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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병인박해 역사신문 제10호 1866년 12월: 병인박해 점검 (2) 충청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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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23 ㅣ No.760

[병인순교 150주년 - 역사신문] 제10호 1866년 12월 : 병인박해 점검 (2) 충청도 지역


베르뇌 주교 체포 이후 충청도 지역 전체로 박해 확산

 

 

1866년 병인박해 전후 충청도 지역 신자 현황

 

1866년 병인박해 이전까지 19세기 중반의 조선 천주교회에서 교세가 가장 성한  지역은 충청도였다. 관변 자료인 「포도청등록」과 교회 사료인 「치명일기」ㆍ「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기록된 전체 신자 수는 3475명이다. 이 중 출신지가 분명한 신자 937명 가운데 42%를 차지하는 396명이 충청도 신자다. 이는 병인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이들이 충청도에 거주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곧 충청도가 병인박해 시기 조선 천주교회의 신앙 중심지임을 웅변하고 있다.

 

1866년 12월 현재 조선 천주교회는 지난 1861년 10월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가 설정한 8개 사목구로 나뉘어 있다<표 참조>. 이 중 5개 사목구가 충청도  지역이다. 배론 성 요셉 신학교를 제외한 1861년 충청도 교회 통계를 보면 상부 내포  홍주 지역(홍주, 면천, 당진, 덕산, 아산, 온양, 신창, 예산, 청양, 대흥)에 387명의 신자가 있다. 하부 내포 서부 충청도 지역(태안, 서산, 해미, 결성, 보령, 남포,  비인, 서천, 홍산)에는 신자 170명이 거주한다. 또 충청도 동북부(단양, 목천, 연풍, 영춘, 전의, 제천, 직산, 진천, 천안, 청안, 청주, 청풍, 충주)지역에는 249명의 신자가 성사생활을 하고 있다. 아울러 공주와 인근(강경, 금산, 노성, 보은, 부여, 연기, 연산, 영동, 옥천, 은진, 임천, 정산, 진감, 한산, 황간) 지역에는 신자 218명이 터하고 있다.

 

베르뇌 주교가 작성한 이 통계를 보면 충청도 지역 신자의 50% 이상이 내포에  거주하고 있으며, 상부 내포 지방 신자 비율이 가장 높고, 충청도 교회의 중심지가  바로 홍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순교지

 

1861년부터 올해 1866년 병인년까지 충청도 지역에서 사목하는 사제는 모두 8명이다. 다블뤼 주교와 조안노ㆍ랑드르ㆍ리델ㆍ페롱ㆍ칼래ㆍ오메트르ㆍ위앵 신부가 바로 이들이다. 올해 2월 23일 베르뇌 주교의 체포로 시작된 병인박해는 3월 2일 배론 성 요셉 신학교 교수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를 체포하면서 충청도 지역으로 확산했다. 이후 다블뤼 주교, 위앵ㆍ오메트르 신부가 순교하고, 리델ㆍ칼래ㆍ페롱 신부가 중국으로 피신하면서 충청도 교회는 풍비박산이 났다. 1866년 12월 말 현재 올해 충남 지역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는 공주 109명, 홍주 43명, 해미 28명 등 총 180명으로 집계됐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갈마진두 순교자를 제외하고 병인년 충청도 지역 순교자 대다수가 신중한 판결을 위해 3번 심리하는 삼복제를 따르지 않고 곧바로 사형됐다는 점이다. 또 충청도에선 순교자들이 일반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졌고, 사형 판결을 받기 전에 장살과 아사로 옥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주와 해미에선 생매장과 같은 법이 정하지 않은 형벌이 남용됐다.

 

갈마진두(갈매못) : 수군절도사가 상주하던 공충수영(公忠水營)이 있던 곳으로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ㆍ위앵 신부, 장주기(요셉), 황석두(루카)가 1866년 3월 30일 갈마형장 모래밭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해미읍성 : 정3품 현감 겸 진영장이 주재하던 곳. 진영 동헌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서문 밖에서 교수형과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또 조산리와 읍내리의 여숫골 진둠벙에서 순교자들이 생매장됐다. 옥터 옆의 호야나무에는 천주교인을 매달아 몽둥이로 고문한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공주 감영 : 충청 관찰사가 관할하는 감영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전 베드로, 1866년 3월 손자선(토마스) 등 초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신자가 이곳에 갇혀 고문을 받고 옥사했다. 이달 곧 12월에도 김원중(스테파노), 최천여(베드로), 최종여(라자로), 고의진(요셉), 배문호(베드로) 등이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공주 황새바위 : 충청 진영 자리로 이곳 역시 공주 감영과 같이 초기 때부터 이어져 온 순교지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을 비롯한 초대 교회 회장 10여 명이 여기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목에 큰 항쇄 칼을 쓴 죄수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죽어갔기 때문에 ‘항쇄바위’라고도 불린다.

 

홍주 관아와 진영 : 충청도 교회의 신앙 중심지였던 홍주인 만큼 이곳에서 순교한 신자들도 700여 명에 이른다. 특히 홍주 목사의 동헌인 근민당과 이곳 진영장의 동헌인 경사당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했다. 내포 지역 첫 순교자인 원시장(베드로)이 1792년 옥사한 이후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라우렌시오), 황일광(시몬), 이여삼(바오로), 최대종(요셉) 등이 순교했다. 또 모방ㆍ샤스탕 신부가 이곳에 투옥됐다가 서울 좌포청으로 압송돼 순교했다. 1866년 올 한해 49명이 천주교 신자가 홍주 관아와 진영에서 순교했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24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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