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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순교자의 영적 고향, 말레이반도: 한국 교회를 넘어 아시아에 새겨진 두 성인의 순교 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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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공동기획 · 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을 따라서] 아시아 순교자의 영적 고향, 말레이반도 (2 · 끝) 한국 교회를 넘어 아시아에 새겨진 두 성인(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의 순교 정신
두 성인의 발자취를 좇아 먼저 말레이시아 페낭교구를 찾았다.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찾은 페낭신학교, 그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두 성인상이다. 성인상은 자신들의 굳센 신앙을 나타내듯 따가운 햇볕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앵베르 주교는 1821년에서 1년 남짓 페낭신학교에서 강의했고, 샤스탕 신부는 1830년부터 3년여 간 이곳 페낭에서 선교했다.
먼저 샤스탕 신부의 흔적을 찾아 그의 기념 성당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성당’을 방문했다. 샤스탕 신부는 1833년까지 이 성당 주임으로 사목하며 말레이반도의 복음화에 헌신했다. 이후 그는 조선대목구 초대 교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를 따라 조선으로 향했고, 모방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한반도에 들어온 서양인 선교사가 된다.
샤스탕 신부 성상과 6개국 기도문
그의 후손들이 성당 구내 한쪽에 샤스탕 신부의 성상을 세워 놓았다. 성상 위에는 육각형 지붕이 세워져 있다. 또 지붕 벽면에는 ‘성 샤스턍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문구가 적힌 현판이 붙어 있었다. 이 기도문은 6개 나라말로 면마다 새겨져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샤스탕 성인을 현양하는 이곳 신자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기념 성당 내부는 깔끔하고 소박했다. 색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푸른 빛은 성당 분위기를 더욱 차분하게 했다. 입구에는 샤스탕 신부의 모자이크화가, 제대 옆에는 샤스탕 신부의 성인화가 설치돼 있어 그의 기념 성당임을 알리고 있었다.
페낭교구 총대리 탄(Aloysius Tan) 몬시뇰은 “성 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가 보여준 순교 정신은 한국 교회를 넘어 아시아 교회 전체의 신앙 모범”이라며 “페낭에서도 그가 보여준 순교 정신을 기억하면서 현양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앵베르 주교의 흔적은 페낭보다 싱가포르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앵베르 주교는 페낭보다는 싱가포르와 마카오, 중국 등지에서 더 오래 활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앵베르 주교는 싱가포르에서 미사를 봉헌한 첫 번째 사제이다. 그가 싱가포르에 처음 도착한 것은 1821년 겨울이었다. 당시 샴(현재의 태국)대목구장 플로랑 주교의 요청으로 페낭신학교에서 싱가포르로 온 것이다. 그는 이곳을 거쳐 중국에서 사목했고 1836년 조선대목구 2대 교구장으로 임명돼 조선으로 가게 된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 바쳐…”
싱가포르대교구 주교좌 착한 목자 대성당은 이름부터가 그를 기억하기 위한 성당이다. 성당 이름이 앵베르 주교가 순교 직전 동료들에게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첫 사제라고 할 수 있는 그를 현양하기 위한 싱가포르대교구의 정성이 느껴졌다.
싱가포르대교구 총대리 필립 행(Philip Heng) 몬시뇰은 “당시 싱가포르는 아편 중독자들이 머무는 위험하고 낙후된 곳이라 앵베르 주교마저도 섬에 들어오는 것을 주저하셨지만 이를 극복하고 이곳 신자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며 “싱가포르대교구는 그의 용기와 신앙을 기억하기 위해 성당 지하에 기념 공간을 만들었고 해마다 순교자 성월에 그를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싱가포르대교구 착한 목자 대성당은 앵베르 주교를 기억하기 위한 성당이다.
- 싱가포르대교구 착한 목자 대성당은 앵베르 주교를 기억하기 위한 성당이다. 순교 직전에 앵베르 주교가 동료들에게 한 말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가 성당 초입 바닥에 새겨져 있다.
- 샤스탕 신부 기념 성당 내에 있는 초상화와 그의 유해.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6월 23일, 싱가포르=장현민 기자] 0 1,56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