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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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문화사목을 위한 문화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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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243

문화사목을 위한 문화교육

 

 

전 지구적 문화변동의 시대에 교회가 복음선포 사명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 곧 '문화의 복음화'와 '문화사목'의 수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회가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화교육'이 따라야 한다. 다양화 복잡화된 문화를 활용하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면 문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육은 대중문화의 일상 속에서 죽음의 문화를 가려내는 문화적 분별력을 키워주고, 더 나아가서는 죽음의 문화를 생명과 사랑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창의력을 북돋아준다. 

 

과거 근대사회에서의 교육은 노동과 생산에 필요한 정보를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주입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정보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어떻게 정보 가치를 판별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력과 창의성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 

 

다양한 형태의 신앙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교회 역시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교회는 많은 경우에 과거 지향적인 신앙교육에 머물러 있어서 효율적인 교육 실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교구, 수도회, 그리고 본당에서는 예비신자 교리, 성서 강의, 신자 재교육, 주일학교 교육 등 정기적, 비정기적인 교육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의 강의 방식은 아직도 대부분 말과 인쇄물에 의존하고 있다. 교수법도 대체로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이기 때문에 수강자들을 지루하게 하거나 수동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러나 정보화와 디지털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전통적인 교수 방법에서 벗어나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명확한 구분이 사라지고 참여적이고 체험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곧 신체적 감성적 윤리적 지성적인 것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능력을 육성하는 하이퍼미디어(영상, 이미지, 소리, 문자 등의 다양한 미디어가 한 텍스트 안에서 거의 동시에 다루어짐)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교육부 시행 '제7차 교육 과정' 역시 학생 중심으로 참여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교회가 급변하는 시대와 대화를 나누며 복음화와 사목을 하려면 문화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 이 시대의 교회에 왜 문화교육이 필요한가? 

- 문화교육이란 무엇인가?

- 어떻게 문화교육을 할 것인가?

 

 

1. 문화교육의 필요성

 

1) 시대적 변화 : 근대사회에서 탈(脫)근대사회로

 

오늘날 우리가 'post'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 '탈포드주의(post-Fordism)', '탈근대사회(post-modern society)'로 표현되는 용어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이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근대적이고 포드주의적인 산업사회에서는 자본과 동력이 전략적 자원이지만 탈산업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회의 자원이다. 노동과 생산에 주력하는 산업사회는 다음과 같은 포드주의(Fordism)적 특징을 보인다. 동일한 제품을 대량생산하고, 조립라인과 함께 표준화된 단순 작업방식인 테일러주의를 채택하며,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를 지향함으로써 소비형태를 동질화시킨다.1) 

 

특히 포드주의는 중앙집권적인 관리체제와 위계질서가 있는 관료적 작업 조직 형태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근대적인 산업사회를 넘어서서 다음과 같은 탈근대적이며, 탈산업적인 탈포드주의의 성향을 띠기도 한다. 

 

첫째, 대량생산 제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반면에 고객 위주의 특수한 제품, 특히 스타일과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둘째, 단일 제품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체제에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소규모 공장체제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다품종 소량생산에 주력한다. 

 

셋째,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유연한 생산체제가 수익을 낼 수 있으므로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를 지향하는 유연한 경영 시스템이 선호된다.2) 

 

한마디로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포드주의에서 탈포드주의로의 사회변동은 '근대성(modernity)'에 대립적 특성을 지닌 '탈근대성(postmodernity)'의 출현을 가져왔다. 노동과 생산을 중시하고 소수의 생산자(자본가)만이 사회체제의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근대사회가 여전히 한국에서 존재하고 있지만, 소비와 여가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소비자의 위상이 더욱 커지게 한 탈근대사회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탈근대성에 따르면, 개인이나 집단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 생산, 소비의 주체로서 일상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정보화, 세계화 추세와 맞물려 탈근대사회는 인터넷, 통신위성 서비스 등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수용으로 사회제도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화변동'을 이 시대에 일으키고 있다.3) 이 시대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생산자로서의 수용자의 등장이다.4)

 

한국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는 탈근대적 의미에서 해체되었다. 근대사회에서는 생산자만이 생산과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소비자에게 주입한 반면, 소비자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역할에 제한되었다. 일방적인 소비만을 강요하는 한국의 소비사회가 근대적인 면을 보이지만, 취향에 따른 적극적인 선택이 가능하고 문화적 생산과정에도 부분적으로 참여하여 생산자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는 탈근대적인 면도 동시에 보인다. 

