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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문화의 복음화1: 새옷이 필요한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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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236

문화의 복음화 (1) 새 옷이 필요한 한국 교회

 

 

1. 문제 제기

 

21세기 한국 가톨릭 교회는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입어 왔던 낡은 옷은 근대 산업 사회 안에서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항상 성장하고 변하기 마련이다. 최근에 탈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정보화되고, 문화의 세계화가 보편화된 새 시대에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와 사목 형태를 필요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회가 급변하는 문화의 시대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문화의 복음화'와 '문화 사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대 산업 사회에서 교회는 신자를 대중으로 바라보면서 사목을 해 왔지만 탈포드주의1) 시대에 신자는 익명의 불특정 다수인 대중 내지 수동적 수용자이기보다는 계층, 취미, 성, 인종, 지역 등에 따라 특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목의 형태를 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목자가 본당에서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피정이나 교육을 실시할 때 신자 참여율이 과거보다 현격히 줄어들고 있음을 체험한다. 그 이유는 교육 내용이 신자들의 삶의 정황과 무관하게 주입식의 교리나 성서 주석을 위주로 하거나, 교육 방식이 일회적이며 획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의 선교 사명](1991년)은 사회의 변동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사회 복지, 환경, 성, 가정, 인권, 생명 등의 문제들이 양적 선교의 한계임을 지적하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질적인 '사회 복음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제37항). 그러나 아직도 한국 교회는 '선교', '복음화' 하면 단순히 양적인 신자수의 팽창 또는 교세 확장에 치중해 있고 개인 차원의 구원에 국한된 과거 지향적 사목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과거 1970-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에 한국 교회는 인간 존엄성과 인권의 회복을 위한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며 시대가 요청하는 교회의 역할과 사명을 수행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한국인들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다양한 복지 문화를 즐기게 되었다. 여성 복지, 청소년 복지, 노인 복지, 장애인 복지 등 모든 사회 분야의 복지화가 실현되고 문화의 차원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 교회는 시혜적 시각에서의 복지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문화적 실천에 부진함을 보여 왔다. 과거에 교회 안에 설립되어 대단한 호응을 얻었던 노인 대학이 새로운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춘 노인 복지관이 주변에 생겨나면서 점차 위축되었고 따라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현상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21세기의 한국 사회, 한국인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 환경의 대부분은 AOL-타임워너, 월트 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글로벌 미디어 거대 기업과 맥도널드, 스타벅스, 나이키 등 또 다른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문화의 세계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문화의 세계화에 편승하여 영화, 케이블 방송, 위성 방송, 인터넷, 게임 등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구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남아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키며 아시아의 새로운 문화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대 미디어 기업은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문화 생산물을 통해 우리 사회와 일상을 "세속주의적이며 동시에 물질주의적인 소비주의적 세계 문화 속으로 급속히 몰아가고 있다"([아시아 교회], 39항). 교회는 이러한 비복음적 가치관에 저항하는 대안 문화를 제시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한국인의 삶의 양식에도 변화가 있어 왔다. 생산과 노동을 가치의 근본으로 간주한 산업 사회가 지나가고 소비와 여가를 중시하는 탈산업 사회 또는 정보 사회를 살게 되면서 한국인들은 소비 문화와 여가 문화의 실천을 통한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형성 및 삶의 질과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소비는 이제 생산의 끝이나 낭비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 의미의 재생산이라는 문화적 차원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문화적 주체로서의 소비자 개념이 보편화되어 있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소비자 개념의 변화는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적 전환2)과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이라는 시대적 조류라는 배경을 깔고 있다. 더 나아가서 상호 작용하는(interactive) 뉴미디어의 출현에 힘입어 인간의 의식 구조와 인간 관계도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적 교회관보다는 친교와 봉사적 교회관을 부각시키면서 교회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 사목자의 기존 사목 패턴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교회는 생활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소비와 여가 문화에 대한 사목적 관심과 대책이 결여되어 있는 실정이다. 다만 최근 주5일 근무제의 부분적 실시에 따른 사목적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뿐이다.3)

