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강론자료

강론 준비의 자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5 ㅣ No.670

강론 준비의 자세


케네스 E. 운터너(미국 미사간주 사지노 교구 주교)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이 일도록 해주리라” (에제 11,19).

 

강론을 쓰는 것은 매주 반복되는 숙제같이 생각된다. 이와 같은 부담은 우리의 마음을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강론을 향상시키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는 그러한 마음 자세를 떨쳐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과 정신이 필요하다.


마음의 변화는 단지 머리로 하는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적 문제이다. 강론을 준비할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데에는 잠깐 동안의 묵상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1. 강론을 준비할 때 우리는 성서 자체를 만드신 성령의 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장같이 들린다. 그렇지만 미국 주교회의에서 발행한 Fulfilled in Your Hearing이란 문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바와 같이 성서의 말씀이 하느님의 계시로 쓰인 것이라면, 우리의 교역을 통해 신자 공동체에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있게 되고, 현재화될 때에도 하느님의 계시가 작용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것들을 기억하며 깨닫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보았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난 뒤, 성령의 선물로써 그들이 본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요한 16,12-13).


약속된 파라클리토 성령께서는 사도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그 활동을 멈추지 않으셨다. 후세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이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보다 예수님의 활동에서 멀어져 있지 않다. 부활과 승천 뒤 성령께서 목격자들 안에 계셨던 것처럼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새로운 의미를 밝혀주시며 우리 안에 살아계신다.

 

 

2. 강론을 준비하는 것은 전례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다.


강론은 전례의 한 부분이다. 이것이 시험 문제라면 정답을 맞힐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이를 쉽게 간과한다. 강론(homily)을 전례 안에서 제공되는 대화나 연설, 훈시 정도 등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랜 세대에 걸쳐 ‘설교(sermon)’는 전례 안의 대화, 연설, 훈시를 의미했다. 이 때문에 의식의 전환이 더 어렵기도 하다.


우리는 점점 강론에서 성령의 인도 아래 전례 그 자체를 준비하고 선포한다는 것을 의식해 가고 있다. 초기교회의 주례자들은 성찬 예식을 준비하고 바치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이 거룩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강론을 준비하고 또 강론을 할 때에도 이와 같은 의식을 지녀야 한다.

 

 

3. 강론을 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서서 백성들을 향해 이야기한다.


강론을 할 때 강론자는 성찬 전례 때의 집전자와는 다른 모습을 띤다.

 

성찬 전례에서 집전자는 하느님과 마주 서서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이야기한다.
강론에서 강론자는 백성들과 마주 서서 하느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향해 이야기한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할까? 각각은 모두 그 나름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성찬 전례의 거룩함에 대해서는 의식할지라도 강론에서 강론자가 행하는 것의 거룩함에 대해서는 멀리 느낀다. (최근 강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강론의 거룩함에 대해서도 강조하려 한다.)

 

 

기도하며 즐겁게 하는 일

 

강론을 기도하며 즐겁게 준비하도록 하는 방법들을 찾을 필요가 있다. 필자가 경험한 대부분의 영성 과정은 이 두 가지 단어와 무관했다. 필자가 배운 제한적 기도 양식에는 ‘즐거움’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이 두 단어는 강론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강론을 준비할 때 성령과의 특별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며, 이미 기도하는 자세로 들어서게 된다. 또한 강론 준비는 사목의 가장 효과적이고 중심이 되는 활동이며, 즐거움과 성취감을 주는 일이다.


강론 준비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도록 하는 방법들을 찾도록 한다. 초를 켜놓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텔레비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가운데 종종 기도할 만한 거리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기도하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욱이 강론을 준비하는 시간에는 반드시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강론을 준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거룩한 일이다.


또한 강론 준비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 여유를 갖게 하는 편안한 장소와 시간을 마련하며, 참고 자료들을 가까이 둔다. 또한 성서를 펼쳐놓는다. 한 주를 시작하며 바로 강론 준비에 착수하는 것이 기도하며 즐겁게 강론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목활동을 하는 우리는 영성수련을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사목활동 밖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의 반복되는 활동 안에 이미 성령께 대한 민감함, 기도와 묵상을 위한 기회가 존재한다.


강론을 쓰는 것은 이처럼 기도하는 것이며, 거룩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 출처__ Kenneth E. Untener, Preaching Better, Paulist Press, 7-10면, 이준혜 편역.

 

[사목, 2005년 4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41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