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원 이야기: 카시아노, 파코미오, 바실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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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22 ㅣ No.639

[수도원 이야기 - 함께 모여 살다(Cenobiti, Anacoreti)] 카시아노, 파코미오, 바실리오

 

 

터키 중부 카파도키아 파샤바의 성 시몬 수도원 성당.

 

 

4세기, 사막으로 간 사람들이 주력했던 제1수련 과제는 성욕을 절제하는 것이었다. 사막으로 달려가 홀로 수련하는 동방 교회의 전통을 유럽 서방 교회에 전하는 주춧돌을 놓은 요한 카시아노의 저서는 이 주제를 자세히 다루었다.

 

 

수도 생활의 공동체화

 

카시아노는 「공주 수도승 규정집」(De institutis coenobiorum)에서, 봉헌 생활을 위해서는 여덟 가지 악습을 끊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첫 번째가 과식이고 두 번째가 음란함이다. 음식에 대한 절제를 맨 앞에 놓은 것은 두 번째 악습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카시아노는 「규정집」을 통해, 성욕을 끊으려면 6개월 동안 날마다 빵 두 덩어리만으로 버텨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음식과 성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오늘날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역사가 알린 루셀은 영양실조가 성인 남성의 성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미군이 전쟁 중에 한 실험을 소개한 바 있다. 32명의 군인에게 6개월 동안 음식 공급을 제한하여 하루 섭취 열량을 1700에서 1400칼로리로 줄이자 성욕도 감퇴했다. 카시아노는 이 관련성을 1700년 전에 이미 간파했던 것이다.

 

그는 왜 굳이 이런 내용을 썼을까. 자신의 뒤를 따라 사막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와 함께 사는 상황이 되자 일종의 규칙이 필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규칙이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카시아노의 삶을 추적해 보면 당시 금욕과 단식을 추구하는 수도 공동체 생활이 어떻게 정착되고 유럽으로 퍼져 나갔는지를 알 수 있다.

 

터키 카파도키아의 판잘리크 계곡에 있는 ‘판잘리크 수도원 석굴 성당.’

 

 

카시아노는 오늘날 루마니아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10대 후반에 하느님만을 따르는 고결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예수님의 땅인 베들레헴으로 갔다. 하지만 베들레헴은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좀 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그는 이집트 사막으로 가서 다시 10년 이상 고행을 했다. 이후 깨달음을 얻은 그는 399년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제자가 되어 부제품을 받는다.

 

그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막에서의 체험을 나누고, 사막이 얼마나 황홀한 곳인지 알려야 했다. 다시 짐을 싼 카시아노는 오늘날 프랑스 마르세유 지방으로 가서 두 개의 수도 공동체를 구성한다. 이 공동체들은 이후 프랑스 지역에 은거 생활을 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때 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저술을 남기는데, 앞에서 언급한 「규정집」(421년경)과 「담화집」(Collationes, 426년경)이다. 이 책들이 베네딕토 성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서방 교회에 봉헌 생활이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카시아노의 봉헌 생활 영성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악습과 투쟁하는 투쟁주의 영성과 사랑과 관상의 신비주의 영성이 그것이다. 그는 먼저 홀로 수련을 통해 과식과 음란, 탐욕, 분노, 태만, 슬픔, 허영, 교만 등 여덟 가지 악습을 치유하고, 그런 다음에는 관상 생활로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룬 영적 성취는 공동생활을 통해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공동생활이 마음을 정화하는 데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카파도키아 판잘리크 수도원 석굴 성당 내부.