 

교회는 시대를 초월하여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마르 16,15). 복음 말씀은 절대 불변의 진리로서 공시적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교회가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장소인 "온 세상"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는 통시적 특성을 띤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문화를 축으로 급변하는 이 세계에서 교회는 그 변화를, 시대적 징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는 교회가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노력을 게을리 하기 때문에 교회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이 시대에 적합한 내용과 방법으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란 우리 삶의 방식이며 주된 환경인 문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교회가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적 접근으로써 복음화와 사목을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문화의 핵심에는 가장 위대한 신비, 곧 하느님의 신비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자리잡고 있[기]"([백주년](1991년), 24항) 때문이다. 문화 신학자 폴 틸리히는 "종교란 문화의 실체이며, 문화란 종교의 형태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창하였다. "본질적으로 종교는 인간 정신 기능의 한 특수한 영역이 아니고 인간의 정신적 삶 전체의 '깊이의 차원'이기 때문에 종교 신앙은 문화적 삶의 현상과 활동 전 영역과 관련된다."4)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문화는 신앙이 실천되는 장소이며 영성이라는 꽃을 피우는 땅임을 깨달아야 한다.

 

필자는 신학을 바탕으로 한 매스커뮤니케이션과 대중 문화의 학도로서 지난 여러 해 동안 '문화의 복음화'와 '문화 사목'에 관한 이해와 실천을 확산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론적으로는, 이 시대에 합당한 문화 개념을 도입하면서 문화의 복음화의 의미, 필요성과 중요성을 정립하여 강의하고 집필함으로써 학문적 확산을 추구해 왔다. 실천적인 면에서는, 교구, 본당, 단체를 통한 각종 사목 분야에 문화적 접근을 시도해 왔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과거와는 달리 문화의 복음화와 문화 사목의 중요성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여러 분야에서 점차 실천되고 있다. 그러나 사목자들이 문화의 복음화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다수에 의해 합의되지 않은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문화의 복음화와 문화 사목의 이해와 실천에 어려움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앞으로 일년 동안에 걸친 연재물로써 문화의 복음화와 문화 사목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에 기초를 놓고 확산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크게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눠지고, 각 부분은 세 달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 문화의 복음화

- 문화 사목

- 문화 교육

- 뉴미디어, 교회, 그리고 영성

 

필자는 먼저 한국 교회의 현상황을 고려하면서 문화의 복음화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문화 사목의 개념과 방법을 다룰 것이다. 그리고 문화 사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문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뉴미디어와 교회 제도, 영성과의 상관 관계를 고찰하고자 한다. 교황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교회의 메시지가 새로운 문화들,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감수성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교회의 업적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인류의 미래를 깊이 염려하는 현대인의 마음에 그리스도 교회가 파고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5) 앞으로 연재되는 내용은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제시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 시도가 비록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한국 가톨릭 교회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2. 문화의 복음화 이해

 

이번 호는 우선적으로 문화의 복음화의 필요성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다루고자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먼저 문화의 세계화 속에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을 다루고, 다음으로 문화의 복음화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자 한다.

 

1) 문화의 세계화 속의 한국 사회

 