 

특히 수용자의 능동적 자세는 사회적 제도와 실천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김창남 교수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 문화적 산물들은 완성된 텍스트가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의 형태로 제공되고 사용자들의 선택과 조합에 의해 비로소 다양한 텍스트가 구축되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5)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이미 한국교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 신자들은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제도적 교회관보다 수평적이고 상호작용하는 친교와 봉사의 교회관을 바라고 있다. 또한 그들은 교회 중심주의나 성직자의 권위주의보다는 지역사회와 다양한 형태로 대화하는 열린 교회, 성직자와 평신도가 공동 사목자로서 함께하는 관계를 더욱 원하고 있다. 

 

최근에 한국 신자들은 과거의 수동적 자세로 남아있기보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여러 가지 교회 행사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성서와 신학, 영성과 신심운동에 대하여 다양한 학문적 연구와 공부를 하는 신자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수용자 또는 소비자의 적극적인 생산적 위치는 삶과 괴리되고 화석화된 신학이나 교리, 성서공부 방식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오랜 기간 신학, 성서, 교리 등에서 성직자들은 절대적인 해석적 권위를 일방적으로 행사해 왔지만, 이제는 평신도들도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해석 능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기도 한다. 또한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가능하게 된 하이퍼텍스트는 평신도의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입장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존의 교육 내용과 방식이 수정될 것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2) 교육방식의 변화

 

최근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교실 붕괴 또는 학교 붕괴이다. 지금까지의 학교제도는 근대사회의 산물이다. 근대사회에서 학교교육 제도는 국가나 사회의 지배체제의 일부이며, 그것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고 엘리트를 충원하는 통로이자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전달하고 새로운 세대를 기존질서로 편입시키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학교는 훈육과 통제를 통해 사람들을 사회의 지배체제에 배치하는 억압적인 권력이다. 그리고 이런 권력의 메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학 입시제도이다. 

 

현재의 입시제도는 학력 위주, 객관성 위주, 점수 위주 등과 같은 성적 지상주의 문제를 낳아왔다. 그 결과 암기 위주의 교육, 전인교육의 미비, 학생들 사이의 경쟁심 조장, 과열 과외 현상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 외환위기를 겪으며 조기퇴직이나 실업이 증가하면서 성적을 통해서만이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신화는 깨지고, 학생들은 대학입시 제도에 의존한 교사들의 통제와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여기에 교육 현실의 낙후와 사회 변화에 대한 미온적 대처들도 학교 붕괴를 초래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탈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과거의 수동적이고 억압된 피교육자의 위치가 상당히 달라졌다. 우선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의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관계가 수평적이고 대화적인 관계로 변하고 있다. 과거에 교육자는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피교육자에게 획일적으로 전달하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정보의 창출을 위한 협력 관계, 동반자 관계로 전환되기도 한다. '수업에 초점'을 둔 전통적인 교육자 중심의 강의가 '학습에 초점'을 두는 피교육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6)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교육자의 역할이 변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의 전달은 이제 인터넷과 같은 멀티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따라서 이제 교육자는 피교육자의 인격 향상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피교육자는 교육과정에 참여하여 다양한 교육방식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체험하기를 원한다. 각종 대안학교의 출현과 성장은 이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개신교에서는 이런 변화의 물결을 수용하여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기독교 교육을 재구성하고 있는 상황이지만,7) 한국 가톨릭 교회는 아직도 평신도를 '가르친다'는 교육자 중심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다행히 2002년 초에 발행된 서울대교구 시노드 초안에서 교회 안에서의 교육의 문제점을 매우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8) 

