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6일 (목)
(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가톨릭 교리

가톨릭 신학: 도대체 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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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5 ㅣ No.6322

[가톨릭 신학] 도대체 사랑이란

 

 

혼인성사 주례를 부탁받아 강론을 쓰게 되면 항상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결혼하는 이들의 사랑의 깊이를 사제로서 감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숭고한 것임을 어림잡아 짐작하지만, 제자들과 신자분들을 사랑하지만, 오롯이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혼인 강론을 준비하는데, 본당 부임 시절 신앙학교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유치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자 서둘러 찾아봤지만 지갑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울음소리는 거세졌습니다. 더 예쁘고 좋은 지갑을 사주겠다며 달래 봤지만 여전히 울음은 계속 됐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그 지갑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한참이 지나 아이가 던져놓은 겉옷 주머니에서 지갑이 발견되었습니다. 색이 완전히 바랜 초라하고 낡은 지갑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지갑을 받아 들고 웃었고, 저는 그 환한 미소를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저에게 사랑이란 뜨거운 감정도, 떨어지기 싫은 절절한 마음도, 두터운 신뢰도 아닙니다. 만약 사랑을 이러한 것들로 착각한다면 그것은 언젠가 변할 것이고 계산적으로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토록 변하기 쉬운 것이 사랑이라면 어떻게 자녀를 낳고 갈등을 감내하며 한평생을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손때가 가득한 물건처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낡게 되며 값어치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깨끗하고 세련된 외양도 높은 가치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사랑이란,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 오롯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갑을 잃어버리고 엉엉 울던 아이의 눈물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 지갑을 사주겠다고 위로하던 제 마음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남녀는 서로를 위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반쪽으로, 혹은 불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서로 인격적으로 일치하도록 만드신 것이며, 이를 통해 각자는 상대를 위한 도움이 되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격적으로는 동등하지만 동시에 남성과 여성으로서 서로를 보완하는 것, 하느님께서는 이 사랑을 통해 인간 생명을 전달할 수 있게 하시고 남녀는 창조주의 일에 협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때로 상대를 나를 위한 존재로 여겨 무언가를 요구하기만 하지는 않는지요. 그럴 때는 다시금 사랑의 교리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각각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며 그를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2일(다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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