199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 사회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맞물리며 새로운 문화 담론의 증대와 문화 산업, 문화 공간의 확산으로 상당한 문화 변동을 겪고 있다.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 대립 상태에서 문화는 정치와 경제의 종속적이고 부수적인 개념이었지만, 동구권의 공산주의 몰락으로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역사의 종말'6)을 고한 현재 '문명의 충돌'7)이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면서 문화가 중심이 되어 왔다고 지식인들은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지만, 과거와 확실히 구별되는 것은 사회 체제와 일상 생활 자체가 문화적 양식으로 변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문화 권력', '문화 자본'8)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문화는 거대한 권력이나 미시 권력의 형성과 유지뿐만 아니라 자본 축적을 구축하는 핵심으로 떠올랐다. 문화 자체가 헤게모니적 권력 투쟁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지배 대 피지배 형식에서 벗어나 항상 권력의 주체가 바뀔 수 있다. 문화 투쟁은 노사간의 계급 투쟁만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기성 세대와 신세대, 남과 여 등의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국지적 갈등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몸 자체가 쾌락이며 자기 표현의 매개체로서 사회적 신분 상승과 유지를 위한 문화 자본이 됨에 따라 성형, 다이어트, 미모 산업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9) 따라서 우리 일상에서 발견되는 지배와 종속 현상, 차별화된 개성의 표현이 문화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의 일상화' 또는 '일상의 문화화'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미 우리 삶의 소비와 여가는 문화를 통해 행해지고 있다. 백화점, 원스톱 쇼핑몰, 대형 할인 마트들은 단순한 상품 매매의 기능만을 보여 주지 않고 소비자들의 시간 소비마저 다양한 문화 행사나 강좌, 또는 부가 서비스나 편의 시설로 관리해 주고 있다.10) 또한 지난 10월 말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가 1천만 명을 돌파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의 정보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되었다. 각종 인터넷 쇼핑몰과 전자 상거래, 게임과 콘텐츠, 인터넷 채팅과 동영상의 사용은 이제 생활 문화 속에 자리잡았고, 유선과 무선, 가상-현실(on-off) 매체의 융합에 따라 소비와 여가 문화가 다양화되고 있다.

 

문화의 세계화에 따라 한국 사회에 맥도널드, 피자헛, 버거킹 등의 패스트푸드점이 일찌감치 신세대의 취향을 이끌고 왔고, 케이블 방송과 위성 방송에서 CNN, 디즈니, MTV, ESPN 등의 미국 채널들을 쉽게 시청할 수 있다. 이렇게 글로벌 거대 기업이 주도하는 지구 문화의 국내 유통과 소비는 한국인의 문화 정체성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 고유 민족 문화보다는 지구 문화의 보편화로 민족 정체성의 위기와 문화 제국주의의 위험이 노출되는 반면, 한국 고유 문화의 특수화가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혼용된 대중 문화가 동남아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키기도 하여 다른 나라를 문화 제국주의화시키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문화의 세계화가 한국 사회와 종교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문화의 세계화 이해

 

세계화는 "세계의 압축"과 "전체로서의 세계라는 의식의 강화" 양쪽을 의미하는 로버트슨의 정의에 따르고자 한다.11) 전자는 압축에 따른 전지구적 상호 의존성의 증가라는 객관적 세계화를, 후자는 전지구적 의식이라는 주관적 세계화, 다시 말해 상호 의존이 심화되는 시대에 걸맞도록 의식과 제도를 바꿔 나가는 정책을 뜻한다. 이 두 가지 세계화 과정은 이중적이 아니라 동시적이다. 곧 이중적 세계화 담론으로써, '근대주의적'이고 '후기 근대주의적' 세계화를 말할 수 있다.12) 이러한 구별은 로버트슨의 '특수주의의 보편화'와 '보편주의의 특수화'와 일치한다. 근대주의적 세계화는 특수주의의 보편화로 문화의 동질화를 이루어 일명 전지구적으로 보편화된 지구 문화를 만들어낸다. 반면에 후기 근대주의적 세계화는 보편주의의 특수화로 이질적인 차이의 문화가 인정됨으로써 지역 문화, 민족 문화, 소수 문화, 하위 문화가 존중된다.

