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강론자료

사순 4 주간 수요일.....200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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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3-28 ㅣ No.697

 

사순 4 주간 수요일       

            이사야 49,8-15           요한 5,17-30

    2006. 3. 29. 무악재

주제 : 하느님의 소리

사람의 귀는 사람의 소리를 잘 듣게 돼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사람의 소리만 잘 듣던 귀가 갑자기 하느님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으로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해온 사람이라면 그것이 주변의 몇마디 말이나 상황 때문에 바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리를 잘 듣는 방법이나 비결이 따로 있을까요?  흔히 자기 삶을 돌이켜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의 바람을 모르기 때문에 내 삶이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을 말씀드리는 그 소리가 우리를 출발해서 하느님에게까지 다가갈 힘이 없다거나, 혹은 우리의 입속에서만 맴돌고 만다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탓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탓 일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가 사람이 지르는 목소리의 크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소리를 전하면서, 하느님께서 나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자기 젖먹이를 잊지는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하느님은 우리를 더 많이 기억하시고, 더 많이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믿기 쉽지 않은 말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인간의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동안은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향하여 갖고 계신 마음이라고 이사야 예언자가 선언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오늘 복음을 듣는다면, 하느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는 일에서 그리도 멀어졌는지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 상황을 해석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굳이 우리가 추측하자면 일을 어그러뜨릴 만큼 잔뜩 잘못되게 만들어놓은 다음, 하느님은 도대체 우리가 이런 고생을 겪을 때까지 가만히 숨도 안쉬고 있다가 이제야 우리는 당신의 백성이라고 권리를 주장하시겠느냐고 항의하는 듯한 말씀을 듣는 듯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맞추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왜곡된 길을 정신없이 달리는 선구자인 듯합니다.  선구자는 늘 외로운 사람이라는 소리를 우리는 합니다.  그가 옳은 일을 하든, 옳지 않은 일을 하든 그 판단이나 평가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소홀히하고 산다면, 그것이 사람의 자유를 높여주고 자존심을 강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해야할 일일 것입니다.  당신의 뜻에서 빗나가려고 애썼던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뜻을 새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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