 

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해 볼 때, 교회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와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신앙교육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성직자는 언제나 가르치는 사람이고 평신도는 수동적으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9)이라는 의식이다. 이러한 관계를 뒷받침하는 교회관은 위계질서를 우선시하는 제도적 교회관이다. 이 시대는 수직적이고 일방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이고 쌍방적인 관계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제도적인 교회관에 비중을 두는 선교와 사목 패러다임으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활동은 공허한 울림에 그칠 수 있다. 또한 신앙의 언어가 말이나 인쇄 문화에만 의존한다면 현대의 영상 세대와는 효율적인 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신자들의 신앙이 미지근하여 신앙교육에 대한 참여가 떨어지는 면도 있겠지만, 일차적인 참여율 저조 현상의 책임은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교회에 있다. 

 

3) 다양화된 대중문화

 

대중문화를 좁은 의미에서 보면, 매스미디어가 출현하고 대량복제가 가능한 문화산업의 발달과 함께 생겨난 근대 자본주의 이후의 문화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대중문화는 생산주체와 소비주체의 분리를 특징으로 한다. 한국 대중문화는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당시 처음 도입된 근대 신문과 잡지, 라디오 방송, 대중가요 등의 대중문화는 일제 식민 지배의 충실한 도구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그에 따른 분단체제, 그리고 친미 반공 이데올로기의 확산은 한국 대중문화를 미국 문화에 예속되게 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에 이르는 역대 군부정권들은 대체로 개발을 앞세워 정권을 유지하고자 대중문화를 이데올로기적 방편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1980년대 이후부터 대중문화의 향락주의와 향락문화의 산업화가 본격화되었다. 따라서 군사정권에서의 대중문화는 민중들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대중문화는 보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고, 지배의 통치 수단이며, 대중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제국주의의 문화라는 비판이 강했다. 

 

냉전시대이며 군부독재정권 시대에 대중문화는 억압적이며, 지배세력의 수단이며, 고급문화와 대립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문화는 소수 생산자나 자본가의 이념에 따라 일방적으로 대량생산, 유통, 대량소비의 경향을 보였다. 소비자는 생산자에 의해 상품화된 문화생산물을 오직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또한 대중문화는 군사정권의 지배권력을 유지하고 대중을 통제, 조작하기 위한 수단에 머물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은 형식적 민주화와 세계적인 탈냉전의 분위기와 함께 경제적 풍요로움을 구가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출현으로 한국사회에 다양한 대중문화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문화를 선택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전환되었다. 여러 부류의 오렌지족, N세대, 1318세대 등의 신세대 문화가 출현하였고, 뉴미디어에 따른 새로운 문화 공간(노래방, 비디오방, PC방 등)들이 나타났다. 맥도날드, 버거킹 등의 미국 음식 체인점들의 국내 확산, 이동통신의 발달에 따른 휴대폰의 대중적 활용,10) 인터넷의 보편적 확산11)으로 인터넷 게임, 채팅, 전자 상거래, 가상 공동체 등의 새롭고도 다양한 문화가 나타났다. 

 

이렇게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가 출현하면서 생산과 관련된 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소비와 관련된 문화적 측면, 그리고 인간과 관련된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교회 역시 이 같은 변화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신자들도 이런 다양한 문화 공간과 방식들에 참여하는 데 시간을 소비함으로써 기도 시간이나 봉사 시간이 자연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가생활의 보편화로 주일미사에 불참하거나 쉬는 교우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별히 대중문화가 끼치는 해악, 곧 폭력성과 선정성, 그리고 비복음적 가치관 등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증폭시킨다.

