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0-04-16.....부활 2 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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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 주간 금요일
사도행전 5,34-42 요한 6,1-15
2010. 4. 16. 등촌3동.
주제 : 세상에서 잘 사는 재치
똑똑하게 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그 똑똑함이라고 말하는 의미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달리 사는 것보다는 똑똑하게 사는 것이 말 표현도 그렇고 아주 좋다고 말할 것입니다. 똑똑함의 반대편에 있을 말인, 멍청함이나 우둔함보다는 똑똑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무래도 낫겠지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똑똑함이 드러나는 것은 상황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은 모두 다 똑똑함이 드러나는 행동이라고 평가해주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상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좀 더 적나라게하게 표현한다면, 회색분자요,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교활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우둔함(?) 때문에 삶의 고통과 고난을 겪었던 것이 부활사건 직후에 제자들이 드러낸 행동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 우둔함 때문에 그들은 있는 고생과 없는 고생을 모두 겪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겪는 고난을 말 그대로 고난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 희한한 모습입니다. 사도도들의 우둔함에 비교해서, 좀 더 영민(英敏)하고 재빠르게 살았던 사람들은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도 똑똑하게 살았기에, 요즘에도 ‘바리사이’라는 이름을 들먹일 때는 전혀 좋은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 바리사이들의 대부(大父)격인 가말리엘의 똑똑한 처술법을 우리는 오늘 독서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지금 괜히 덤비는 행동이 하느님을 반대하여 덤비는 행동이 될 수 있으니, 지금은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 그의 똑똑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옳은 길을 가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제압할 수 없다는 아주 현명한 판단이 그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로 똑똑한 일일까요?
힘들지 않고, 나중에 결실을 얻는 순간에 함께 편승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똑똑한 모습이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 기회가 나만을 위해서 늘 준비되겠느냐 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부활절의 기간에 느낄 의미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정말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신학계에서는 이 말씀을 성체성사에 관한 것으로 해석합니다만, 성체성사는 다른 말로 세상의 어떤 고난에서도 내 목숨을 유지하는 방편을 알려주는 것으로 그 의미가 충분한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내놓았던 아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렇게 드러나는 작은 일로서 개인도 놀라고, 다른 사람도 놀라고,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정말로 놀라운 일이 생길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체성사는 내 것을 내놓는 일로서 하느님의 영광에 내가 참여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가르침입니다. 0 15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