 

① 근대주의적 문화의 세계화는 주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탈규제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시공간을 넘어 자본, 상품 및 정보의 용이하고도 빠른 이동 가능성이 증가된 결과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장 원리에 따라 자본주의적 교환과 생산 관계를 전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 세계 경제 체제가 문화를 더욱 상품화시키고 의식의 종속을 강화시키는 지구 문화를 생산해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문화의 세계화는 궁극적으로 '미국화'나 '문화 제국주의'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실 지구 문화는 엄청난 자본과 조직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거대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에 의해 대부분이 좌우되는 실정이다. 이들은 여러 나라의 미디어 기업들과 합병과 인수를 거쳐 자신들의 자본 유입과 주식 소유를 기초로 신문, 잡지, 방송국, 영화, 출판 등을 망라한 하나의 거대 기업을 이루었다. 예를 들어, 1995년 디즈니는 Cities/ABC를, 1996년 타임 워너는 터너 방송을, 2000년 AOL은 타임 워너를 인수하여 글로벌 미디어 거대 기업으로 변신해 왔다. 이러한 집중화 현상으로 전세계에서 생산, 유통되는 정보의 70%이상을 대략 10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지배, 통제하는 처지이다.13) 이들의 영향력은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여론 형성이나 문화 확산적인 측면에서도 거대하다.

 

② 후기 근대주의적 세계화는 문화적 자율과 인간 행위에 집중한다. 대표적으로 제임슨은 후기 근대주의를 '후기 자본주의 또는 소비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로 간주한다.14) 하비는 후기 근대주의를 '포디즘에서 유연한 축적으로 이동을 수반한 일련의 문화 변동'으로 보고 있다.15) 보드리야르는 초현실 세계(hyperreality)에서 모사(simulacra)를 강조하며, 후기 근대적 미디어 세계에서 정보와 오락, 이미지와 정치 사이의 경계가 안에서 무너지게 된다고 보고 있다.16) 패더스톤은 문화 이질화를 강조하여 지구 문화에 대한 논의가 특별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실천으로 진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7)

 

후기 근대주의적 세계화의 논리에 따라 민족 문화는 독특하고, 시간에 구애를 받고, 표현적이라서 시간성이 없고 기억이 없는 지구 문화와 다르다. 곧 문화의 현지화(localization of culture)로써 현지화(localization)가 지역 정체성을 찾고 매일의 삶의 중심지로서 위치를 창조하는 구체성을 띤다. 따라서 (미디어) 초국적 기업들이 어느 지역에서도 세계화의 행위자(agents)가 되고, 개인 역시 단순한 소비자(con-sumer)가 아닌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생보자(pro-sumer)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역의 특수성과 자율적 행위가 인정됨으로써 문화의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가능하게 된다.

 

(2) 문화의 세계화가 주는 영향력

 

한국은 1990년대 이후부터 미디어, 문화 시장을 개방하고 점차 탈규제화하면서 문화의 세계화에 편승해 왔다. 공중파 방송 이외에 케이블 방송, 위성 방송, 그리고 인터넷 방송의 출현으로 국내 수용자들은 더욱더 많은 뉴스, 정보, 오락물 등을 개인의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을 제공받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에서나 시청할 수 있었던 CNN, 디즈니, 히스토리, HBO, ESPN, BBC 등의 채널들이 현재 안방에 들어와 있다. 또한 균일하고 보편적인 지구 문화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과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지구 문화는 문화적 종속 내지 문화 제국주의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 글로벌 미디어 기업은 몇몇 선진국들에게 독점되어 있어서 정보의 일방적 통행과 양적 불균형의 심화를 야기시키고 있다. 또한 거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은 뉴스조차 이윤 추구를 위해 상업주의적인 시각으로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는 더욱 선정적이고 폭력적이 되어 "재미있어 죽을 정도로 즐기기"18)에 빠져 '문화적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

 

코카콜라와 더불어 제국주의 문화의 대표적 상징이며 강력한 수단인 할리우드 영화는 이제 대표적인 미국 문화로 미국 정신의 강력한 전파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우월주의적인 사고와 자본주의 중심의 경쟁적 가치관, 개인 중심주의 등이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미의 기준의 변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바비 인형과 더불어 할리우드 영화는 전세계의 미의 기준을 서구적인 기준으로 바꿔 놓는 데 성공했다. 서구적 기준이란 금발 머리에 파란 눈, 오똑한 코, 긴 다리의 날씬한 몸매를 가진 여성이다. 동양적인 미의 기준과는 판이하게 다른데도 요즘 젊은 여성들은 이러한 서구적 미의 기준을 따르려고 노력하며 또 우리의 대중매체 역시 이러한 추세를 따르고 있다.

