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4일 (금)
(홍)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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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병인박해 역사신문 제4호 1866년 3월: 휘광이의 칼날에 순교의 붉은 꽃이 피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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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10 ㅣ No.745

[병인박해 150주년 - 역사신문] 제4호 1866년 3월


휘광이의 칼날에 순교의 붉은 꽃이 피어나니…,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와 신부 · 남종삼 등 잇따라 처형

 

 

- 3월 7일 새남터 처형지에서 휘광이가 도리 신부의 목을 베고 형관에게 얼굴을 확인시키고 있다. 그림=탁희성.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와 브르트니에르ㆍ볼리외ㆍ도리 신부 등 4명이 7일 한양성 밖 남쪽 한강 변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같은 날 남종삼(요한)ㆍ홍봉주(토마스), 9일 전장운(요한)ㆍ최형(베드로) 또한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서양 선교사들과 천주교인들의 처형은 군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형집행자인 휘광이는 고함을 지르고 춤을 추면서 수 번에 나눠 칼로 선교사들의 목을 벴다. 이들의 잘린 머리는 1m가 넘는 기둥에 걸려 3일 동안 군문 사방에 전시됐다. 남종삼과 홍봉주의 시신 또한 서소문 밖 네거리에 3일간 본보기로 포졸들의 감시 속에 방치돼 있었다.

 

이에 앞서 6일 주로 국사범을 다루는 의금부는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서양인 선교사 4명에게 조선인들에게 사학을 가르친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고종 임금에게 윤허를 청했다. 또 남종삼과 홍봉주 등에게는 천주교를 믿어 국법을 어겼고 서양인들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고종은 의금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형집행을 명했고, 다음 날 즉시 시행된 것.

 

아울러 사법기관인 추국청은 체포ㆍ수색 과정에서 압수한 천주교 서적들을 태우고, 팔도 전역 관리들에게 ‘사학 서적을 모두 걷어들여 해당 감영에서 태워 없애라’는 행정 지시를 내렸다. 

 

추국청은 또 선교사들의 은신처 정보를 제공한 이선이에 대해 “사교를 배반할 것을 맹세했고 더는 신문할 단서가 없다”며 석방했다. 

 

서양 선교사들을 새남터에서 처형한 것에 대해 조정은 사제들을 왕권과 국가를 위협하는 반역자, 바로 ‘대역 죄인’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새남터는 어영청 군사 교육장일 뿐 아니라 일반 형법이 아닌 군율로 국사범을 처형하는 장소이다.

 

베르뇌(한국명 장경일) 주교는 1854년 제4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 1856년 조선에 입국했다. 그는 조선교구 최초의 성직자 회의를 열어 사목 서한 「장주교윤시 제우서」를 반포하는 등 체계적으로 교회를 이끌며 전국적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또 한양에 인쇄소를 설치, 교리 문답ㆍ기도서ㆍ의식서ㆍ신심 생활 입문서 등을 출간해 성직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신자들이 교리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베르뇌 주교는 조선인 사제 양성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배론 성 요셉 신학교에 이어 제2의 신학교 설립을 계획했으나 박해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현장 돋보기

 

천주교도들이 처형당한 7일 새남터 형장은 서양인 사제들을 구경하려는 군중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그중 많은 사람이 선교사들을 비웃고 그들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베르뇌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웃고 놀리지 마시오. 당신들은 오히려 울어야 할 것이오. 우리는 당신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마련해 주려고 왔는데 이제 누가 천국의 길을 당신들에게 가르쳐 주겠소. 참으로 당신들은 불쌍하오.”

 

주교와 신부들이 형장에 도착하자 휘광이 한 명이 선교사들의 양쪽 귀 아래에 화살을 꽂았다. 다른 휘광이들은 그들의 얼굴과 머리에 물과 석회를 뿌렸다. 그리고는 휘광이 여섯 명이 긴 칼을 쳐들고 쉴 새 없이 선교사들 주변을 돌다가 멋대로 치고 싶을 때 칼을 내리쳤다. 이윽고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ㆍ볼리외ㆍ도리 신부 순서로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선교사들은 ‘고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제들은 이국땅에서의 죽음을 택했다. 이들이 고문을 이겨내고 겸허히 칼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알려줄 사람이 없어 걱정된다던 ‘천국의 길’에 그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대왕대비 조씨 ‘사교를 금지하는 교서’ 반포

 

대왕대비 조씨가 10일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라는 내용의 교서를 반포했다. 조정은 한문과 한글로 작성한 교서를 전국 방방곡곡에 배포,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다음은 교서 전문이다.

 

“요즘의 서양인 사건은 참으로 일대 변괴이다. 몇만 리 밖에 있는 흉악한 종자와 추악한 무리가 팔을 내 휘두르며 출입하고 사술(邪術)을 제멋대로 행하였으니 그를 끌어들인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가 붙어살게 한 곳이 있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나라에 원망을 품고 있으며 제 뜻을 잃은 무리들과 반란 음모를 꾸미기 좋아하는 무리가 서로 굳게 엉켜서 음흉한 모의를 꾸며서 우리 백성들의 떳떳한 윤리를 파괴하고 우리나라의 풍습과 교화를 어지럽혔으니 천도(天道)로 용납할 바가 아니며 왕법으로도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 그들을 차례로 체포하여 크게 처단하였으나 소식을 몰래 통하고 무리 지어 널리 퍼뜨릴 것이 염려되고, 또한 법망을 피해 자취를 감출 우려도 없지 않다. 도회지의 큰 거리나 산간 벽촌의 마을을 막론하고 그가 비록 우리나라 옷을 입고 우리나라의 모자를 썼다고 하더라도 얼굴 모양이며 말과 행동이 이미 우리나라 사람과는 다르니 응당 알지 못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안으로는 형조·한성부·양사(兩司)·좌우변 포도청, 밖으로는 팔도와 사도(四都), 감영과 고을, 진영과 역참에서 각자 단속하고 특별히 더 체포하여 기어코 모두 소탕한 뒤에 그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관리나 백성들 가운데 만약 고발하는 사람이나 체포하여 바치는 자는 그 공로를 표창해 주고 수고를 갚아줄 것이며 또한 특별히 뜻을 보일 것이다.

 

만약 뒤얽혀 서로 호응하면서 숨겨두고 아뢰지 않다가 끝내 특별한 조사에서 발각되었을 경우에는 결단코 응당 남김없이 코를 베어 죽여야 할 것이며, 사람들도 역시 다 같이 그를 처단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이러한 내용을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서 거리와 마을에 붙여 모두 잘 알게 하라.”

 

[평화신문, 2016년 3월 6일, 백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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