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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9: 음악은 소리로 표현한 우주 질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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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9) 음악은 소리로 표현한 우주 질서
고딕 건축의 꽃이라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흰 날개를 가진 천사가 작은 하프(harp)를 들고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하프는 아름다운 소리 때문에 천사의 악기라고도 부른다.
헨델의 하프 협주곡 B-플랫 장조는 천상의 소리로 하프 음악의 백미로 꼽힌다. 하프는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로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수메르·바빌로니아 등의 부조에도 새겨져 있으며 그 기원은 인류가 사냥을 위해 사용하던 활에 있다.
젊은 다윗은 이스라엘 왕 사울 앞에서 뛰어난 솜씨로 비파를 연주하였다.(사무엘기 상 16,23 참조)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는 이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고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도 하프를 연주하는 노년의 다윗왕을 그렸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비파를 수금으로 표현했는데 이 둘은 모두 하프 계열의 악기다.
연주회용 하프 현(줄)의 개수는 47개이며 6옥타브 반의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다. 하프 같은 현악기에서 소리가 나는 원리는 매우 과학적이면서도 수학적이다. 현을 진동시킨 후 현의 길이를 1/2로 나누는 곳의 마디를 진동시키면 음이 한 옥타브 높아진다. 마디를 1/3 위치로 옮겨 진동시키면 5도 높은음이 나고, 다시 이 마디를 현의 1/4 지점으로 옮겨 진동시키면 4도 높은음이 나서 한 옥타브가 추가된다. 이렇게 현의 길이를 2·3·4등분하여 진동시키면 등분하기 전의 소리와 잘 어울리는 소리인 화음(和音, harmony)을 만들며 정확히 등분되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된다.
이 원리는 직각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 관계를 밝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알아냈다. 진동수비 3/2과 2를 기본요소로 구성되는 음계를 피타고라스 음계라고 한다. 결국 화음의 비결은 현 길이의 조화로운 비율에 있다. 현악기에서의 소리 발생 원리는 물리학의 정상파(定常波, stationary wave) 이론에서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현의 길이를 1이라 했을 때 이를 1/2, 2/3등분 한 후 다시 길이순으로 나열하면 1, 2/3, 1/2 이 되는데 이들의 역수인 1, 3/2, 2는 이웃하는 두 항 사이의 차가 일정한 등차수열(等差數列)이 된다. 이처럼 각 항의 역수가 등차수열을 이루는 수열을 조화수열(調和數列, harmonic sequence)이라 하며 이것은 현의 길이와 음정 관계에서 유래했다.
음악은 소리로 표현한 자연과의 조화이며 우주의 질서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음악은 희로애락 같은 감정의 강약을 조절하고 자아감을 찾게 하며 내면적 질서를 회복하게 해준다.
지난 11월 16일 남양성모성지에서는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소속 아르스노바 합창단이 헨델의 ‘메시아’를 공연했다. 신이 만든 최고의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임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헨델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말년에는 뇌졸중과 실명·우울증으로 고생했지만, 고난을 이기고 그의 작품인 메시아를 계속 알렸으며 전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음악을 통해 세속적인 삶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한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그가 메시아를 통해 표현하려 했던 그리스도 구원의 메시지가 아름다운 하모니로 온 세상에 퍼지기를 기원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2월 15일, 전성호 베르나르도(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0 18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