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4일 (금)
(홍)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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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병인박해 역사신문 제5호 1866년 4월: 다블뤼 주교 등 보령 갈매못에서 군문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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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9 ㅣ No.743

[병인박해 150주년 - 역사신문] 제5호 1866년 4월


다블뤼 주교와 위앵 · 오메트르 신부, 황석두 · 장주기 등 보령 갈매못에서 군문효수

 

 

- 3월 30일 충청 갈매못 형장에서 휘광이가 다블뤼 주교 목을 치고 값을 흥정하고 있다. 그림=탁희성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와 위앵ㆍ오메트르 신부, 그리고 황석두(루카)ㆍ장주기(요셉) 등 5명이 사교를 전교하고 선교사를 보호하는 등 국법을 어긴 죄목으로 3월 30일 충청도 보령 갈매못 수영 군사 훈련장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날 형 집행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수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군관의 통솔에 따라 진행됐다. 선교사들과 신자들은 고문으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포졸들에게 끌려왔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형장에 모인 군중들은 이들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 

 

하지만 위앵 신부는 자신들을 조롱하는 이들에게 “나는 젊어서 죽는 것도 칼을 받아 죽는 것도 고통스럽지 않지만, 저 불쌍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괴롭습니다”라고 애처롭게 말했다.

 

다블뤼 주교가 제일 먼저 처형됐다. 희광이는 다블뤼 주교의 목을 잘리지 않을 정도로 한 번 내리치고, “돈을 더 많이 주지 않으면 계속하지 않겠다”면서 군관에게 흥정을 시도했다. 그 사이 상당량의 피를 흘린 다블뤼 주교는 두 번 더 칼을 받고 순교했다. 

 

이어 위앵ㆍ오메트르 신부는 두 번씩 칼을 받고, 황석두ㆍ장주기는 단칼에 목이 잘렸다. 이들의 시신은 4일간 형장에 버려진 채 있다가 그 근처에 사는 이들에 의해 형장 모래사장에 묻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형 집행은 본래보다 2일 앞당겨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형장 인도를 맡은 포졸들은 “본래 이웃 읍내에 들려 천주교인들에게 모욕을 주고 늦게 형장으로 갈 계획이었다”면서 “다블뤼 주교가 대화 내용을 듣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에 함께 죽어야 하니 당장 형장으로 가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해 어쩔 수 없이 30일에 맞춰 형장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다섯 순교자가 처형된 날은 교회 전례력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주님 수난 성 금요일’이었다.

 

다블뤼 주교는 베르뇌 주교가 순교한 3월 7일 이후부터 처형된 날까지 23일간 조선대목구장을 역임했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한 다블뤼 주교는 역대 서양 선교사 중 가장 오랫동안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로 한국어에도 가장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선교회와 순교자에 대한 「조선 순교사 비망기」를 저술해 한국천주교회사와 순교사 연구에 토대를 마련했다. 

 

이에 앞서 3월 11일에는 푸르티에ㆍ프티니콜라 신부, 정의배(마르코)ㆍ우세영(알렉시오) 등 4명이 사교를 전파한 죄목으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왜 새남터 아닌 충청 수영 갈매못 형장이었나

 

대역 죄인인 서양 선교사들을 새남터 형장이 아닌 충청 수영 갈매못에서 처형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반역죄에 준하는 국법을 어긴 죄인들은 보통 한양 새남터 형장에서 처형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에 따라 지금까지 서양 선교사들은 왕권을 모욕하고 국가 기강을 흐린 죄로 모두 새남터에서 처형됐다. 하지만 다블뤼 주교 등 선교사와 신자들은 같은 죄명을 받고도 한양에서 100여 ㎞ 떨어진 충청 수영 갈매못에서 처형됐다.

 

이를 두고 정계 관계자는 “고종 임금의 대혼례가 가까워진 상황에서 수도에서 사형을 집행하면 나라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한 대신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2월 15일 전국에 금혼령이 내려진 상황이며, 고종 임금의 대혼례는 5월 5일 치러질 예정이다.

 

다른 일각에서는 고종 임금이 정치 일선에 새롭게 나서는 시기에 처형일이 맞물려 지방에서 형을 집행했다고 주장도 나오고 있다. 3월 22일 선왕인 철종의 삼년상이 끝나고, 대왕대비 조씨가 3월 29일 수렴청정을 그만두면서 고종 임금이 명목상 국정 최고결정권자가 됐다. 

 

의금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이와 비슷한 시기인 3월 23~24일 다섯 죄인에 대한 사형 판결이 났다”며 “이런 시기에 한양에서 참수형을 집행하는 것은 꺼려지는 부분이 많아 해읍정법에 따라 천주교인들이 잡힌 충청도에서 형을 집행했을 것”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해읍정법(該邑正法)이란 본래 살았던 거주 지역에서 형을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더불어 천주교인에 대해 사형 선고가 내려진 때에 고종 임금이 병을 앓고 있어, 한양에서 참수형을 집행하면 치료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해 지방에서 처형했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조선 내 서양 선교사 얼마나 남았나

 

2월 23일 조정에서 천주교인들을 잡아들이라는 ‘포고령’을 내린 후, 약 한 달 만에 조선에서 활동하던 서양 선교사 12명 중 베르뇌ㆍ다블뤼 주교를 포함한 9명이 순교했다.

 

 

현재 체포되지 않은 서양 선교사는 리델ㆍ페롱ㆍ칼레 신부 등 3명이다. 3월 중순 리델 신부가 충청도 진밧(충남 공주 사곡면 신영리)에서 목격돼 포졸들이 출동했으나 잡지 못했다고 충청 감영 관계자는 밝혔다. 칼레 신부도 경상도 문경, 충청도 연풍 등지에서 포졸에게 발각됐으나 근방에서 거주하던 신자들 도움을 받아 다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감영 포졸들은 선교사의 뒤를 쫓고 있지만, 신자들은 체포하지 않고 있다. 천주교 박해로 인해 백성들에게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줘 모내기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계속된 가뭄 조짐에 “천주교인들을 잔인하게 처형한 탓”이란 말이 백성들 사이에 돌고 있어 당분간 천주교 신자 체포 및 처형은 소강상태를 유지할 전망이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20일, 백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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