 

소비에서도 외국 브랜드인 페레가모, 구찌, 불가리, 루이뷔통 등의 명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사치와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하루라도 맥도널드에 들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맥도널드, KFC, 버거킹 등 서구의 패스트푸드점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TGIF와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새로운 외식 문화에 젖어들고 있다.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은 이제 김치보다는 햄버거나 피자에 더 익숙해져 있다.

 

지구 문화는 이미지 중심의 상업적 문화의 범람으로 스펙터클의 사회를 만들며 시각과 같은 감수성을 탈지역화와 공간에 대한 재사회화를 만들어낸다.19) 더 나아가 이러한 문화는 드라마, 뮤직 비디오, 영화, 광고의 화면을 눈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매체의 속도를 사회화시키고 있다. 빠른 속도의 화면 전환은 곧 빠른 소비의 회전과 자본 축적을 의미한다. 빠른 생산, 유통, 소비의 후기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 길들여지는 삶의 영역에 대단한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문화의 세계화는 다양하고 합리적인 문화의 수용과 소비를 가능하게 하지만, 반면에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개인주의와 세속주의를 낳는다. 이러한 결과는 궁극적으로 종교 영역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종교가 수용자인 그 구성원의 취향과 욕구에 부응해서 점차 상품화되어 간다. 종교인들은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신앙의 실천보다는 소비 문화와 함께 보낸다. 종교인의 가치관조차 복음적인 가치관보다는 대중 문화의 가치관을 좇아가게 된다. 세계화된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는 세계의 종교인은 기존의 종교적 체제, 내용, 그리고 실천을 점차 멀리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 가톨릭 교회가 앞으로 복음화와 사목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문화의 세계화 현상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이미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화의 복음화의 필요성, 개념과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2) 문화의 복음화의 필요성

 

문화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는 기존의 복음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과연 교세 확장과 양적 선교에 중점을 두어 왔던 복음화는 새로운 문화의 시대에도 계속해서 유효한가? 일상화되어 있는 문화 환경에서 신앙과 복음이 문화를 통하지 않고 드러나고 선포될 수 있는가? 교회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복음화가 요청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 교회는 주저하지 않고 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인 문화의 복음화에 대해 말해야 할 때이다. "새로운 복음화는 문화의 복음화를 위한 투철하고 진지하며 계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기]"([아메리카 교회], 70항) 때문이다.

 

문화의 복음화의 필요성은 세 가지 면에서 주장될 수 있다. 첫째는 복음과 문화의 불가분의 관계에 근거하며, 둘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문화의 시대이고, 셋째는 문화의 복음화가 현 교회 쇄신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룸으로써 문화의 복음화가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복음과 문화의 밀접한 관계성

 

복음은 문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전해질 수 없고, 문화는 복음의 빛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교회 문헌들은 복음과 문화의 밀접한 관계를 자주 다루어 왔다. [신앙과 이성](1999년)은 "복음이 처음 선포되던 때부터 교회는 문화들과 만나 그 문화들에 참여하는 과정을 알고 있었다."(70항)라고 언급한다. 이미 "사목 헌장"(1965년)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서술하기도 했다.

 

하느님께서는 강생하신 아드님 안에서 당신을 완전히 보여주실 때까지 당신 백성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면서 여러 시대에 그 고유한 문화에 따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도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선포하여 모든 백성에게 널리 전달하고 설명하며, 그 메시지를 연구하여 더 깊이 깨닫고, 전례 거행과 다양한 신자 공동체의 생활에서 이를 더 잘 표현하고자 다양한 문화의 소산을 활용하여 왔다(58항).

