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3년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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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139

2003년 성탄 메시지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통해 오늘 인류의 구세주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기쁜 성탄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위로받기를 빕니다. 또한 평화의 임금이신 주님의 탄생으로 우리나라와 온 세상이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간청하며 기도드립니다.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죄를 지었고 그 결과 고통과 죽음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죄와 멸망의 상태에 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에게 참으로 더할 수 없는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죄악에 물들어 있는 세상은 여전히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성탄을 경축하는 이 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는 폭력을 일삼는 테러와 전쟁이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온갖 문제들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며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극도의 개인주의와 쾌락주의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소중한 인간 생명은 낙태와 자살, 사형 등 실용성을 내세우는 사회풍조로 유린되고 있습니다. 성장과 개발의 이름으로 생태계가 무분별하게 파괴되는 등 삶의 환경은 더욱더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대로, 오늘의 세상은 생명의 문화와 죽음의 문화가 대치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윤리와 도덕적인 권위는 점점 상실되고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 찬 그릇된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삶의 원천과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발전과 성장만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인간존엄성을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인간의 품위가 땅에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예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약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자신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가정불화와 이혼율의 증가로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정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또한 1997년 IMF 당시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실직과 경제적 파탄으로 고통받는 가정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살림이 이처럼 어려운데도 정치인들은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기보다는 부정부패와 당리당략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걱정하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처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처럼 현실이 힘들고 어두운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분은 어둡고 죄 많은 이 땅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어둠을 이기는 힘은 사랑과 생명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요한 1,4-5)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은 세상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를 창조하라는 부르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생명에로 불림받은 우리는 이 땅에 생명의 문화를 일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보아라.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을 너희 앞에 내놓는다. 너희 하느님 야훼의 명령을 순종하며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고 그가 지시하신 길을 걸으면 너희는 복되게 살며 번성할 것”(신명 30,15-16)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행복과 생명을 얻으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따라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은 ‘비천한 인간이 되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과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낡은 생활을 청산하고 나 자신부터 똑바로 살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가정생활의 소중함을 깨달아 신뢰와 사랑으로 가정을 지키고 가정 공동체의 성화를 위해 힘을 다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나눔과 사랑으로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좋은 세상을 가꾸기 위해 자연을 사랑하고 생태환경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태아의 생명 보존과 사형제도의 폐지 등을 위한 노력을 통하여 생명의 존귀함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는 불의와 증오, 폭력과 전쟁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용서와 화해, 사랑과 정의에 바탕을 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누구보다도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국민을 섬기고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써 신뢰와 사랑을 받는 참다운 정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교구 시노드에서 나온 하느님 백성의 소리에 따라 그 정신을 실천하는 데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비추어 자신을 쇄신하며 세상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성탄을 다시 한 번 기뻐하며 생명의 빛이 두루 비추어 지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갈라져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의 하나 됨과 세상 구원의 평화를 위하여 모든 성인과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드립니다.

 

2003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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