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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속 희망의 순례자들: 한 시인의 희망 찬가(시편 62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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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희망의 순례자들] 한 시인의 희망 찬가
살아온 날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희망을 포기할 이유가 쌓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 삶의 방향타와 같아서 희망이 없다면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표류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방향타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희망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희망은 믿음과 사랑과 함께 대신덕에 속합니다. 덕(德)이란 노력과 수양으로 쌓아 올린 도덕적 품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씨앗으로 심어진 희망의 덕은 희망을 향한 우리의 계속된 선택과 태도를 통해 키워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 시편을 통해 희망을 키워가는 법을 배워보고자 합니다. 시편 62편의 저자는 희망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구원과 희망을 동일시하며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선언합니다.(2,6절 참조) 그래서 그는 스스로 다짐합니다.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리리라.(2,6절 참조)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그의 바위, 구원, 성채이시기 때문입니다.(3,7절 참조) 하느님이 바위와 성채이시라는 고백은 그분이 유일하게 그에게 안전과 안정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을 드러냅니다.
시편 시인이 이토록 간절하게 하느님을 기다리는 이유는 그가 기우는 벽, 넘어지는 담과 같은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거짓과 감언이설로 그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구하고자 다른 힘있는 자들에게 시선을 돌리지도,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한낱 숨결일 따름, 그저 왔다가 가는 존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와 권력도 의지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 또한 있다가도 없어지는 유한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의 도움과 영광이 하느님께 있고, 그가 의지할 견고한 바위와 그가 숨을 피신처가 하느님 안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에게도 권고합니다. 늘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우리 마음을 쏟아 놓으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피신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깨우친 깨달음을 두 가지로 요약해 줍니다.(12~13절 참조) 하나는 참된 힘은 하느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힘들은 이 힘에 비하면 모두 찰나적일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가 의지하고 신뢰해야 하는 힘은 이 힘뿐입니다. 그런데 그분께는 또한 자애(헤세드)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처지를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분은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것, 하느님께 희망을 둔다는 것은 각자의 행실대로 심판하실 하느님을 염두에 두고 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록 세상은 우리의 노고와 선행을 알아보지 못하고, 때로는 비방한다 하더라도 주춤거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이런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때 우리는 이 희망으로 변모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할 인생의 방향타를 놓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2025년 10월 12일(다해)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서울주보 4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0 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