 

사실 기쁜 소식은 고유한 문화 속에 깊이 젖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의 문화 안에서 인간의 언어로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 복음과 문화의 불가분의 관계를 교황 바오로 6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복음과 문화의 괴리는 틀림없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현대의 복음 선교], 20항). 각 시대와 장소에 따라 문화가 다르다. 복음은 시공간의 고유한 문화 상황을 고려하여 선포되어야 한다. 따라서 문화의 복음화는 복음의 토착화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형태이다.

 

[아시아 교회](1999년)에서는 토착화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세상의 다양한 문화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교회는 자신의 진리들과 가치들을 전달하고, 문화들을 내적으로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다양한 문화들 안에 존재하는 긍정적 요소들을 취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 전파자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소개하고 그것이 민족들의 문화 유산의 구성 요소가 되도록 따라야 할 길이 있습니다. 역으로, 다양한 문화들은 복음의 빛으로 새롭고 완전하게 될 때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신앙의 참된 표현들이 될 수 있습니다(21항).

 

복음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교회가 문화를 수용해야 하는데, 그 문화에는 "참되고 좋은 요소들", "종교적이면서 인간적인 귀중한 것들", "진리와 은총의 요소들", "말씀의 씨앗들", "인류를 비추는 진리의 광채"(사목 헌장, 58항; 선교 교령, 2항;[현대의 복음 선교], 19-20항; [아시아 교회], 21항)가 존재한다. 교회는 이 같은 문화의 긍정적인 면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활용해야 하는 반면에, 죽음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부정적인 면 - 세속주의적이며 동시에 물질주의적인 소비주의적 세계 문화([아시아 교회], 39항) - 에 대해서는 복음의 가치관으로 변환되도록 비판과 대항, 그리고 교회 나름의 대안 문화의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교회는 오래 전부터 복음과 신앙의 토착화 작업을 다양하게 시도해 왔다. 한국 고유의 전통 문화, 예를 들어 불교, 유교, 도교, 무교 등에 뿌리내린 민족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학, 전례, 신앙, 교회의 토착화가 주된 과정이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삶 안에 일상화되어 있는 대중 문화에 대한 토착화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인식은 부족한 상황이다. 일명 '새 토착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의 복음화에 이제는 교회가 주목할 때라고 여겨진다.

 

(2) 문화의 시대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창세 1,1 참조)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요한 3,16 참조)은 끊임없이 변화하며(에페 1,10 참조)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5)을 예고하고 있다.20) [아시아 교회]에서도 이러한 변화상을 재확인하고 있다. "사람들과 사회들이 변화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문화도 그것들과 함께 변합니다. 그리고 한 문화가 변형될 때, 사람들과 사회들도 문화를 통하여 변화됩니다"(21항).

 

우리는 문화의 세계화가 점점 가속화하면서 급변하는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다양한 삶의 양식, 사고방식, 가치관, 욕망은 문화를 통해 표현된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즐기는 것 모두가 문화적이다. 강영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더욱 쉽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먹되 어떻게 먹고, ...... 텔레비전을 보되 어떻게 보며, 물건을 사되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도 문화의 문제이다.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 돈을 섬길 것인가 하는 것도 문화의 문제이다. 요컨대 문화는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이다.21)

 

결국 문화의 문제는 '어떻게 사는가'라면 삶의 실천에 관한 것이다. 더구나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모든 일상 생활 자체가 실천과 관계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같은 일상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문화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실천되는 구체적인 자리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도 텔레비전 시청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텔레비전 문화와 함께 보내는 일상의 삶은 신앙과 전혀 관계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텔레비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고 소비하느냐의 태도에도 신앙의 실천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이 그리스도인에게 제공하는 가치관이 복음적 가치관과 부합될 수 있지만 비복음적 가치관에 상당히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미디어 교육'에 거의 관심이 없다.

