네티즌들은 공유와 나눔에 기초한 '선물 경제'(gift economy)라는 독특한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정보의 공유와 활용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보 관계를 모색한다. 정보 관계를 자본 관계의 기본 틀에서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은 디지털 지적 재산권의 법적인 확립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미 오래 전에 소프트웨어의 저작권 문제를 둘러싸고 저작권과 반저작권의 입장이 대립한 바 있지만, 이제 인터넷의 정보 곧 컨텐츠에 사용료를 부과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에는 디지털 상품화로 한몫 챙기려는 디지털 자본주의와, 지식을 무료로 서로 나누려는 디지털 아나키스트(anarchist)들의 공동체가 함께 존재한다. 디지털 자본주의자들은 지적 재산권의 효력을 네트의 디지털에까지 확장하려고 시도하는 반면에 네트의 공동체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최근 들어 디지털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디지털 복제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 옹호자(copyright)에 대한 저작권 반대자(copyleft)들의 대항이 만만치 않다. 네트에서 디지털 지적 재산권을 마음껏 행사하려는 기업과 디지털 복제물을 공유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일대 접전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독점'과 '나눔'의 대립인 동시에 '닫힌 체제'와 '열린 체제'의 싸움이기도 하다. 만약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가 무제한으로 확장되고 디지털 지적 재산권이 법적인 지원을 얻게 되면, 통제 불능으로 여겨졌던 '자유의 왕국' 인터넷은 간섭과 규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식의 닫힌 체제를 부수고 지식과 정보의 창고를 활짝 열어 놓으려면 수많은 디지털 홍길동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시대의 홍길동은 관청의 쌀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먹이듯이 공공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 교육 기관과 정부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과 정보는 공적인 정보이다. 그것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은 무의미하다. 그런 정보는 당연히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야 하고 공개되어야 한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공유와 공개를 바탕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문화적 유산을 박물관에 보관하여 저장하고 공공에 공개한다. 문서 아카이브에서는 과거의 문서 원본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아카이브에서는 원본 필름을 보관하여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상영해 주기도 한다. 도서관은 이러한 문서와 서적을 보관하는 가장 대표적인 저장고이다. 이러한 아카이브는 문화의 저장고이다. 아카이브는 마치 저수지처럼 귀중한 물을 저장하였다가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기능이 관건이다. 

 

아카이브는 축적이자 체계이며 분류이다. 일단 자료를 추적하여 수집하는 지속적인 관심과 그것을 한곳에 집중하여 보관하는 집중성,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 가는 연속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아카이브는 그래서 공동적인 노력의 산물이며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카이브는 공적 영역의 공개성을 전재로 하여야 한다. 아카이브는 공적인 접근이 보장되어야 하며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모은 자료와 새로운 창조물들은 기존 아카이브에 접속되어야 하고 새로운 링크를 만들어야 하며 하나의 부분으로 기꺼이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열린 체제로서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미래의 인터넷은 공공 정보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정보를 상업화하고 상품화하려는 나라와 공공의 정보를 나누려는 나라 사이의 경쟁력은 엄청나게 벌어질 것이다. 별것도 아닌 오락 정보를 돈 받고 파는 나라와 자신의 문화유산을 공공 정보로 제공하는 나라 사이의 격차는 곧바로 경제 분야에서도 드러날 것이다.

