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강론자료

사순 3 주간 목요일.....2006.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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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3-23 ㅣ No.692

 

사순 3 주간 목요일      

              예레미야 7,23-28            루가 11,14-23

      2006. 3. 23. 무악재

주제 :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

 

사람에게는 귀가 둘 있습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말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는 말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이 두 개있고, 손이 두 개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귀에 해당하는 것과 같은 멋있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자꾸 배워야지요.  배우고 익히면 즐거운 일이라고 공자는 세가지 즐거움을 말했다는 것은 알지요?


사람은 한 눈으로도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눈이 두 개가 있어야만 거리감각이 분명해집니다.  한 눈은 감고 다른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면 진짜 있는 모습과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말로 사물이 왜곡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 모습에서 왜곡시키는 것은 눈이 아니라, 그 눈을 통해서 받아들인 사물을 판단하는 머릿속에 있는 뇌의 작용입니다.  있는 것도 없다고 결론 짓기도 하고, 똑바른 것도 비뚤어졌다고 판단하며, 내가 하는 것은 사랑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같은 일에는 지나치다는 말을 씁니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는 때로는 무서운 결과를 맺기도 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서 ‘그것은 마귀의 힘을 빌어서 하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말하는 것도 머릿속에 있는 뇌의 명령입니다.  또한 독서의 말씀에 하느님의 하소연으로 등장합니다만, 애써 알려준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자기 고집대로만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것도 분명 바라보는 자세가 다른 것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이런 결과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뒤늦은 감정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말할 수야 있지만, 다른 사람의 태도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에 뭐 묻은 개는 뭐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말하는 내용일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바른 자세로 살아야한다는 말로 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법칙과 계명을 사람들에게 주어 그것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 행복의 길로 가기를 바랬지만, 사람은 그 하느님의 뜻을 다른 방향으로 읽고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맺은 결과도 달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3천년 전에 살았던 그들의 행동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누군가가 반드시 우리에게 말로 설명해야만 안다면 그것은 뒤늦은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삶은 다른 이가 알려주는 바에 따라서 변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알아듣고 행동하고 싶은 바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서글픔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는 그런대로 충실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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