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강론자료

사순 4 주일 나해.......200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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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3-25 ㅣ No.694

 

사순 4 주일 (나해)

              2역대 36,14-16.19-23      에페 2,4-10      요한 3,14-21

      2006. 3. 26. 무악재

주제 : 하느님의 사랑

찬미 예수님!

오늘 이 순간에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알아들으려고 하는 첫머리에, ‘사람은 욕심이 많은 존재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면 듣는 여러분의 마음이 상할까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말이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말인지 아니면 여러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인지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이런 격언에는 흔히  진실이 담겨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저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고, 여러분은 욕심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판단해야 하는 일에 서게 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단한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생각이나 말하는 대로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공정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담아서, ‘팔뚝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생겼을 것입니다.  팔뚝이 안으로 굽는 것은 사람의 신체구조상 어쩔 수 없는, 다른 방법이 없는 필연적인 일입니다.  팔뚝은 밖으로 굽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설명하는 말을 고집을 표현하는 말로 받아들인다면, 사람이 판단 앞에 서게 되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아무래도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일들을 돌아보는 데에도 그런 말을 쓸 수 있다면,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이실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로지 나를 행복과 편안함을 기준으로 삼아서 자기 마음과 생각대로만 사는 방법도 있고, 내 행복만큼 다른 사람의 행복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하여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두고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삶의 기준을 하느님께 두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익에 기준을 두고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자의 삶에 따라 어떤 방법이 더 낫다고 판단을 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따라 살게 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사순시기 네 번째 주일에 들은 독서의 말씀은 오래전에 일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을 요약하여 전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예언자를 보내셨고, 그들이 올바른 길로 따라 살기를 바랐지만,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따르지 않았다고 역대기 역사가는 그들의 삶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국가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도 적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그 내용은 우리가 독서의 말씀을 되새기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실수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나 삶에서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통에서 모든 사람이 다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배운다는 것은 그저 눈으로 앞에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세로 자기 삶을 돌이켜보고, 자기 삶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좋은 것으로 바꾸려고 하는 일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껍데기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고 말하면서 실제 모습에서 우리가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배움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와 나누시는 대화입니다.  이 대화의 배경에는 광야생활을 통하여 약속의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삶에 다가온 곤경에 불만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뜻을 전하던 모세를 향해서 항의를 하고 나서, 광야생활의 가장 큰 위험이었던 불뱀을 만납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자신만 중요하다고 말할 줄 알았지, 세상의 삶에는 중요한 다른 것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광야에 살던 그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곤경을 벗어나게 된 것은, 고개를 들어 구리로 만들어진 뱀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의 발 밑만 바라보던 일에서 하느님께로 눈을 들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가져야 할 삶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한지도 벌써 정해진 시간의 반을 넘겼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겠지만 우리들 각자에게 다가오는 삶의 기쁨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니코데모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서,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하는 자세가 우리 안에는 없는지’ 살펴야 할 일입니다.  어둠은 좋지 않을 일을 하기에 딱 좋은 장소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지난 삶을 돌이켜볼 줄 안다면, 지난 삶에서 부족하고 고쳐야할 것을 찾아내어 적용할 줄 안다면 그의 삶은 행복을 향하여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오는 선물’이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내가 선행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좀 더 중요한 자세는 겸손을 바탕으로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고집을 드러내는 동안 모든 일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판단하면 자신의 고집은 삶이 좋게 되는 일에 방해꾼이 될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사순 네 번째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중간을 넘어선 사순절 기간에 우리를 위해서 수난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도 함께 묵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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