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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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 웹툰 아만자: 나는 나와 이별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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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4 ㅣ No.1245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 – 웹툰 ‘아만자’] 나는 나와 이별하는 중입니다

 

 

며칠 사이에 비슷한 부고가 두 번이나 전해졌다. 평소처럼 집을 나선 가족이 갑자기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손써 볼 틈도 없었다고 한다. 떠난 이도 남은 이도 아무런 준비 없이 이별을 맞이했다. 황망하게 가족을 떠나보낸 심정을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내 마음속에서도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만자야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게 가능할까? 어르신들 말씀처럼 무병장수를 빌며 좋은 수의를 미리 준비해 두고, 영정 사진도 찍어 두고, 재산이며 장례 방법이며 유언장에 또박또박 적어 두면 될까? 그럼 분명히 도움은 되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웹툰 ‘아만자’의 주인공은 스물여섯 살 가을에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간다. 위암이 이미 척추까지 전이되었다고 한다. 어제까지는 취업 걱정을 하는 복학생이었던 그가 갑자기 말기암 환자가 되었다. 그는 “암 환자를 빨리 읽으면 ‘아만자’라고 들리잖아. 나는 아만자야.”라고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투병 생활을 시작한다. 죽음의 시기를 꽤 구체적으로 예고받은 편이었는데도 그가 죽음을 준비할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암세포는 온몸으로 빠르게 번져 갔고, 그는 진통제에 취해 잠들어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몸이 잠든 동안에 그의 마음은 어떤 ‘숲’에 있었다. 왜 거기 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 채 몸이 조금씩 부서져 내렸다. 그 이유는 숲을 잠식해 오는 사막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아만지는 몸이 부서지는 걸 막으려고, 또 사막이 숲을 모두 집어삼키는 걸 막으려고 사막의 왕을 만나러 나선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 주고 있는 중이야

 

아만자와 가족들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라는 의료진의 권유를 줄곧 거부했다. 그럼 곧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라도 희망을 놓지 않고 싶어서. 이 만화를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아만자가 겪는 항암제 부작용과 이상한 숲속 모험은 출구 없는 미로 같았고, 그를 지켜보는 가족에게 자꾸만 내 마음이 대입되었다. 그리고 하비에르가 떠올랐다.

 

내 친구 하비에르도 서른을 갓 넘기고 갑자기 위암 말기 ‘아만자’가 되었다. 친구들은 번갈아 병원을 드나들었고, 그가 직접 만든 음악으로 공연도 기획했다. 항암 치료만 끝나면 바로 무대를 보여 주겠다고 다들 의욕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하비에르는 투병을 시작한 지 40여 일 만에 주님 곁으로 떠났다. 우리가 준비했던 응원 공연은 추모 공연이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40일은 너무 짧았다. 그 안에 가족을, 친구를 떠나보낼 준비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하느님을 한없이 원망했다. 당신 뜻을 열심히 좇아온 친구에게 왜 이러시냐고, 천국 말고 여기서 우리 좀 더 행복하면 안 되냐고 따져 물었다.

 

내가 어쩔 줄 모르는 혼란을 애써 누르며 병실에 마주 앉았을 때 하비에르가 말했다. 자기도 하느님께 수없이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하지만 괜찮다고. 자기 삶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고, 이 많은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음악을 기억해 줄 만큼 사랑받았으니 감사하다며 웃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몰랐지만 그 모습으로 그를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지금도 두고두고 곱씹는다.

 

나를 사랑해 준 거, 그 기억을 남겨 준 거.

그래서 아무리 무섭고 외로운 날들이 와도

견딜 수 있게 해 준 거, 고마워.

나는 지금 이별하고 있는 중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 주고 있는 중이야.

- 웹툰 ‘아만자’ 중에서

 

 

이별을 준비한다

 

‘아만자’에는 주인공이 군대 다녀온 게 억울하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닥쳐 올 운명을 미리 알았다면 아만자는 분명 군 복무를 미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마지막 날이 닥칠지 모른다. 태어난 날부터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만 명확할 뿐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은 슬프다. 내가 맞이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힘들겠지. 그때가 되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세상에 집착했던 자신을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하비에르가 떠난 뒤 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집을 나설 때마다 가족들에게 정성스럽게 인사를 한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는 웃는 얼굴로 헤어지려고 노력한다. 혹시라도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덧 10년이 넘어가면서 조금 느슨해졌던 이 습관을 ‘아만자’가 다시금 일깨웠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뿐 아니라 나 자신과 이별할 준비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신 뒤에 곧잘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그 믿음은 주님께서 반드시 치유해 주시리라는 믿음만은 아닐 것 같다. 혹시 내 병이 낫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주님의 뜻이리라는 온전한 의탁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자신과의 이별 준비는 마냥 인생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삶을 차갑게 비관하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서 이루어질 주님의 뜻을 찾아내고, 그게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연습이다. 그래서 어느 날 어떤 모습으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도 ‘내 인생은 의미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연습이다.

 

* 김연기 라파엘라 – 방송 작가, 문화 기획자.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문화의 복음화, 삶의 복음화’ 등 문화, 선교 프로그램을 구성해 왔다.

 

[경향잡지, 2020년 11월호, 김연기 라파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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