 

반면에 다양한 문화를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선교와 사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멀티미디어를 사목적으로 활용하거나 각종 문화강좌와 스포츠 문화 동호회의 활동이 본당에서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교회가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비판적 자세를 가지고자 한다면 먼저 문화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교육 없이는 교회가 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으며, 현대 대중문화의 토착화나 비판적 수용을 하기 어렵다.

 

 

2. 문화교육의 이해

 

문화교육이라는 용어는 한국사회가 최근 노동집약 사회에서 문화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에 맞추어 과거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교육으로 전환되기를 주장하는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12) 여기서 말하는 문화교육은 "지식, 인성, 예체능 교육의 관계를 재조직하여 인간 능력의 역동적 복합성(문화적 리터러시)을 활성화하고, 파괴되어 가는 공동체적 사회적 연대의 기초인 사회문화적 자원(민주적, 생태적 습성)을 재조직하는 새로운 교육 이념이다."13)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서 문화교육은 교회의 신앙교육의 재구성을 위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문화사목을 위한 문화교육은 두 가지 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문화'교육'으로서, 문화적 접근을 통한 교육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문화'교육으로서, 복잡하고 다양화된 대중문화의 부정적인 면인 죽음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가려내는 분별력을 키워주고, 더 나아가서는 죽음의 문화에 저항하는 생명의 문화 창달의 능력을 배양시키는 교육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차원은 서로 배타적이거나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진다. 교육에 대한 문화적 접근 방식은 문화의 활용 능력을 길러주어 결과적으로 새로운 생명문화 창조로 인도한다. 반면에 문화에 대한 교육은 교회의 문화적 접근을 위한 신학적 반성의 토대를 제공한다. 

 

1) 문화적 접근을 통한 교육

 

예비신자 교리, 신자 재교육, 성서공부 등 신앙교육에 다양한 문화적 방식이 도입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좁은 의미의 예술에 국한시켜 기술주의와 규범주의에 의해서 경직화된, 일상적 삶의 방식과 동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드라마, 연극, 뮤직비디오 등을 어느 특정인이, 특정 장소에서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참여하여 체험할 수 있는 일상화된 문화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통해 교회-사회-자연-개인의 관계를 사유하고 표현함으로써 신앙에 대한 감수성과 상상력이 촉발될 수 있다. 

 

삶 안에서 신앙이 육화되고 열매를 맺도록 이끄는 문화사목은 신앙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함양시킴으로써 지나치게 '이성적 신앙'에 고착되어 있는 교회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개혁 의지가 담겨있다. 신앙의 이성적인 면을 중시하여 교의, 신학, 성서 등이 객관적 지식이나 논리적 지식의 차원에 그침으로써 살아있는 교리, 살아있는 신학,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교회 내에 있어왔다. 우리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 삶과 신앙의 괴리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16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후에 인쇄 미디어는 이성, 논리, 객관성, 이기주의를 촉진하여 왔다. 또한 하느님을 개인적 체험으로 축소하고 문자를 통해서 추상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으며, 하느님의 계시는 인쇄 문자에 의해 인간의 사유 공간 속으로 제한되었다.14) 토마스 데 아퀴노로 대표되는 중세 스콜라 신학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앙은 지적 수준으로 축소되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삶 안에서 저절로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신앙이 되려면 현실적인 우리의 신앙이 지나치게 이성적 신앙에 편중되어 있음을 깨닫고, 상상력으로서의 신앙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제임스 파울러는 신앙을 상상력으로 정의함으로써(Faith as Imagination) 새로운 신앙 이해와 그리스도교 교육 정립을 요청하고 있다.15) 그는 신앙이란 지식이나 개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의 조건들에 대해서 강력하게 느껴지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16)이라고 한다.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는 우리의 삶을 형성하며 움직여간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상상력의 주된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문화 '교육'은 신앙의 상상력을 신앙교육에 생생히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미디어의 사용 방식을 알려준다. 영상, 음악, 연극, 멀티미디어는 신앙교육을 더욱 살아있게 해주고, 피교육자가 여기에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학습장을 마련해 준다. 

