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ㅣ영화ㅣ예술
영화칼럼: 영화 퍼펙트 데이즈 -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
---|
[영화칼럼] 영화 ‘퍼펙트 데이즈’ - 2024년 작, 감독 ‘빔 벤더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고(故) 정진석 추기경님이 은퇴하신 후 신학교에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셨을 때, 강론 중에 신학생들에게 들려주신 이야기가 가슴 깊이 남아있습니다. 추기경님이 은퇴 후 처음으로 은퇴 사제 숙소의 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시는데, 성전 벽면에 걸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하신 말씀으로, “사제여! 이 미사를 네 첫 미사처럼, 유일한 미사처럼, 최후의 미사처럼 봉헌하라.”는 내용입니다. 추기경님은 그 문구가 수십 년을 사제로 살아온 당신의 마음을 울리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사제 생활을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으로 이끌어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추기경님은 후배들이 훗날 사제로 살아갈 때 매일의 미사성제를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약동해 오는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반복되는 것 같아 보이는 우리네 일상 안에서 ‘지금의 소중함’을 발견해 낼 수 있도록 일깨우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의 평범한 일상을 따라갑니다. 골목에서 들려오는 빗자루질 소리에 잠을 깨는 것으로 정갈하게 시작되는 그의 일상은 꽤 이상적으로 보입니다. 누군가는 허드렛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공용 화장실 청소 업무를 맡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진심을 다합니다. 점심시간에는 신사에서 점심을 먹으며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을 통과해 오는 빛을 담습니다. 일이 끝나면 집 근처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돌아가는 길에 단골 선술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한 잔의 하이볼을 곁들입니다. 그리고 잠들기 전 문고판 고전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다음 날, 히라야마는 다시 시작되는 하루를 다르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맞습니다. 동료 타카시(에모토 토키오 분)가 일터에 여자 친구를 데려오거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조카 니코(나카노 아리사 분)가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상황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주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히라야마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이 또한 반복되듯 다가오는 일상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유일한 순간으로 여깁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우리 사회는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복되듯 다가오는 우리네 일상이 하루아침에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 뻔한 사태를 경험하게 되면서, 일상 안에 속한 모든 것들을 우리는 전과는 달라진 시선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누려온 가치가 순식간에 유린당하는 장면을 마주하며, 그가치를 이전보다 더욱 소중하고 각별한 마음으로 여기게 됩니다. 같은 날의 당연한 반복 같지만 매일을 다른 날로 인식하며 일상을 맞아들이는 영화 속 히라야마의 모습처럼 우리도 ‘당연함’이라는 늪에서 벗어나,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서 구축해 온 가치와 그 가치를 누리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024년 12월 22일(다해) 대림 제4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0 2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