 

소비 문화와 여가 문화가 다양한 멀티미디어의 매개로 사회와 삶의 영역에 확산되어 있다. 문화를 즐기고 소비하는 가운데 정체성이 형성되고 유지되며, 자기 표현의 방식이 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 특히 지배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대중 문화는 이 시대의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심리 현상을 통하여 새로운 의사 소통 방법으로 함께 하고 있다([교회의 선교 사명], 37항 참조). 청소년들은 교회가 주는 가치관보다는 대중 문화의 가치관을 선호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대중 문화가 자신들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이며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새로운 언어인 대중 문화에 관해 언급하는 예가 드물다. 대중 문화가 저급하고 저질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일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 위에서 살고 있다. 이 땅의 현실인 문화를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리인 문화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문화에 눈을 뜬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성화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며]......결국 근본적으로 영성의 문제"이다.22)

 

(3) 교회 쇄신을 위한 필요성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16세기 종교 개혁 당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격언이다. 교회가 쇄신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문화의 복음화가 필요한 이유는 문화의 시대에 한국 가톨릭 교회가 더 이상 제도적 교회관에 안주하지 않고 친교와 봉사의 교회관으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적 교회관은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를 지배와 종속 관계로 보는 교회 권위주의를 유지했지만, 친교와 봉사의 교회관은 둘 사이의 관계를 주종 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로 보는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문화의 복음화는 궁극적으로 교회를 쇄신 길로 인도한다. 첫 번째 매스미디어 사목 훈령인 [일치와 발전](1971년)은 커뮤니케이션을 대화와 "사랑의 자기 증여"를 통하여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11항). 교회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동체로 형성되고 유지됨을 인식한다면, 문화의 복음화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하는 것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쇄신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곧 문화의 복음화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호 협력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게 하고, 완전한 소통자이신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듯이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 주는 사랑을 실천하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이 시대에도 교회가 끊임없이 쇄신을 하고자 한다면 문화의 복음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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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포드주의의 특징은 새로운 정보 기술로 이전, 낡은 제조 기반의 쇠퇴와 컴퓨터 기반 산업의 성장, 커뮤니케이션 혁명으로 상호 연결된 새로운 금융 시장의 세계화, 노동 과정과 작업 조직의 탈중심화된 형태, 유연한 제조 체제의 역할에 따른 '범위의 경제', 선택에 대한 강조와 상품 차별, 사회 계급의 범주보다는 생활 스타일, 취향, 그리고 문화에 따른 소비자를 목표로 삼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소량 다품종 생산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고, 소비자 위주의 판매를 위주로 한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은 Hall, Stuart, "Brave New World", Socialist Review, Vol. 21, No. 1, 1991년, 57 - 64면 참조.

 

2) 후기 구조주의는 주어진 구조 속에 생산자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세뇌되는 개별 인간에 반론을 제기하고, 보편적 구조의 해체와 인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후기 구조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이성과 계급을 중심으로 전체를 설명하려는 거대 담론 또는 모더니즘 담론을 부정하고 성, 인종, 세대 등 미시적이고 국지적 상황에서의 다원화된 담론에 주목한다.

 

3) 2002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는 각 교구에서 연구 시행하고 있는 주5일 근무제에 대한 사목적 대처 방안들과 다양한 사례들이 보고 됐으며 향후 추이를 지켜보면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교구별 사정에 맞게 사목적 입장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을 모았다.

 

4) 김경재, [문화신학담론], 대한기독교서회, 1997년, 27면.

 

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문화 평의회에 행한 연설(1985.1.15.).

 

6)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The National Interest, 1989년.

 

7) Samuel P. Huntington, "The Clash of Civilization", Foreign Affairs, Vol. 72, No. 3, 1993년.