 

2) 문화 분별 교육

 

이 교육은 '문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문화 실천을 할 것인지를 교육시키는 과정이다. 교회는 이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어야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대와 장소, 민족, 국가, 인종, 성, 계층 등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문화적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복음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한 대중문화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주는 일종의 '문화적 리터러시(Cultural Literacy)' 교육이라고 하겠다. 과거에는 '미디어 교육' 이나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부르던 교육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를 포괄하는 문화교육으로 통합되고 있다. 

 

여기서의 문화적 리터러시는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문화에 대한 교육에 한정된다. 문화의 생산과 창의력 분야는 앞에서 다룬 문화 '교육'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화적 리터러시는 문화 또는 미디어에 대한 분별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 전 지구적 문화산업의 확장으로 새로운 문화가 출현하고 삶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 뉴미디어와 함께 다양하게 확산되는 소비와 여가문화는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시키고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끈다. 

 

그러나 소비주의의 첨병인 광고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소비를 강요하여 물질 만능주의, 생명경시 현상, 생태계의 파괴와 같은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는 부정적인 소비문화를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에게 문화적 분별력이 없다면 죽음의 문화가 만연된 환경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급속도로 일상화된 인터넷 문화는 "재복음화와 새로운 복음화와 전통적인 만민 선교 활동을 포함하는 복음화, 교리교육과 그 밖의 교육, 소식과 정보, 호교, 운영과 관리, 사목 상담과 영성 지도 등 교회의 여러 활동과 계획에 적합하다"(「교회와 인터넷」, 5항). 반면에 "사생활 침해, 자료의 보안과 기밀 유지, 저작권과 지적 재산에 관한 법률, 음란물, 안티 사이트, 뉴스를 가장한 뜬소문의 유포와 인신공격 등 여러 가지 다른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다"(「인터넷 윤리」, 6항). 

 

따라서 교회는 인터넷 문화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 생명의 문화로 가꾸어갈 수 있도록 문화교육을 해야 한다. 「교회와 인터넷」은 사목자, 교육자, 교리교사, 부모, 자녀들 모두가 인터넷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11항). 인터넷 문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비문화에 대한 교육을 통해 능동적인 소비자가 되도록 신자들을 이끄는 문화사목도 필요하다. 

 

 

3. 문화교육의 방법론

 

1) 다양한 미디어 활용 능력 배양

 

교회가 오랫동안 활용해 온 미디어는 구술 미디어와 인쇄 미디어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새로운 시대는 구어, 문자 언어, 영상화된 이미지 등과 같은 다양한 미디어와 개인 컴퓨터의 상호 교류로 특징지을 수 있다. 더군다나 정보사회는 점점 다양화, 분산화, 개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에 적합한 신앙의 언어들인 미디어들을 신앙교육에 활용해야 한다.

 

일례로, 순교자 성월 미사 중에 간단한 순교자 성극을 공연하였고, 사순시기에는 십자가의 길을 연극으로 재현한 적이 있었다. 정지 영상이나 동영상을 교육이나 강론, 미사 때에 활용한 결과 매우 감동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더 나아가서, 홈 비디오용 캠코더로 직접 동영상을 제작하여 신앙교육에 사용한다면 매우 생생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고등부 주일학교 영상반에서 캠코더를 사용하여 참된 사랑을 보여주는 패러디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여 보여주었을 때 매우 좋은 반응이 나타났다.