 

 

3. 지적 재산권과 독점

 

자본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미래의 '디지털 신경제'는 지적 재산권의 확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정보 독점과 네트의 재상품화를 추구하는 자본의 목적은 네트에서 오가는 정보에 대한 사용료를 지구적 차원에서 법적으로 인정받는 법안을 확립하는 데 있다. 정보 자본은 '디지털 지적 재산권'의 확보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역시 '탈상품화'된 영역을 다시 상품화하고 빼앗긴 자본의 영토를 다시 탈환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는 현실 사회의 기본적인 대립점인 자본과 노동 간의 갈등이 독점적 저작권과 공유권 사이의 '지적 재산권의 문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사회에서 지적 재산권은 양날의 칼이다. 자신이 지적 재산권을 함부로 휘두르면 거꾸로 남이 던진 지적 재산권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된다. 디지털 시대의 컨텐츠는 변형되고 추가되고 서로 나눌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 상호 소통과 교류의 통로에 지적 재산권이란 장벽을 걸어 놓으면 디지털 시대의 지식과 창의력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수익 모델 창출이라는 눈앞의 유혹에 밀려 손쉽게 유료화를 감행하거나 지적 재산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다가 장터에 모인 사람들을 모두 집으로 되돌려 보낼 우려는 없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앞으로 정보 공유와 독점 간의 싸움은 지금보다 훨씬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인터넷에 개입하여 저작권자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은 실로 간단하다.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정부는 저작권 침해자들 가운데 힘없고 멍청한 사람 100명 정도를 가려내서 형무소로 보내 버리고 그들의 재산을 모두 차압한다. 그러면 99%의 사람들은 '소리바다'나 그와 유사한 프로그램 사용을 당장 그만둘 것이다. 그래도 사용하는 나머지 1%는 미디어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여 그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들 중 하나를 적발하면 기관총으로 무장한 부대를 파견하여 집과 컴퓨터와 가족을 박살낸다."

 

 

4. 정보 공유와 열린 지식

 

월드 와이드 웹을 처음 구상하고 실현한 베르너스 리는 월드 와이드 웹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의 인터넷을 가능하게 한 정보 공유 방식은 '떨어져 있는 곳에서 함께 일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탈중심화되고 분산된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지식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였다. 과거의 위계적인 분류 체계에 따라 닫힌 지식 체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열린 지식의 형태를 떠올린 것이다. '모든 것'이 다른 '어떤 것'에 잠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틀을 통해 지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다. 서로 연결된 지식의 개념은 자유로운 결합과 공유를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 상대와의 연결을 거부하거나 연결의 대가를 요구하는 지적 재산권은 하이퍼 링크의 구조(architecture)와 철학에 반대되는 것이다. 

 

지적 재산권은 각각의 지식과 정보에 자물쇠를 걸고 요금을 지불하는 사람에게만 사용권을 열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돈을 지불해야 열리는 닫힌 지식이다. 서로가 각자의 지식에 자물쇠를 채우고 사용료를 요구하는 광경은 별로 유쾌한 그림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이 꼭꼭 걸어 잠근 지식의 창고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그것을 배포하는 것이 물론 잘하는 행위는 아니다. 남의 지적 재산권을 카피레프트의 입장을 내세워 무조건 무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디지털로 전화된 숱한 정보와 지식에 대한 원저작자의 권리는 여전히 소중하다. 그들은 나름대로 존중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카피레프트의 진정한 의미는 남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저작권을 사회로 환원하여 공유하는 데 있다. 카피레프트 운동이 사회적 힘을 얻으려면 디지털 공유 운동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디지털 공유물은 마치 공원이나 도로처럼 누구나 쓸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을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거나 재단을 만들어 공적으로 활용되도록 하는 사례들을 본다. 그러한 움직임이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훨씬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디지털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포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사이버 스페이스에 내놓는 운동이 필요하다. 진정한 정보 공유는 카피라이트를 부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카피라이트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카피레프트인 것이다. 디지털 저작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남과 공유하려는 나눔과 공유의 정신을 실현할 때 정보 공유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저작물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이 디지털 공유를 위한 운동에 먼저 나서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컨텐츠는 서로 나눌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 상호 소통과 교류의 통로에 지적 재산권이란 장벽을 걸어 놓으면 디지털 시대의 지식과 창의력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장사치들만 판치던 성전처럼 폐허화될 것이다.

 

[사목, 2003년 7월호, 백욱인(서울산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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