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연중 제 33 주간 월요일.....2006-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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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 1,1-4.5ㄹ;2,1-5ㄱ 루카 18,35-43 2006. 11. 20. 무악재 주제 : 삶의 변화를 위하여 찬미 예수님. 우리는 어제 평신도 사도직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몇 가지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어제 우리 신앙인의 사도직을 새기는 날, 우리가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본 것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학생 때에 사회학을 배우면서 동창들에게서 들었던 비유가 있습니다. 내 앞에 오염된 물이 하나 가득 들어있는 그릇이 있고, 그 물을 엎을 수 없는 것이라면 더디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맑은 물을 한 숟가락씩이라도 그 그릇에 넣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의 변화까지 거창하게 말할 내용은 없습니다만, 우리 사회나 공동체의 변화를 이야기하려면 준비하고 움직여야 할 것은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 삶의 규모가 커야만 세상이나 공동체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맑은 물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얼마나 넣어야 내 앞에 있는 맑지 않은 그것이 사라지겠는지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그것 밖에 없다면 실천해야 할 일도 그것 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독서의 말씀으로 요한묵시록을 읽습니다. 묵시록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한 것이라고 요한은 자기 글에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뜻을 직접 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간절할 수 있습니다만, 그 일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목표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사도요한은 에페소 교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강조해서 말합니다. 애초에 준비했던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라고 말입니다. 사랑을 저버렸다는 것은 꾸중들을 일이므로,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 그 과정을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갖는 특성의 하나는 복음에 나오는 ‘예리코의 맹인’처럼, 내 삶을 진정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분을 향하여 생각과 마음을 하소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향하여 몇 번 소리친다고 해서 현실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고 해서 내가 처한 현실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리코의 맹인은 예수님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림으로서, 그 현실의 변화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도 함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주간, 평신도 사도직 주간을 지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바르게 알 수 있었으면 합니다. 0 33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