 

 

공동체 생활 규약의 명문화

 

카시아노가 홀로 하는 수련 생활에 처음으로 공동 봉헌 생활의 중요성을 접목시키고자 했다면, 파코미오는 공동체 생활의 규칙을 명문화한 인물이다. 그때까지 일반적 봉헌 생활이 ‘나 홀로 명상’을 추구했다면, 파코미오의 소신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제하려면 한곳에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립된 생활이 봉헌 생활의 초보자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나아가 장애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각자의 수덕 생활이 보장되면서도 상부상조하는 친교 공동체(Koinonia)적 봉헌 생활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이집트 테베(나일강 중류에 세운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지역)의 타벤니시에 공동체를 설립한다. 캐나다의 역사가이자 작가인 엘리자베스 애보트의 「독신의 탄생」은 이 수도 공동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전한다.

 

“파코미오는 그곳에 30채의 집을 지었다. 집 한 채에는 40명의 수사가 기숙했다. 그들은 많은 규칙을 준수해야 했지만 그 핵심은 금욕이었다. 단식은 기본이었고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빵과 소금이 주식이었고, 보통은 해질녘에 식사를 했지만 그때까지 도저히 못 참는 사람은 두 끼를 먹는 것도 허용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 많이 먹는 것은 아니었다. 정해진 식사량을 두 끼로 나누어 먹을 뿐이었다. 겨울이 되어 식량이 부족할 때면 파코미오는 사흘에 한 끼로 버텼다.”

 

카파도키아 판잘리크 수도원 석굴 성당 내부 벽화.

 

 

파코미오가 추구했던 봉헌 생활의 특징은 영성적 요소가 강하면서도 전례에 충실하였다는 데 있다. 전례는 파코미오 수도자들의 영성을 담는 그릇이자 봉헌 생활에 힘을 불어넣는 활력소였다. 대세는 이제 ‘나 홀로’ 봉헌 생활이 아닌, ‘공동’ 봉헌 생활이었다. 지난날에는 몇몇 탁월한 은수자들이 사막으로 떠나 홀로 완덕을 성취했다면 이제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했다. 교회사 안에서 최초로 수도자들이 일관성 있는 지도를 받으면서 공동체적 봉헌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사회적 복음화를 위한 봉헌 생활 개척

 

이때 동방 교회 수도원 제도의 기틀을 놓는 인물이 혜성처럼 나타난다. 동방 교회 전례의 아버지, 동방 교회 4대 교부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바실리오다. 동방 수도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럽 서방 교회로 치면 베네딕토에 버금가는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날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네오카이사리아의 이리스 강변에서 11년 동안 참회 수련을 했다. 이때 집필한 「대 수덕집」(Magnum asceticon), 「바실리오 규칙서」(Regula St. Basilii), 「소 수덕집」(Parvum asceticon), 80개 항목으로 된 「도덕 규칙서」(Moralia) 등에서 공동 봉헌 생활의 필요성을 신학적으로 논증했으며 단독 묵상보다 친교가 더 깊은 차원의 영성으로 나아가게 함을 강조했다. 그는 나 홀로 고결한 수도자 육성이 아니라 복음적 형제 공동체 건설에 주목했다. 바실리오의 봉헌 생활 공동체는, 군중을 벗어나 기도하시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드러내고자 했다. 공동체들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이지도 사막에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도시 변두리에 살았고 그곳에서 애덕을 실천하였다. 또 바실리오는 병원을 세웠고 그곳에서 공동체 형제들이 봉사하였다. 그렇게 그의 공동체는 사막과 도시의 중간 지대, 사회적 복음화를 위한 봉헌 생활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 냈다.

 

그런데 이렇게 공동 봉헌 생활이 주류가 되어 가고 있을 무렵, 여전히 ‘난 혼자 살 테야!’를 외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삶의 방식을 택했다. 마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행의 극단까지 밀고 나가기로 작심한 듯 보였다.

 

* 최의영 안드레아 - 교황청립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CFIC) 동아시아 준관구장이다. 1998년 입회하고,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 수도자 신학대학원(클라렛티아눔)을 졸업했다. 로마 ‘이디 제약회사’(IDI Farmaceutici)의 이사, 알바니아 NSBC 가톨릭대학교 부설 병원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20년 3월호, 최의영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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