 

8)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권력은 문화라는 상징을 통해 매개되고 취향이라는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말했다. 문화는 상징적 힘 또는 권력이며 이것은 문화 자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문화 자본은 한 개인으로 하여금 정보의 획득, 심미적 즐거움, 일상의 쾌락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능력과 기술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은 현택수 편역, [문화와 권력: 부르디외 사회학의 이해], 나남, 1998년 참조.

 

9) Mike Featherstone, "The Body in Consumer Culture", Theory, Culture and Society, Vol. 1, 18-33면.

 

10) 예를 들어 프랑스계 대형 할인점 업체인 한국 까르푸의 사례를 들고자 한다. 이 업체의 대표 이사인 마크 욱생(40세)은 "한국 소비자들은 유럽, 동남아 등과 비교해 요구가 매우 까다롭다."라고 평가했다. ...... 그는 매장마다 20-40대 주부 고객을 겨냥해 무료 영어 교실, 무료 베이커리 강좌 같은 이색 '학습 마케팅' 전략도 구사 중이다. 어린이 영어 강좌(울산점), 유치원생 매장 견학(중동점), 초밥 요리 강습(서울 면목점) 등 지역별 특색을 살리고 있다. ...... 그는 한 걸음 나아가 올 들어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매장의 실내 장식을 창고형에서 백화점 수준의 고급 스타일로 바꿨다."라며 "전세계 30개국 650여 개의 까르푸 점포 가운데 문화 센터를 두고 있는 곳은 한국 까르푸가 유일하다."라고 자랑했다. 이달 초 개점한 인천 계산점을 시작으로 향후 모든 점포에 복합 문화 센터를 열 예정이라는 설명이다([조선일보], 12월 10일, '한국 까르푸' 마크 욱생 사장 "문화 센터 한국에만").

 

11) Ronald Robertson, Globalization : Social Theory and Global Culture, London : Sage, 1992년, 8면.

 

12) 이러한 논지는 본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주장된 것이다. Minsoo Kim, Historical and Comparative Analyses of Globalization through Communications Technology in the West and Asia, A Thesis in Mass Communications, The Graduate School College of Communications,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1997년, 63-77면.

 

13) 10대 글로벌 미디어 기업으로 AOL-타임 워너, 비방디 유니버살, 월트 디즈니, 버텔스만, 비아컴, 뉴스코퍼레이션, 소니 엔터테인먼트, 하바스, TCI, 폴리그램이 꼽히고 있다.

 

14) F.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New Left Review, Vol. 146, 1984년.

 

15) Davi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modermity :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 Oxford : Blackwell, 1989년.

 

16) J., Baudrillard "Ecstasy of Communication", The Anti-Aesthetic : Essays on Postmodern Culture, Ed., H. Foster, Pot Townsend, Washington : Bay Press, 1983년.

 

17) Mike Featherstone, "Global Culture : An Introduction", Global Culture : Nationalism, Globalization and Modernity, Ed., Mike Featherstone, London : Sage, 1990년.

 

18) 닐 포스트만 지음, [죽도록 즐기기], 정탁영·정준영 옮김, 참미디어, 1997년.

 

19) 이하는 원용진, "문화 정체성과 매체 정경(media-scape)", 가톨릭대학교 인간학 연구소 주최 심포지엄 자료집`-`현대 사회의 인간 정체성 탐구 I : 정보 기술 문명과 인간의 정체성(2002.10.10.), 가톨릭대학교 성심 교정 참조.

 

20) Thomas Manjaly, "복음, 문화의 접점 : 성서적 접근", 권정애 옮김, [선교] 13호(2002년 가을), 교황청 전교원조회 한국지부, 91-112면.

 

21) 강영안, "급변하는 흐름 속의 문화와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책임", [현대 문화의 한계를 넘어서], 임성빈 엮음, 예영커뮤니케이션, 1997년, 21면.

 

22) 위의 책, 24면.

 

[사목, 2003년 1월호, 김민수(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서울대교구 신수동 천주교회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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