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0일 (월)
(녹)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0-19 ㅣ No.2207

[영성심리 칼럼]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중년 시기를 다루는 에릭슨의 발달 모델 일곱 번째 단계(40세~65세)의 과업은 ‘생산성 대 침체감’입니다. 앞선 단계에서 두 사람 사이에 친밀감이 형성되면, 그 관계는 두 사람을 넘어 사회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에릭슨은 설명합니다. ‘생산성’은 좁게는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전수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회적 봉사도 생산성을 발달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든 생산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침체감이 형성됩니다. 미래의 자손들에게 전해주고 이바지할 만한 것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기보다 자기 욕구에 더 치중하게 되어 관대함이 없어지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강해지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자신에게 몰두하거나, 또는 공허함, 지루함, 외로움 등을 느끼면서 또다시 침체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주기만 하면, 탈진하거나 내적 공허함에 부딪히거나 상대방을 숨 막히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받기만 하면, 자기중심적이 되거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 될 위험도 있죠. 다른 사람에게 주는 ‘생산성’과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기 몰입’ 사이의 균형을 이룰 때, 타인을 돌보는 힘이 생겨납니다. 에릭슨은 이 힘을 ‘돌봄’이라고 부릅니다.

 

타인을 돌보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돌볼 때 우리 자신도 더 건강해지죠. 왜 그럴까요?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민범식, 《하느님 길만 걸으세요》, 161-165; 243-248쪽 참조)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돌볼 때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본래의 모습이 되고 더 건강하게 자기실현과 자기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개인주의나 무관심,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인간답고 고귀하게 살아가자고 격려하십니다.(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208항 참조)

 

이는 신앙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어느 사회심리학자는 ‘보살핌’이 인간이 지닌 본능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셀리 테일러, 《보살핌》, 사이언스북스 2008) 자기 본능대로 움직일 때 더 편안하고 좋은 것이 당연하죠. 그래서 이웃 사랑은 지켜야 할 계명이나 의무가 아니라, 우리가 지닌 본성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고 보살필 때 얻게 되는 느낌이 어떤지는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자신만 챙기라고 부추깁니다. 나 하나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다른 사람을 돌보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유혹하죠. 공감하는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힘든 현실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돌봄이 생산성이고 본능이고 하느님을 닮은 모습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내가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2025년 10월 19일(다해) 연중 제29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대신학교장)]



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