 

2) 통합적 교육

 

과거 교육방식은 교과목 사이의 구분이 뚜렷한 반면, 현대의 문화교육은 그 구분을 무너뜨리고 서로 공조하여 통합교육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게 한다. '연극을 통해서 본 공동체 윤리' '미술을 통해서 본 환경과 생태 위기' '문학과 영화' ' 수학과 미술' '어린이 박물관' '어린이 방송국'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전례와 영상, 전례와 연극, 전례와 춤의 결합방식은 전례 참여를 더욱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교육 연극'이 새로 부상하고 있다. 연극이 교육에 도입되어, 교육내용이 역할극, 즉흥극, 창조적 드라마 등으로 구성될 때 교육의 효과가 배가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3) 현장 체험

 

최근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인 '체험 삶의 현장'은 스타 연예인들이 직접 힘든 노동 현장을 찾아가 온몸으로 체험하는 모습을 생생히 방송한다. 삶의 현장은 하나의 맥락(Context)이다.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서로 대화할 수 없다. 기존의 교육방식은 대체로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내용과 형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청소년들조차 소비의 주체가 된 이 시대에 과거의 낡고 고정된 정보로는 소비사회에서 주체로 행동할 수 없다. 따라서 문화교육은 맥락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 주일학교 교리는 대부분 교실 안에서 이루어진다. 교실 안의 수업은 많은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추상화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수업하는 텍스트의 맥락이 존재하는 삶의 현장을 찾아가는 교실 밖의 수업도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견학이다. 그러나 학습자에게 그 맥락에 대한 선(先)지식을 제공하는 사전준비가 있어야 한다. 신앙교육 학습자들이 교구청을 방문하여 주교님과 인터뷰를 할 수도 있고, 준비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할 수도 있다. 교구청 안에 있는 여러 국들을 방문하여 무슨 일을 하는지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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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김종덕 옮김, 도서출판 시유시, 1999년, 267-268면.

2) 위의 책, 278면.

3) 김영삼 정부 당시의 정보화와 세계화 과정에 따라 한국사회는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고, 통신위성 서비스를 위한 무궁화호(Korea Sat)를 띄워 위성방송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어서 김대중 정부 시대에 지식정보 강국으로서 정보 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산업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해왔고, 2002년 11월에는 초고속 인터넷망(High speed Internet Network) 가입자 수가 1천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4) 김창남, 「대중문화의 이해」, 한울 아카데미, 1998년, 140면.

5) 위의 책, 141면. 

6) 최대석 외 5인, 「교회교육에서의 매체활용」, 한국 장로교 출판사, 1999년, 28-29면.

7) 예를 들어, 한국 장로교는 주일학교용으로 미디어 교육을 위한 교재를 발간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단체(http://www.cemk.org)는 교회 교사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낮은 울타리(http://www.wooltari.com) 역시 미디어와 문화를 이용하는 교회 사역자를 양성하고 있다.

8) 서울대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 "신앙교육", 「시노드 의안집」, 190-208면.

9) 위의 책, "신앙 교육", 90항.

10) 현재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이용자 수는 2002년 8월까지 총 31,325,605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남한 전체 인구 4,800만 명 가운데 약 62%를 차지하는 비율이다(출처:정보통신부 홈페이지 www.mic.go.kr).

11) 정보통신부와 한국 인터넷 정보 센터가 2003년 6월 한 달 동안 전국 7,117가구 만 6세 이상 20,227명을 대상으로 정보화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민 64.1%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30-40대 중년층의 인터넷 이용률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만 6세 이상으로 월 평균 1번 넘게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은 지난해 말보다 234만 명(4.7% 포인트) 늘어난 2,861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64.1%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출처:정보통신부 홈페이지).

12) 현재 문화교육 운동의 주도적 단체는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약칭 문화연대)이다. 1999년에 창립된 이 단체는 '문화사회'를 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문화사회란 개인들이 다른 사람과 연대와 호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꿈과 희망과 욕망을 최대한 구현하며 공생할 수 있는 사회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한 활동 가운데 '문화교육위원회'가 2002년에 발족되어 체계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http://www.cncr.or.kr 참조).

13) 문화연대, "21세기 문화교육 선언"(2002.12.16.)

14) 강희천, 「기독교 교육사상」,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1년, 80-98면.

15) James Fowler, Stages of Faith, Harper and Row : San Francisco, 1981년, 25면.

16) 위와 같음.

 

[사목, 2003년 9월호, 김 민 수(주교회의 매스컴 위원회 총무, 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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