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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영화관: 땅에 쓰는 시(다큐멘터리,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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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특집] 희망 영화관 : 땅에 쓰는 시(다큐멘터리, 2024)
오늘 복음에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가난한 사람이었던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루카복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대목은 15장 16절에 그 유명한 두 아들의 비유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모두 ‘간절히 바라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성경에서 ‘간절히’라는 단어는 우리의 온 정신과 영혼이 어느 한 방향으로 깊은 몰입을 가져올 때 발생하는 어떤 현재를 극복하려는 거룩한 전 과정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선자령 산마루에서 만난 대지가 흙 위에 쓴 시처럼 여름 야생화의 제비동자꽃 그 아름다움을 땅 위에 당신의 피조물 안에서 그분 스스로를 현현할 때 하느님께서 피조물에 당신 기운을 집중하셨듯이 말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는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도시인들을 위해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자연관을 고스란히 담은 ‘차경(借景;경치를 빌린다)’의 개념을 들여와 우리 눈 앞에서 대자연의 신비 안에 깃든 하느님 자취를 느끼게 해주는 한국식 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꾸어야 할 정원은 우리가 실기해 잃어버린 낙원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간절함을 상기하게 해주는 좋은 은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우리나라 1세대 조경사로서, 이 조경사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옛 선현의 정신을 자신의 정원 가꾸기의 철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곧, “검소하나 누추하지 아니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儉而不陋 華而不侈)” 덕 말입니다. 백제의 미라고도 알려진 바로 이 절제의 균형은 앞서 언급한 ‘간절함’으로 가능합니다. 우리 정신이, 우리 마음이, 그리고 우리 온 영혼이 한 방향으로 몰입되어 그 방향이 하느님께로 마침내 정향될 때 생기는 정제된 정신의 간절함은 우리 마음의 대지 위에 마침내 땅 위에 쓴 시처럼 꽃을 피워낼 텐데 그 마음의 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가 간절히 바랐던 ‘구원’입니다. 선자령 제비동자꽃을 보고 내려오는 순간, 파울 첼란의 시가 생각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빛이 있었다 그것은 구원. - 파울 첼란 <언제가> 중 -
[2025년 9월 28일(다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서울주보 6면, 김상용 도미니코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0 2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